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시끄럽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단 한 번도 조용했던 적이 없었지만 이 시기는 유달리 시끄러운 듯하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기상 악화, 전염병, 범죄율 상승까지. 예전엔 밥상머리에서 보는 6시 뉴스가 제법 재밌고 유익했는데 지금은 체할까 봐 틀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물론 인간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악재를 무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인지하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

하지만 우린 인간이기에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럴 때 나는 뉴스와 유튜브를 제쳐둔 채 반려동물이 나오는 넷플릭스를 찾아보는 편이다. 고양이의 골골 소리를 듣거나 강아지의 엉뚱한 모습을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안정된다. 터무니없이 귀엽고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 반려동물을 보고 있으면 잔인한 현생은 잠시 잊게 된다. 필자처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힐링물이 꼭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넷플릭스에서 다섯 편의 작품을 모아보았다.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카모메 식당>의 따뜻한 감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도 반드시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카모메 식당>의 작가 무레 요코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목의 단어 배열만 봐도 노곤노곤해지지 않은가. 빵, 스프, 고양이라니. 우리가 생각한 힐링 영화의 표본이라 볼 수 있다. 내용 또한 그렇다.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던 '아키코'는 회사의 지시에 의해 한순간 경리부로 발령이 난다. 편집자로서의 삶에 만족했던 '아키코'는 결국 퇴사를 결정하고, 돌아가신 엄마의 가게를 개조하여 자신만의 식당을 개업한다.

메뉴는 단둘, 빵과 스프 뿐이다. 단출해 보일 수 있는 메뉴이지만 '아키코'는 숨겨왔던 솜씨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퇴사와 개업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아키코'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가 들어온다. 고양이 '타루'는 '아키코'의 곁에서 머무르며 그녀의 가족이 되어준다. 전형적인 일본 요리 영화의 줄거리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사실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그런 영화가 맞다. 방황하던 주인공의 성장과 그를 지탱하는 따듯한 사랑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마음속에 남은 차갑고 모난 감정을 따뜻하게 데우고 싶은 날엔 이 영화가 제격이다.


<준 & 코피: 나의 영원한 두 친구>

<준 & 코피: 나의 영원한 두 친구>

우리나라의 진돗개와 비슷하게 생긴 하얀 개 '준'은 떠돌이 신세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밥을 해결하고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길 위에서 힘들게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아야'를 만나고 '아야'는 괴롭힘당하는 '준'을 도와준다. 길 생활이 너무도 고단했던 걸까. 그녀의 호의에 감동한 '준'은 '아야'의 집까지 따라온다. 이른바 간택 당한 것. 하지만 '아야'는 이미 한 마리의 개 '코피'를 키우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인 '알레' 또한 '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은 '아야'의 집에서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아야'의 첫째 강아지인 '코피'의 활약이 크다.

<준 & 코피: 나의 영원한 두 친구>는 인도네시아 영화로, 어쩌면 과하게 뻔할 수 있는 소재를 소소한 감동과 재미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그리고 반려견이 주인공인 영화답게 두 마리의 '준'과 '코피'의 귀여움이 압도적이다. 그것만으로도 볼 이유가 충분하지 않나. 한 가족이 되기 위해 난항을 겪는 인물들의 모습도 관점 포인트이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을 무서워하는 '준'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도 감동적이다. 배신이 밥 먹듯이 나오고, 자극적이고, 괴롭기만 한 오락성 영화에 지친 애견인들 있나? 그런 애견인들에겐 이 영화가 킬링타임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

당신은 울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는가. 그냥 속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마는가?<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는 말 그대로 울고 싶을 때 고양이 가면을 써버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중학교 2학년의 '사사키 미요'는 항상 웃는 얼굴의 소유자다. 그렇기에 마냥 밝은 성격처럼 보일 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내면에 상처가 많지만 드러내지 않을 뿐. 그런 '사사키 미요'에게도 솔직해지는 순간이 있다. 같은 반 남학생인 '히데코'의 앞에만 서면 좋아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히데코'는 관심이 없다. '히데코'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사사키 미요'는 고양이 가면을 써 고양이가 된 채로 그의 곁에 머문다. 고양이 '타로'가 되면 '히데코'가 자신의 고민도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애정을 쏟으니까. 그러다 '사사키 미요'는 어떤 일을 겪은 뒤 평생 고양이인 채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는 청소년들의 간질간질한 사랑 이야기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어설픈 주인공 '사사키 미요'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하다. 사춘기에 모두 한 번쯤 겪었을 고민을 사랑스럽게 풀어내었다. (무엇보다 고양이 '타로'가 사랑스러우니 추천.)


<구조견 루비>

<구조견 루비>

경찰관 '댄'은 구조견과 함께 구조 대원이 되는 것이 꿈이다. 마지막으로 구조 대원 시험에 지원할 수 있는 시기가 다가

와 '댄'은 갑작스럽게 스스로 구조견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유기견 보호 센터에 직접 향한 '댄'은 그곳에서 안락사가 확정된 '루비'를 입양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루비'는 구조견의 자질에는 못 미치는 강아지로, 지나치게 활발해 정서불안에 가까운 상태였다. '댄'은 시험날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구제불능인 '루비'를 파양하고자 하지만 계속 키워보기로 한다. 그 이유는 '댄'도 어렸을 때 과잉행동장애로 판정받아 힘들었지만 결국 모든 걸 극복해냈기 때문.

그 결과 '댄'과 '루비'는 시험에 합격하고, 구조 대원과 구조견으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첫 구조에서 난항을 겪어 사이가 틀어지는 일도 생긴다. 둘은 앞으로의 고난을 잘 극복해낼 수 있을까. <구조견 루비>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실제로 로드아일랜드 주 경찰서에서 구조원으로 일하던 루비의 이야기이며 루비는 2018년 '올해의 구조견'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구조견 루비>의 실제 모델인 루비는 갑작스럽게 치료 불가능한 질병에 걸려 안락사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루비가 베풀었던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씨네플레이 김다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