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의 신부>가 공개되었다. 이 작품은 상류층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결혼정보회사 ‘렉스’를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욕망과 복수를 그린다. 한국에만 있는 결혼정보회사가 결혼과 사랑을 둘러싼 여러 욕망이 얽힌 이야기의 무대로 등장한다. 결혼이 비즈니스가 되는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소재에 시선이 가는데, 안타깝게도 드라마는 이를 매력적으로 담아내지 못한다. 믿고 보는 넷플릭스 K-드라마 열풍에 <블랙의 신부>는 그 열풍을 이어갈 수 있을까? 현재까지는 다소 비관적이다. 작품의 어떤 점들이 아쉬움을 남겼는지, 리뷰를 통해 살펴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드라마
<블랙의 신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서혜승(김희선)은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의문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보다 못한 친정엄마는 상류층 전문 결혼정보회사 '렉스'에 몰래 가입시키는데, 혜승은 그곳에서 남편을 죽음으로 내몰고 자신의 인생까지 망친 진유희(정유진)와 맞닥뜨린다. 유희의 야망을 알게 된 혜승은 렉스의 최고 등급인 '블랙'의 신부가 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인생 전부를 건다.
<블랙의 신부>는 배우 김희선의 연기 인생 최초 OTT 및 넷플릭스 오리지널 출연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혜승 역을 맡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여기에 최근 <마인>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이현욱과 정유진, 박훈, 차지연 등이 함께해 작품의 묘미를 더한다. <나쁜 녀석들>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의 김정민 감독과 <나도 엄마야> <어머님은 내 며느리>의 이근영 작가가 뭉쳐 상류층 결혼 비즈니스 세계의 명과 암을 치열하게 그린다.
공감 가지 않는 진부한 설정
이처럼 탄탄한 캐스팅과 독특한 소재 속에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높았지만,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은 많이 부족해 보였다. <블랙의 신부>의 시청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드라마의 근간이 되는 설정이다. 드라마는 서혜승이 남편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거리낌 없는 진유희에게 복수를 다짐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진유희는 회사 동료인 서혜승의 남편에게 접근해 함께 횡령과 비리를 저지른 뒤, 그가 혼자 벌인 것처럼 조작하고, 더 나아가 그에게 위계에 의한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발하기까지 한다.
진유희의 계략으로 비리를 뒤집어쓴 서혜승의 남편은 극심한 압박감을 받고 죽음을 택한다. 일련의 과정에서 진유희의 행동은 악역임을 감안해도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거짓으로 성폭행을 고발하고 자신의 무기로 휘두르는 방식은 불쾌할 정도로 낡고 진부하다. 결과적으로 이 같은 모습은 드라마의 완성도에 작은 균열을 남긴다.
불륜에 빠져 가정을 버리고 서혜승에게 이혼을 요구한 남편을 대하는 시선 역시 마찬가지다. 서혜승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 대부분은 남편을 그저 악녀가 유혹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가련한 가장 정도로만 바라본다. 이처럼 시작부터 공감하기 힘들고 불쾌하게 쌓아 올린 설정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도 딱히 나아지지 않아 내내 찝찝함을 남긴다. 마라맛, 매운맛 재미를 위한 빌드업 과정임을 이해하지만, 이 때문에 ‘개연성’이라는 최소한의 장치 마저 눈감아줄 수는 없다.
요즘 시대에 나온 드라마 맞아?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관과 캐릭터
진유희 캐릭터뿐만 아니라 드라마 곳곳에서 지금 시대와 뒤떨어진 낡은 여성관이 드러나 거부감을 들게 한다. 렉스 대표 최유선(차지연)은 최상위 블랙 등급인 이형주(이현욱)에게 그를 빛나게 해줄 트로피 와이프를 제안한다. “그 자리까지 올랐으니 누려야 하지 않겠냐”는 최유선의 말은 여성을 마치 성공한 남자를 위한 보상 아이템으로만 보는 것 같다.
그는 또 “여자의 서열은 아버지의 재력에서 시작해 남편의 능력으로 정해진다”는 대사를 하며 오로지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이 인생의 유일한 성공인 것처럼 바라본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거창한 직업에 종사한다는 설정을 가졌음에도 여성은 어떤 능력도 없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계관인 것처럼 그려내니 의아하기만 하다.
심지어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향해 본인이 가정과 남편을 지키지 못한 거 아니냐는 말로 오히려 서혜승을 탓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2022년에 전 세계로 공개한 작품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막장 드라마다운 속도감은 좋지만….
내용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소가 연이어 등장하더라도 이를 흥미롭게 담아낸다면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들 텐데, <블랙의 신부>는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재미도 부족하다. 아침드라마 급 막장 서사가 빠른 속도로 흘러가기 때문에 답답함은 덜하지만, 8화 안에 모든 사건을 정리해야 하니 인물 간의 갈등은 얄팍하게 그려지고 겉핥기식으로 해소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드라마에서 서혜승과 이형주, 차석진(박훈)의 삼각 로맨스는 진유희를 향한 복수 못지않게 중요한데도 이에 대한 서사가 불충분하다. 이형주와 서혜승이 대체 언제부터 서로에게 깊은 마음을 품게 됐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무미건조하게 흘러가서 두 사람의 관계에 도저히 몰입하기 어렵다.
게다가 대사와 상황은 진부한 클리셰가 가득하고, 이야기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시선을 잡아끌 만한 부분이 부족하다. 차라리 <펜트하우스>나 <부부의 세계>, <결혼작사 이혼작곡>처럼 시각적으로 과장하거나 서사적으로 부풀린 막장 서사를 그려내거나, 하다못해 과거 아침드라마의 그 유명한 ‘김치싸다구’ 같이 강렬한 장면이라도 등장했다면 지금보다 더 선명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
<블랙의 신부>는 서혜승이 복수에 성공하고 사랑까지 쟁취하면서 막을 내리는 것 같아 보였지만, 가장 마지막에 박지훈이 렉스에 등장하면서 열린 결말을 맺는다. 몰락한 렉스 대표 최유선과 박지훈이 손을 잡고 렉스를 일으켜 세운다는 내용의 시즌 2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블랙의 신부>는 넷플릭스에 돌아올 수 있을까.
일단 작품의 호불호와는 별개로 흥행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국내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넷플릭스 TV 부문 1위에 올랐고, 그 외 아시아권 국가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다시 만나게 된다면 지금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더 나은 작품으로 다가오길 바란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