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일이다. 스칼렛 조핸슨은 트랜스남성의 생애를 그린 영화 <럽 앤 턱>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으나 금세 하차했다. GLAAD를 포함한 미국의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실제 트랜스젠더 배우들이 있는 만큼 해당 배역을 트랜스젠더 배우가 연기하는 게 옳지 않느냐.”라고 문제 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쓰면 스칼렛 조핸슨이 순순히 하차한 것 같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스칼렛 조핸슨은 <럽 앤 턱> 이전에도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쿠사나기 소좌 역할을 맡으면서 ‘아시아계 안드로이드 역할을 백인 여성이 연기하는 건 화이트 워싱’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두 작품 연속으로 비슷한 비판을 받자 이렇게 대응한 것이다. “나 이전에도 트랜스젠더 배역을 연기한 시스젠더 배우들이 많은데, 그 배우들의 에이전시에는 항의했느냐.” 그러니까 <트랜스아메리카>의 펠리시티 허프만이나,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의 자레드 레토, <데니쉬 걸>의 에디 레드메인 같은 배우들에겐 하지 않던 지적을 왜 자기한테만 하는 거냐는 불만이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었다. 기껏 용기 내서 지적했더니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상대가 대화할 생각은 안 하고 지엽적인 논의로 본질을 피해간다는 생각이 들겠지. 비판이 더 거세지자 스칼렛 조핸슨은 일단 사과한 뒤, 이런 입장을 밝힌다. 배우로서 자신은 그 어떤 배역이든 연기할 수 있고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그게 사람이든 나무든 돌멩이든 간에.
역시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논의의 본질을 짚은 건 아니었다. 남아공 출신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는, 그 무렵 자신이 진행하는 시사토크쇼 <더 데일리 쇼>에서 이 사안을 다루며 이렇게 말했다.
“아뇨. 사람들은 당신을 ‘공격’하려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당신은 그 모든 배역을 연기하고도 남들이 넘보지 못할 배역도 연기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당신은 원한다면 일본 로봇(<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쿠사나기 소좌 역)을 연기할 수 있고, 동시에 <어벤저스>를 비롯한 온갖 다른 영화에서 백인 여성을 연기할 수 있죠. 하지만 일본 출신 여성 연기자는, 개중에선 일본 로봇 말고는 (헐리우드에서)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이 없을 거라는 거예요.”
해당 논의가 길어지자, 스칼렛 조핸슨은 “많은 지적을 받았고 그로부터 이 배역을 자신이 연기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것을 배웠다”는 입장을 밝히며 작품에서 하차했다. 스칼렛 조핸슨이 하차한 뒤, <럽 앤 턱> 프로젝트는 영화에서 TV 시리즈로 방향을 선회했고, 주연을 맡을 트랜스남성 배우를 물색 중이다.
나는 트레버 노아가 했던 말을 오래 곱씹었다. 백인들이 중심이 되어 설계한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백인들은 수많은 배역을 맡는다. 그러나 중동인들은 대부분 테러리스트로 그려지고, 흑인들은 범죄자, 노예, 가정부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묘사된다. 그러니 사람들이 <알로하>나 <아르고> 등의 작품을 보면서 아시아계나 남미계 등장인물이 백인으로 둔갑한 걸 비판한 건, 그저 인종적으로 부정확한 묘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백인 배우가 해당 배역을 연기하는 순간, 아시아계 배우나 남미계 배우는 모처럼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인물을 연기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백인 배우는 그 작품 아니더라도 다른 배역을 연기할 수 있는데 말이다.
1989년작 <인어공주>는 누가 뭐라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걸작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서의 매력을 상실해가던 디즈니를 수렁에서 건져낸 작품이자, 그 뒤로 더 거대해진 콘텐츠 왕국 디즈니의 초석을 닦은 작품이다. 바위에 산산조각 나는 파도를 맞으며 수면 위로 솟구쳐 올라 노래하는 에리얼은 아름다웠고, 앨런 멘킨이 작업한 오리지널 넘버들은 흥겨웠다. ‘파트 오브 유어 월드(Part of your world)’나 ‘언더 더 씨(Under the sea)’, ‘키스 더 걸(Kiss the girl)’ 같은 넘버들은, 정확한 가사를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누구든 따라서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유명하다.
그러니 그런 작품을 실사화한다고 했을 때, 과연 누가 에리얼을 연기할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 것도 일견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디즈니가 신인 흑인 가수 핼리 베일리에게 에리얼 배역을 맡기겠다고 하자, 캐스팅에 불만을 지닌 사람들은 일제히 폭발했다. 원작에선 빨간 머리의 백인이었는데 어째서 흑인으로 캐스팅하는가, 덴마크 동화가 원작인데 왜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는가, 흑인 배우라는 건 그렇다 쳐도 더 연기 경력도 있고 생긴 것도 예쁜 배우로 캐스팅할 수 있지 않았나, <블랙팬서>의 트찰라 역할에 백인을 캐스팅하면 다들 난리 칠 거면서 왜 <인어공주>의 에리얼에는 흑인을 캐스팅하는가…
글쎄, 일단 굳이 원작을 따지자면 1989년판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게 아니라 1837년 출간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소설이 원작일 것이다. 덴마크는 코카시안 인구가 압도적인 나라지만, 상상 속의 존재인 인어까지 해당 지역 인종의 피부색을 닮았을 것이란 법은 없다. 핼리 베일리는 비록 연기 경력은 일천하나 노래를 듣고 나면 그가 왜 에리얼 역할에 캐스팅되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될 만큼 아름다운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가 덜 예쁘다는 것 또한 백인 중심의 미적 기준을 적용했을 때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블랙팬서>의 트찰라 역할의 핵심은 ‘한 번도 백인들의 지배를 받은 적 없는 아프리카 와칸다 왕국의 국왕이자 흑인 슈퍼히어로’이지만, <인어공주>의 에리얼 역할의 핵심은 ‘백인’이 아니라 ‘뭍의 삶을 동경하고 인간 왕자를 사랑한 나머지 아름다운 목소리를 대가로 다리를 얻어 사람이 된 인어’다. 전자를 백인이 연기하는 건 트레버 노아가 이야기했던 대로 “작품 아니더라도 다른 배역을 연기할 수 있는 백인 배우가 흑인 배우로부터 모처럼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인물을 연기할 기회를 앗아가는 행위”인 반면, 후자를 흑인이 연기하는 것은 흑인이 연기할 수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범주를 늘리는 행위다. 당연히 등가 비교할 수 없고, 등가 비교해서도 안 되는 일임에도, 캐스팅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그게 마치 ‘날카로운 일침’인 양 이야기한다.
새로 나올 실사 영화가 원작만큼 훌륭한 영화가 될지, 아니면 원작의 아우라를 훼손한 졸작으로 기록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세상 모든 리메이크가 오직 원작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는 일에만 복무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리메이크를 통해 익숙한 텍스트를 재해석하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전에 없던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게 도덕적으로 그릇된 게 아닌 이상, 그걸 말릴 권리 같은 건 누구에게도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1989년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디즈니의 실사판 리메이크가 대부분 그렇듯, 혼신의 힘을 다 해 만든다고 해도 원작 애니메이션이 쌓아 올린 고유의 아름다움을 비슷하게나마 성취하는 일은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만약 그 감상이 조금이라도 훼손되는 게 싫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2023년 공개될 실사 영화를 보는 대신, 계속 1989년판 <인어공주>를 보면 된다. 이미 33년 전, 숨 막히게 아름다워 그 자체로 완벽한 애니메이션이 공개된 바 있으니 말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