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4페이즈를 달리면서 대다수의 캐릭터가 세대교체를 겪었고 수많은 사건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가장 먼저 세대교체를 한 캐릭터는 바로 그루트다. MCU 영화를 거의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 법한 그 대사, '아이 엠 그루트(I am Groot)' 한 마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 캐릭터.
2편 이후 '베이비 그루트'가 되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전편의 강렬한 인상과는 정반대인 귀여운 캐릭터이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의 공동육아(!) 대상으로 역할을 선회한 그루트. 얼마 전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5편의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공개하면서 나름의 솔로 시리즈도 가지게 됐다.
히어로 무비 프랜차이즈의 인기 캐릭터치고는 드물게 남녀노소 관객을 귀여움으로 사로잡은 그 캐릭터, 애니메이션 공개를 기하여 원작부터 그간의 행적까지 가볍게 돌아보고자 한다.
마블 코믹스에 그루트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60년대로, 처음부터 '아이 엠 그루트'라는 말만 하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온몸이 단단한 식물로 이루어져 있는 플로라 콜라수스라는 외계 종족 출신인데, 지구에서 붙잡혀 연구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후 흰개미들에게 몸을 파괴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완전히 사망하지는 않았고, 헐크와 전투를 벌이기도 하며 빌런 캐릭터로 활약하다가 쉴드를 거쳐 하울링 코만도스의 멤버가 되기도 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캐릭터들과 엮이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인데, 우주 정복을 위해 싸우던 어나일레이션에 소속되어 있다가 종족이 전부 몰살당하고 혼자 살아남게 되었을 때 스타로드의 팀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 팀원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시간을 벌다가 불에 타 죽은 것처럼 보였으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남은 가지 하나를 로켓 라쿤이 챙겨 다시 생존했다.
그 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일원이 되어 다양한 적과 싸우며 팔을 잃는 사고를 겪기도 했지만 자연의 생명력에 의지해(!!) 팔은 다시 자라났고, 이후 로켓 라쿤과 함께 활동하면서 영화와 흡사한 듀오로 활약했다.
영화에서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차용했는데, 1편에서 등장할 때부터 그루트는 로켓 라쿤과 함께 다니고 있으며 몸에서 자유롭게 자라나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적들을 꼬챙이(...)로 만들어 버리는 등 인상적인 장면을 많이 남겼다. 더불어 1편 마지막 부분에서 로난의 함선이 파괴되었을 때 팀원 모두를 지켜내고 희생했을 때 남은 가지 하나를 가져다가 화분에 심은 로켓 라쿤의 행동 역시 원작 스토리에서 비롯된 셈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팀업의 시작은 좌충우돌이었다. MCU의 첫 번째 팀업이었던 어벤져스가 각자의 사정은 있었을지언정 지구에 벌어진 대사건을 수습하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모인 히어로 모임이었다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노바에 의해 체포되는 바람에 탈옥을 위해 처음 뭉친, 말하자면 탈옥수 조직이었다.
각자 다른 죄목이긴 했지만 가모라와 스타로드, 드랙스, 로켓 라쿤, 그리고 그루트는 힘을 합쳐 탈옥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스타로드가 가져온 건 완전 쓸모없었지만(...) 이들은 이 탈옥을 기점으로 함께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 어지간히 안 맞는 건 어쩔 수 없었는지 좌충우돌을 겪었고 싸움도 잦았다.
각기 너무나 달랐던 이들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 가던 중, 로난과의 결전이 벌어지게 되었고 그에게 스톤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친다. 하지만 로난의 공격으로 인해 위기에 빠지자 그루트는 원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몸에서 뻗어 나온 가지로 모두를 감싸 구해내고 자신은 최후를 맞게 된다.
이때 남긴 대사는 이제까지 해 왔던 'I am Groot(아이 엠 그루트)'가 아닌 'We are Groot(위 아 그루트)'였다. 이 대사는 분수대 물을 마시다가 로켓 라쿤에게 잔소리를 듣던 그루트의 뭔가 나사 빠진(...) 모습과는 사뭇 달랐을 뿐더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진정한 팀으로 거듭났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했다.
로켓 라쿤은 최후를 맞은 그루트의 잔해 속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가져다가 화분에 심었는데, 이 화분에서는 그루트를 꼭 닮은 어린 그루트가 자라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화분에 심어진 채 일명 '베이비 그루트'가 드랙스의 눈을 피해 춤추는 모습은 여러 관객을 웃음 짓게 했는데, 뒤이어 개봉한 2편에서는 어린아이가 된 그루트의 모습으로 등장해 다양한 활약을 선보였다.
그루트의 가지를 가지고 만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베이비 그루트'가 원래의 그루트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제작진의 공식적인 발언에 따르면 베이비 그루트는 이전의 그루트와는 다른 존재이며 굳이 말하자면 아들 격이라고 한다. 즉 위 아 그루트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희생했던 영웅이라기보다는 그루트의 철없는 자식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재미있는 부분은, 대사 한 마디로 일관하던 어른 그루트 시절보다 베이비 그루트 그리고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등장한 질풍노도의 사춘기 그루트의 '아이 엠 그루트'가 더 감정표현이 풍부해졌다는 점이다. 여전히 같은 말만 반복하기는 하지만 게임 좀 그만하라는 말에 투덜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등 베이비 그루트가 보여준 다양한 감정 표현 덕에 그루트는 명실상부 MCU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는다.
거기에 그루트 담당일진(...은 사실이 아니다)이었던 로켓 라쿤 외에도, 어린 그루트와 함께 지내면서 모든 멤버들이 그루트를 공동 양육하는 분위기가 됐는데 그루트의 말을 알아듣는 로켓 라쿤 그리고 토르(토르는 선택과목으로 그루트의 언어를 배웠다고 하는데...) 외에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 대부분이 그루트의 말을 대강은 이해하는 것 같아 보인다. 마블 코믹스 초창기 가족 팀업(물론, 여기는 진짜 가족이긴 하다)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판타스틱 포와 비슷한 느낌의 팀이 되었다고나 할까.
나무껍질로 만들어진 요정 같은 귀여운 외형 덕에 그루트는 다양한 캐릭터 상품으로 제작되기도 했고, 자연친화적인 외모에 힘입어 화단 장식품(!!)으로도 인기 있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아마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 중 귀여운 외형으로는 로켓 라쿤과 1, 2등을 다툴 만 한데, 로켓 라쿤이 강렬한 말버릇과 얄짤없는 태도 그리고 다소 아저씨스러운(...) 행각으로 인해 마냥 귀엽지 않다 보니 어린 그루트 쪽이 더 귀여운 면으론 어필하기 쉬웠을 듯.
이런 인기에 힘입어 그루트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결정되었을 때 사실 많은 기대감도 있었다. 어린 그루트의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영화에서 못다 보여주었던 그루트의 숨겨진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와 더불어, 유년기를 거쳐 사춘기 소년이 된 그루트의 지나간 이야기를 엿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나름 있었던 터다.
하지만 실제로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된 애니메이션은 말 그대로 단편 분량의 아주 짧은 영상 콘텐츠였고, 로켓 라쿤이 등장해 잔소리를 하는(하지만 귀여워한다) 걸 제외하면 영화와는 사실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말 그대로 스핀오프 콘텐츠에 가까운 이야기인데. 물론 어린 그루트가 나름대로 좌충우돌하며 커 가는 성장기를 잠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올해 연말 스핀오프격의 특별편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홀리데이 스페셜>로 돌아올 예정이다. 드라마로 제작되지는 않았으며 TV 스페셜격의 단편 콘텐츠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얼마 전 개봉한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룰 예정이다.
<토르: 러브 앤 썬더>의 작중에서 토르를 내려주고 난 이후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겪게 되는 사건이 주요 스토리라인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2020년 12월에 공개된 로고를 보면 홀리데이 스페셜이라는 이름에 맞게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아 이 팀의 아들격인(...) 그루트도 나름 활약하지 않을까 싶다.
MCU의 페이즈 4가 이제 디즈니 플러스로 공개될 <변호사 쉬헐크>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만을 남겨두고 있고, 2023년부터 멀티버스 사가의 두 번째인 페이즈 5가 시작될 예정에 있다. 제임스 건 감독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을 끝으로 마블을 떠나게 될 것이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팀 역시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시리즈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하니 팀에 소속된 캐릭터들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디즈니 플러스가 계속해서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고, MCU와 정식 연계되는 <왓 이프>도 시즌 3까지 확정하고 많은 이야기를 펼쳐갈 예정에 있다. 그러니 애니메이션 <나는 그루트다(I am Groot)>도 시즌 2를 확정한 만큼 이번 시즌보다 더 다양한 연계 혹은, 더 귀여운 면모를 더 보여줄 수 있기를.
프리랜서 에디터 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