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홍수 시대 속에 ‘정주행’은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화려한 비주얼과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애니메이션도 가능하다. 한 에피소드 당 2~30분 정도 짧은 이야기 속에 관람자의 부담도 덜하면서, 실사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이미지를 자유롭게 펼쳐내는 작화는 시청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이에 한 번 보면 정지버튼은 자동 스킵, 시간순삭은 필수인 해외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모아본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Love is Like after the Rain)

이미지: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후지TV 노이타미나로 방영된 뒤, 현재는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시청 가능한 마유즈키 준 원작의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45살에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패밀리 레스토랑 점장 콘도 마사미를 짝사랑하게 된 17세 소녀 다치바나 아키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얼핏 보면 아슬아슬한 연상연하 커플의 로맨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의 성장스토리에 가깝다. 꿈에 대한 두려움, 젊음의 상실로 멈춰 있던 두 남녀가 서로를 통해 삶의 휴식처를 발견하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아름다운 비주얼로 그려내어 많은 공감대를 자아낸다. 원작의 작화도 잘 계승했지만 캐릭터의 말맛과 음악, 빛, 소리, 소도구를 활용해 작중 인물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려내며 기대 이상의 퀄리티를 빚어낸다. 제목과 이미지를 보고 시청하다 생각했던 방향과 너무 달라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작품이 건네는 설렘 가득한 심리묘사와 인물들의 애틋한 감정에 더욱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유루캠프

(Laid-Back Camp)

이미지: C-Station

지난해 2기를 방영했던 <유루캠프>는 솔로 캠퍼 린과 그를 통해 캠핑에 재미를 느낀 소녀 나데시코를 중심으로 캠핑을 즐기는 소녀들의 일상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캠핑을 좋아하는 고등학생의 이야기" 정도로 요약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을 본 사람은 안다. 그 매력을 결코 한 줄로 압축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재미를 전한다. 여러모로 <케이온>의 캠핑판 버전으로 다가온다. 서로 다른 개성과 성격을 가진 주인공 캐릭터의 등장, 이들이 한데 뭉치면서 빚어내는 웃음과 소동 등이 그렇다. 여기에 <유루캠프>는 실존하는 일본의 유명 캠핑지를 배경으로 작품이 진행되기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작화를 보여준다. 또한, 캠핑에서 그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맛깔스러운 음식, 캠핑에 필요한 실용적인 팁까지 소개받을 수 있어 애니메이션 팬뿐 아니라 캠핑 마니아들까지 TV 앞으로 끌어들인다. 기대 이상의 성공으로 <유루캠프>는 현재 실사 드라마와 극장판까지 나와 그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캠핑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취향저격의 작품으로 꼭 시청하시길 바란다. (웨이브, 티빙, 왓쳐, 라프텔)

디스인챈트

(Disenchantment)

이미지: 넷플릭스

<심슨>, <퓨처 라마> 제작자 맷 그레이닝의 작품이 넷플릭스에 등장했다. 중세 왕국 드림랜드를 배경으로 알코올 중독 공주와 2% 모자란 엘프, 시크한 소악마가 펼치는 황당한 모험 <디스인챈트>가 그 주인공이다. <심슨>이 현재를, <퓨처 라마>가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디스인챈트>는 과거 중세로 돌아간 유쾌 발칙 코미디를 표방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그럼에도 맷 그레이닝 그의 전작들이 보여준 재미와 풍자에 비하면 조금 약하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인기 없는 작품은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냉정한 넷플릭스 생태계에 <디스인챈트>는 2022년 기준 시즌 4까지 방영하며 롱런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모로 맷 그레이닝 전작들의 향기가 강하다. 금방이라도 사고를 칠 것 같은 캐릭터, ‘나는 누구이고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가 생각나는 뜬금없는 이야기 등 참으로 심슨스럽고(?) 퓨처라마다운(?) 설정이 작품에 더욱 빠지게 한다. (넷플릭스)

스파이 패밀리

(SPY × FAMILY)

이미지: CloverWorks

올 한 해 애니메이션계는 이 작품 하나로 뜨겁다. 그야말로 대세다. 원작 만화 연재 당시에도 큰 인기를 끌었지만, TV 애니메이션 방영 후 단행본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제2의 <귀멸의 칼날> 얘기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스파이 패밀리>가 화제의 주인공이다. 오스타니아(동국)과 웨스탈리스(서국)이라는 가상의 국가 사이의 벌어진 냉전 기간을 배경으로, 모종의 목적을 위해 정체를 숨기고 가족으로 위장한 로이드 포저, 요르 포저, 아냐 포저 등 포저 일가와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첩보 코미디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의 재미는 단연 서로 정체 혹은 능력을 숨기며 지내는 캐릭터들의 활약이다. 특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빠 엄마 미소가 자동 소환되는 딸 ‘아냐’의 존재감이 크다. ‘아냐’는 사람과 동물이 마음을 읽는 독심술의 능력이 출중한데, 이로 인해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가 웃음과 재미를 자아낸다. 때로는 아빠, 엄마의 일을 미리 알고 몰래 돕기도 한다. 여러모로 원작보다 귀여움과 개성이 커져서 그야말로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다가온다.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왓쳐, 라프텔)

왓 이프…?

(What If...?)

이미지: 디즈니+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애니메이션에는 있다. 이 같은 설정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와 접목해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준 작품이 바로 <왓 이프>다. 작품은 MCU에서 있었던 일들에 “만약에 이랬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벌어진 사건들을 다룬 작품이다. 스티브 로저스가 아닌 페기 카터가 캡틴 아메리카가 되거나, 트찰라가 블랙 팬서가 아닌 가오갤의 스타로드가 된다면, 토르가 로키 없이 외동으로 자란다면 등 상상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멀티버스의 관찰자 ‘왓쳐’의 시선으로 그려내어 마블 팬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건넨다. 이 설정을 단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메인 플롯으로 연결해 후반부 빅 이벤트도 준비한다. 지금까지 왓쳐가 소개한 멀티버스의 히어로를 모두 모아, 이 세계관을 위협하는 인피니티 울트론과 맞서 싸우며 멋진 피날레를 장식한다. <왓 이프>는 MCU 배우들이 직접 해당 캐릭터의 목소리도 참여했으며, 상당한 수준의 비주얼과 액션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향후 MCU가 멀티버스를 본격적으로 펼치기에 이 작품의 설정과 이야기가 마블의 전체적인 그림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디즈니+)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아톰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