<경아의 딸>은 미묘한 영상통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연수(하윤경)는 최근 엄마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경아(김정영)는 연수가 아기자기하게 꾸민 방을 보며 함께 웃음 짓다가도, 혼자 살게 된 딸이 걱정돼 잔소리를 시작한다. 특별한 것 없는 대화가 오가는 중, “근데 너 진짜 혼자 있는 거 맞지?” 하는 경아의 말이 순식간에 영화의 공기를 무겁게 끌어 내린다. 연수가 현관문까지 열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걸 보여주고 나서야 영상통화는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디지털 화면을 응용한 영화의 오프닝은 경아와 연수의 관계를 복합적으로 드러낸다. 엄마는 습관적으로 딸을 단속하며, 그건 연수에게도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작은 화면 너머 서로의 모습을 제대로 알기란 어려운 법이다. 이 간접 대면엔 그처럼 불가능에 관한 감각이 은근히 깔려있다. <경아의 딸>은 이러한 두 인물 사이에 ‘디지털 성범죄’라는 사건을 도입한다. 이 공통의 경험이 각각의 차이를 압도하며 둘을 하나로 단단히 묶는 일은 여기서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좀처럼 마주치지 않는 경아와 연수 각자의 시간을 따르는 지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발단은 연수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상현(김우겸)이 둘의 성관계 영상을 연수의 지인들에게 유포한 일이다. 딸이 밤늦게 택시만 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경아에게 이는 재난이나 다름없는 사건. 경아는 마찬가지로 충격받은 딸을 불러서 묻는다. “도대체 이런 건 왜 찍었니?” 몸조심하라는 반복된 전언은 평소엔 근심과 애정의 표현으로 기능하지만, 무슨 일이라도 발생하면 그 결과를 조심하지 못한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심지어 경아는 딸을 잘못 키웠다며 본인을 탓하기까지 한다. 그냥 넘어가 달라는 연수에게 경아는 끝내 ‘걸레’ 운운하는 차마 못 할 말도 하고 만다.

연수는 경아가 찾지 못할 곳으로 숨는 한편, 회복을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경찰에 신고 후 재판을 준비하고, 온라인에 퍼져버린 영상을 삭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마음엔 종종 분노와 절망이 왈칵 인다. 여러 사람 앞에 서기가 두려워 교사 일도 잠시 쉬기로 한다. 연수가 제 안에서 샘솟는 복잡한 감정을 마주하고 사건의 여파를 감당하는 동안, 경아는 그간 몰랐던 딸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길을 찾아 헤맨다.

영화는 곳곳에 여성을 옭아매는 사회의 통념과 여성이 겪는 현실적 공포를 흩뿌려두었다. 집 주소를 알고 있는 전 남자친구부터,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웅성거림까지. 애초 ‘N번방 사건’과 ‘웹하드 카르텔 문제’라는 소재에서 가지를 친 이야기인 만큼 <경아의 딸>은 피해자가 어떤 곤란 속에 있는지 성실하게 탐색하고 재현한다.

김정은 감독은 “디지털 성범죄가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순결주의나 전통적 정조 관념 때문”이라고 말한다. 익명의 사람들이 영상에 남기는 끔찍한 댓글과 “연수가 그럴 리 없다”는 친구들의 뒷말은 공통으로 피해자를 박제된 이미지에 가둔다는 특징을 지닌다. 피해자는 계속해서 ‘그럴만한 사람’으로 남는다. 나쁜 말을 들어도 되는 사람, 어딘가 문제 있는 사람, 보호받을 필요 없는 사람. 연수는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항변하지 않는다. 연수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태도 또한 단호하다. '순결'하지 않으면 어때서?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그 '순결'이 대체 뭐기에? 세심하게 연출된 문제의 영상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연수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건 주요한 지점이다.

경아로 말하자면, “도대체 왜 집안의 여자 어른들은 그들이 받은 여러 피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부장제를 존속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가?”라는 유구한 질문을 온몸으로 받아 안는 인물이다. 남편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화장대 위에 걸린 육중한 가족사진은 여전히 경아를 무겁게 짓누른다. 그녀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자신을 오히려 손가락질하고 욕했던 이들의 동네를 아직도 떠나지 못했다. 거기 남편의 집이 있기 때문이다.

경아가 터득한 삶의 방식은 자책이다. “다 내 탓이다 생각하고 살면 마음 편해.” 하지만 출구를 찾지 못한 자책은 응어리가 되어 딸에 대한 책망으로 변모한다. 다행히 영화는 연수의 다양한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하는 만큼, 경아의 고요한 순간에도 자주 머문다. <경아의 딸>은 온갖 상황과 설정을 제시하는 것만으로 인물을 다 묘사했다며 거들먹거리지 않는다. 구조를 반영하되, 유일무이한 개인의 면모를 찾고 보여주는 데 힘을 쏟는다.

<경아의 딸>이 인물을 포착하는 방식과 관련해, 절묘한 거리감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카메라는 마치 경아와 연수의 마음을 전부 다 이해하고 알고 있다는 듯 그들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고, 숲을 보는 게 목적이라는 듯 그들로부터 너무 멀찍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지속해서 관객의 눈에 새겨지는 이 적절한 거리는 점차 인물들 사이에도 안착한다. 동시에 인물과 사건, 인물과 배경 사이에도 ‘안전거리’가 형성된다. 이는 영화가 적나라한 사실성의 포화와 상상력에 바탕을 둔 극적 전개 사이에서 부단히 균형을 잡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김정은 감독은 공장에서 만난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야간근무>(2017)에서도 이와 같은 거리를 찾아낸 바 있다. 이주노동과 청년 문제가 교차하는 <야간근무>는 무언가 고발하거나 한계를 억지로 돌파해버리는 대신, 서로에 대한 적절한 거리 위에서 반짝이는 우정의 순간에 머물기를 택했다. <경아의 딸> 역시 복수극이나 투쟁기로 흐르지 않고, 일상적 순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데 더 집중한다. 이 영화는 현실을 언급하면서도 그 현실에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는 시도의 연장이다.

경아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집의 변호사 딸, 경아의 오랜 친구인 식당 주인, 연수의 사려 깊은 동료 교사, 연수가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만나게 된 학생 등 모녀 주변을 오가는 다양한 여성들은 영화의 리듬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든다. 세대와 직업이 모두 다른 이들은 여성이 겪는 다층적 경험과 폭넓은 고민을 대변한다. 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아와 연수는 좁은 어둠에서 나와 점차 회복의 길을 모색한다. 이제 모녀의 시간이 남아있다. 종장의 중요한 대목이 경아와 연수의 전화 통화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 <경아의 딸>이 느슨한 수미상관 구조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통화는,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결코 상대방의 편에 온전히 가닿을 수 없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하는 제스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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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