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단절>, @애플TV+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 6관왕에 성공했다. 영미권 작품 위주인 해외 시상식에서 이런 쾌거는 처음이다. <오징어 게임>의 신기록은 '한류 열풍'의 증거지만 지금이 OTT의 전성기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카데미에서 넷플릭스 작품을 후보에 올려주지 않던 게 엊그제 같지 않은가.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올해 에미상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 부문의 후보 과반수가 OTT 드라마로, OTT 콘텐츠 열풍이 입증된 상태. 후보 중 하나였던 <세브란스: 단절>도 애플TV+ 제작 작품이지만 지난 할리우드 비평가 협회 TV 어워즈에서 5관왕을 휩쓸었다.

<세브란스: 단절>은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으로 인기를 끌었던 아담 스콧의 복귀작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작품이다. 이 드라마 속 세상은 쉽게 말하면 극단적인 워라밸이 적용된 세상이라 할 수 있다. 제목의 '단절'은 회사에서의 삶과 일상에서의 삶을 ON/OFF 시키는 뇌 수술의 이름을 의미한다. 제약회사인 루먼의 한 부서에서 일하기 위해선 단절 수술을 받아야 한다. 회사에서의 자아와 일상에서의 자아가 나누어져 두 개의 기억이 분리된 채 살아가야 한다는 뜻. <세브란스: 단절>은 루먼에서 일하는 '마크 S'라는 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밖은 아우티(Outie), 안은 이니(Innie)

<세브란스: 단절>, @애플TV+

기억이 두 동강 난 채로 살아가고 있지만 회사에 잘 적응한 '마크 S'는 어느 날 갑자기 팀장으로 승진한다. 원래 팀장으로 일했던 친구 '피티'는 예고도 없이 사라진 상황. '마크 S'는 당황스럽지만 승진을 받아들이고 곧바로 신입사원의 교육을 맡는다. 신입사원인 '헬리 R'에게 매뉴얼대로 설명하지만 단절 수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헬리 R'은 혼란스러워하며 반항한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마크 S'은 상사가 보는 앞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망친다. '헬리 R'의 등장은 은밀히 잘 흘러가던 부서의 평화를 깨고 회사와 직원들 사이의 균열을 만든다.

매일 말끔한 복장으로 출근하는 '마크 S'는 정작 집에선 누워있거나 술을 마시며 허송세월을 보낸다. 이토록 무기력한 삶을 사는 그가 루먼에 취직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 '마크 S'는 역사학과 교수였으나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난 뒤 삶의 의지를 잃게 됐다. 매일 극심한 슬픔 속에서 허덕이던 '마크 S'는 하루의 절반이라도 그 기억을 잃은 채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루먼에 취직한 것. 단절이란 수술로 삶을 회피하고 있던 '마크 S'는 친구이자 팀장이었던 '피티'가 회사 밖에서 자신을 찾아오자 루먼이란 기업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세브란스: 단절>, @애플TV+

기억을 복구한 '피티'는 자신이 회사에서 잘린 이유가 지하를 조사해서라고 밝힌다. 아우티 '마크 S'는 그 말을 듣고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자신은 복구 수술을 받지 않을 거라 한다. 의심을 품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커지는 건 순식간. 아우티 '마크 S'와 이니 '마크 S'는 회사를 수상히 여기기 시작한다. 제약회사인 루먼은 특정 부서만 지하실에 배치하고 특정 직원들에겐 건물 배치도조차 숨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하면 바로 제재를 가하고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루먼이 숨기고 있는 건 뭘까.

이니 '헬리 R'은 아우티인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고, 사직서를 작성하고, 아우티인 자신에게 영상 메시지까지 보낸다. 하지만 아우티 '헬렌 R'로부터 명확하고 살벌한 거절을 당한다. 이 모든 건 자신의 의지이고 한 번만 더 탈출을 시도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이니 '마크 S'는 특히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헬리 R'을 지켜보면서 무언가를 느낀다. 사소한 즐거움조차 허락되지 않는 회사로 매일 출근하고 무료한 일을 반복하는 게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이니 인격체들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귀하디 귀한 '오피스 + 미스터리 + 심리 스릴러'

<세브란스: 단절>, @애플TV+

회사에 가기 싫을 때 우스갯소리로 "누가 기절시켜주면 좋겠다"라고 말해본 직장인 있는가. 돈을 벌어야 하지만 일은 죽어도 하기 싫은 기분. 직장인이라면 당연하다. 회사가 너무 싫어 차라리 기절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을 때 <세브란스: 단절>을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세브란스: 단절>은 일과 삶의 적절한 균형을 넘어서 극단적인 단절이 생겼을 때 벌어지는 일을 담은 드라마다. 사실 '단절'이란 수술은 일에 지친 사람들에겐 완벽한 시스템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 활용한다면 과연 기본적인 윤리 강령이 지켜질까.

<세브란스: 단절>은 절제된 연출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로 참신한 소재를 성공적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정신 병동을 연상시킬 만큼 절제된 색감의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상황들이 매력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연 배우들의 정적인 연기가 섬뜩함을 더한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드라마 초반엔 내용을 종잡을 수 없어 집중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버티고 지켜봐 주길. <세브란스: 단절>은 소재와 연출만 뛰어난 드라마가 아니다. 루먼의 정체 속에 숨겨진 메시지와 거대한 은유가 이 드라마를 더욱더 풍요롭게 만든다.

코미디 천재, 벤 스틸러의 연출?

<세브란스: 단절>, @애플TV+

코미디 연기에 뛰어나지만 정극 연기조차 잘하는 배우 벤 스틸러가 <세브란스: 단절>의 감독을 맡았다. 반전이지 않은가. 과거 벤 스틸러는 <쥬렌더>, <박물관이 살아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연출하여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이미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세브란스: 단절>에서는 이전 작품에서보다 감각적이고 개성 있는 연출을 보여주어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한 번 더 입증하였다. 아쉽게도 에미상 감독상의 수상은 실패했지만 말이다. 현재 벤 스틸러는 배우로서의 연기 활동보다 감독으로서의 제작 활동을 더 활발히 하고 있다.

지난 4월 애플TV+는 <세브란스: 단절>의 시즌 2 제작을 발표했다. 다양한 시상식에서 상을 휩쓴 작품인 만큼 새로운 시즌 제작은 예견된 결과다. 시즌 1에서 주인공을 맡은 아담 스콧이 시즌 2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씨네플레이 김다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