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 실사화 유니버스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가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팀업 무비와 통합된 세계관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전개하는 방향으로 회선했다. 어쩐지 불안하기만 했던 이 프랜차이즈도 팬덤이 늘 기대해 마지않았던 확실한 퀄리티와 진지함으로 호평을 받는 데 성공했고, 이후 DC 코믹스 기반의 실사화 작업은 보다 더 다양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워너브러더스 역시 이전에 계획되었던 솔로 무비를 속속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는데.

DC 실사화 유니버스의 <저스티스 리그>

개중, '저스티스 리그'의 실사화 작업이 성공했더라면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팀업 멤버들의 솔로 무비 작업이 구체적인 방향성을 갖고 진행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부터 워너브러더스의 확고한 의지 아래 솔로 무비에 대한 계획은 있었지만, 다수의 영화가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별개 캐릭터의 영화가 이전과 달리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전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저스티스 리그의 유구한 팀원이자 DC 유니버스에서 유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캐릭터 '플래시'의 솔로 무비에 대한 기대는 꽤 컸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영화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에즈라 밀러가 연기하는 이 캐릭터의 솔로 무비를 기다리는 사람은 꽤 많았다. CW버스에 등장한 플래시의 스토리가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며 에즈라 밀러가 여러 번 보여준 캐릭터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에즈라 밀러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면서, 내년 개봉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던 영화 역시 부정적인 예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선보이게 된 플래시의 솔로 무비 <더 플래시>

장장 2016년부터 계획되었던 플래시의 솔로 무비 <더 플래시>는 감독과 각본가가 수없이 교체되면서 실질적인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만 5년간 수많은 난관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즈라 밀러가 보여주었던, 조금 서툴지만 매력적이고 영웅적인 '플래시' 배리 앨런의 모습에 호평을 보낸 사람이 많았으며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토대가 유명한 이슈 「플래시포인트」라는 사실 때문에 기대감은 꽤 큰 편이었다.

「플래시포인트」는 DC 코믹스 원작에서 꽤 의미 있는 에피소드다. 2대 플래시이자 가장 잘 알려진 플래시인 배리 앨런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프로젝트는 플래시의 능력을 통해 시간을 거슬러 가 생긴 '타임 패러독스'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기존의 세계관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상황과 그를 바로잡기 위해 배리 앨런이 마주해야만 하는 비극적인 선택이 주요한 내용이다.

「플래시포인트」

<더 플래시>는 2020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촬영에 돌입했으나 곧이어 개봉일을 확정하고 시놉시스를 공개, 배트맨에서 하차한 것으로 알려져 있던 벤 에플렉을 포함해 다수의 카메오 등장을 예고하는 등 더욱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올해 초 2023년으로 개봉을 연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다수의 루머만이 오가는 가운데 또다시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왔는가 했더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심각한 소식이 전해지고야 만다. 바로 에즈라 밀러의 사생활과 관련된 소식이었다.


배리 앨런을 연기한 에즈라 밀러

에즈라 밀러는 <케빈에 대하여>와 <애프터 스쿨>, <월플라워> 등 작품성 있는 영화들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은 배우였다. 이후 DC 확장 유니버스의 '플래시' 배리 앨런으로 캐스팅을 확정하며 2018년 8월 코믹콘 서울에 내한하는 등 한국 팬들과도 만남을 가졌으며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와 관련된 다수의 인터뷰에서 동료였던 한국 배우 수현이 받은 무례한 질문에 대신 반감을 표하는 등 친근한 행보로 국내 팬덤을 나름대로 확보하기도 했다.

여기에 본인이 출연한 영화는 물론 원작에 대한 애정도 거리낌 없이 보여주었는데, <해리 포터> 시리즈와 플래시 캐릭터에 대한 오랜 애착과 열정을 어필하며 각본 작업에도 직접 참여하는 등 긍정적인 행보를 이어 나갔다. 더불어 페미니즘 논란으로 많은 배우들이 구설수에 오르는 와중 본인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며 이와 관련하여 공식적인 지지 입장을 밝히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연기력도 훌륭하고, 원작에 대한 존중과 주연배우로서의 작품에 대한 열정, 캐릭터에 대한 애정에 인성까지 갖춘 배우였다는 뜻이다. 일단 작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지난 사건들로 공개된 에즈라 밀러의 머그샷

하지만 본인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플래시 솔로 무비인 <더 플래시>가 개봉하기도 전인 올해 3월 28일, 하와이 소재의 술집에서 체포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2020년 4월에도 에즈라 밀러에게 시비를 걸었던 한 여성을 잡아 넘어뜨리는 영상이 공개되며 논란이 되었으나 주변 친구뿐만 아니라 가게 직원들의 증언으로 인해 사건이 일단락된 적이 있었다.

하나 페미니스트라고 공언해 왔던 에즈라 밀러의 평소 발언과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는 이유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번 폭행 사건은 실제로 경찰에 구금되었으며 풀려나자마자 보석금 500달러를 대신 내 준 부부를 협박해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았다는 게 알려지면서 일파만파 확산되었다. 여기에 이 사건이 확산되면서 2020년 4월 사건에서 에즈라 밀러와 관련되었던 여성이 매체를 통해 당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등 기폭제처럼 확산되기 시작한다.

어지간한 사생활 이슈로는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배우를 교체하지 않는 워너브러더스조차 이 사건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내부에서 에즈라 밀러와 관련된 계획을 일시 중단할 것이라는 소식통도 전해졌다. 당시에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올해 4월 19일에 또다시 26세의 여성에게 의자를 던져 상해를 입힌 죄목으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결국 <신비한 동물사전> 실사 영화 시리즈에서는 완전히 퇴출당했다.


<신비한 동물들과 그란델왈드의 범죄> 개봉 당시 한국에 내한한 에즈라 밀러(오른쪽)

여기서 마음을 고쳐먹고 새사람이 되었다면 얘기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지난달 6월 8일 외신을 통해 에즈라 밀러가 올해 18세가 된 한 여성의 부모로부터 고소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려 이 여성이 12살이었던 2016년부터 만남을 지속해 온 에즈라 밀러는 당시 14살이었던 여자아이에게 마약을 주고 학교를 그만두게 했으며, 폭행과 협박으로 위협해 자신의 집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 부모의 주장이었다.

이에 여성 본인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은 이미 성인이며 부모가 자신의 결정에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는 내용의 글로 부모의 주장을 반박했으나, 부모가 딸을 찾으러 에즈라의 집에 방문했을 때 신분증이나 신용카드 등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핸드폰 역시 없었으므로 에즈라의 소행일 거라는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국에서는 에즈라 밀러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으나 외신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함께 도주했으며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에즈라 밀러는 6월 1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수사당국이 자신을 절대 잡을 수 없을 거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리고 계정을 삭제했다.

<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의 크레덴스를 맡은 에즈라 밀러

다음 날인 6월 16일 추가로 보도된 소식에 따르면 올해 초인 2월, 매사추세츠 주에서 11살짜리 아이에게 불쾌한 스킨십과 이상한 말을 계속했으며 아이의 어머니에게 고성을 지르는 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 매사추세츠 주 법원으로부터 괴롭힘 방지 명령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일주일 후인 23일, 에즈라 밀러가 버몬트 주에 위치한 본인 소유의 목장에서 어떤 여성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여성에게는 세 아이가 있고 이 아이들도 동거하고 있는데도 에즈라 밀러는 그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마리화나를 피고 집 주변에 총기가 흩어져 있어 아이들에게 위험천만한 상황이므로 당국이 빨리 체포하여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보도되었다.

채 1년도 남지 않은 2023년 6월 23일 개봉 예정인 <더 플래시>의 주연으로 촬영을 마무리한 에즈라 밀러가 이렇게까지 기괴한 행각을 반복하며 범죄자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행보를 계속하자 결국 워너브러더스로서도 어쩔 수 없었는지 <더 플래시>를 마지막으로 에즈라 밀러를 모든 DC 실사화 프로젝트에서 제외할 것임을 확정 지었다.


사생활 논란이 있는 배우와 그의 작품 활동이 완전히 별개로 취급되기는 어렵다. 특히 영화처럼 스크린을 통해 개봉하고 관객과 만나야 하는 대중적인 콘텐츠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한데, 대중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이에 따른 흥행에 성공해야 다음 영화로 이어질 수 있고 이에 따라 프랜차이즈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다툼이나 치정 싸움이었으면 모를까-물론 이런 경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겠지만-에즈라 밀러의 경우 그가 출연하는 영화에 대한 불매 운동이 확산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배우도 사람이기에 아주 내밀한 사생활까지 드러나는 일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들의 권리 역시 지켜져야만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익히 인지하고 있듯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건 사실 기본적인 원칙이기에 이 사건들을 완전히 별개로 보기는 어렵다. 일부 마약이나 총기 사용이 합법화되어 있는 해외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다소 경계가 낮을 수는 있겠지만 에즈라 밀러의 경우 아동성애와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며, 수많은 증언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그의 행각은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에는 수상한 부분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일언반구 해명조차 없을 뿐만 아니라 공식 입장은커녕 당국을 조롱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 역시 더더욱 그렇다.

에즈라 밀러야 본인이 저지를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면 될 테지만, 실제로 죄 없이 곤경에 처한 건 다름 아닌 워너브러더스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물론이고 천문학적인 제작비용이 투입되었을 <더 플래시>의 주연 배우가 이런 파행의 주인공이 되면서 영화 개봉 이후 흥행 성과마저 강력하게 위협당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아직 촬영 전인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야 강판시켰으니 그걸로 마무리되겠으나 주요 촬영을 마쳐 놓은 <더 플래시>는 어쩌란 말인가.

촬영까지 다 한 <더 플래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다시금 비용이 소모되고 일정이 연기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배우를 교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슈퍼히어로 무비인 데다가 '그' 플래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인만큼 CG에 들어간 액수도 엄청날 것이며 지금까지 진행된 많은 계획을 백지화하고 다시금 새로운 배우를 캐스팅해 프로젝트를 이어 가기에는 비용 부담뿐만 아니라 위험부담도 큰 상황이다. 물론 다수의 관객들이 이 문제 많은 배우를 아예 <더 플래시>에서조차 퇴출시키고 수정을 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결정의 주체는 결국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다.

따지고 보면 금전적인 피해는 워너브러더스 쪽이 클 것이나(물론 이와 관련된 법적인 조항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까 싶지만) 2016년 제작 확정 이래 오랫동안 배리 앨런의 단독 스토리를 기다려 온 수많은 팬들 역시 피해자다. 수없이 이어지던 감독 및 각본가 교체와 개봉 연기를 견뎌내며 영화를 기다려 온 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도 대차게 박은 셈인데, 평소 이미지가 꽤 긍정적인 배우였기에 충격은 한층 더 크다.

더불어 이제 드디어 궤도에 오른 DC 확장 유니버스에 있어서도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다. 제작이 확정되었던 솔로 무비들 중에서도 가장 기대를 많이 받았던 작품인 <더 플래시>가 제작사의 문제나 영화 자체의 문제도 아닌, 배우의 기행과 범죄행각에 관한 문제로 난파선이 될 위기에 처했다는 게 참 비극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교체 혹은 별도의 방향이 정해진다면 또다시 개봉이 연기될 수도 있다는 추측이 이래저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할 따름이다. 솔직히 정말 몰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에즈라 밀러가 이럴 줄이야.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