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영화의 추억

<아바타>(2000)는 기본적으로 웨스턴 무비의 성향을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을 이입한 외지인과 그들을 괴롭히는 원주민을 물리쳤던 전통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반대로 악한 이국인과 땅을 지켜내려는 원주민의 대결로 진행된다. 등장하는 군인들을 이끄는 마일즈 대령(스티븐 랭 분)은 광기에 휩싸여 나비족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부정적 인물로 그려진다. 이것은 태초의 미국이 북미대륙의 원주민을 몰아내면서 '찬란한' 서부 개척 시대를 열었던, 미 건국 초반의 역사를 은유하며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자본과 기술력을 끌어와 당시의 침략을 복원하고 있지만, 제이크(샘 워싱턴 분)와 그레이스(식니 위버 분)가 원주민의 편을 들며 침입자들을 물리치는 것은 일종의 속죄의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외계인이 나비족 인것은 북미대륙에 나바호족 원주민이 있었던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육체가 주는 원동력을 칭송하는 이야기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는 하반신 마비로 설정되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아바타로 싱크되었을 때 뛰어다니고, 교감을 배우면서 말(처럼 생긴 생물)에 올라 타고,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날으는 연습을 한다. 이는 2D가 아닌 3D로 기획된 영화의 형식을 생각해보면 정교하게 배치된 주제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육체적 요소가 강조된 이야기에서 걷기 힘든 주인공은, 초반 군인의 몸으로 지내는 때엔 나비족을 몰아내기 위한 쪽에서 염탐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아바타로 싱크로 되어 더 좋은 육신을 가지게 될 수록 나비족의 정신에 감화되어 더 옳은 선택을 하도록 변화한다. 안되면 될 때 까지라는 군인의 악다구니 정신이 아니라, 강녕하고 튼튼한 육신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유물론적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러나 <아바타>는 육체 뿐만이 아니라 생각(이성 , 지성, 영혼 등)에 관한 측면 또한 던지고 있다. 마일즈 대령은 나비족을 공격하며 네이팜 탄을 쓴다. 이는 지구에선 너무 잔인한 무기라 암묵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무기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타격을 퍼붓는 이유는 언옵타늄이라는 자원을 강탈하기 위함이다. 마일즈는 제이크에게 배신의 책임을 물으며 그의 정신을 탓하고 있지만, 과연 정신에 문제가 있는 쪽은 어디일까? 이는 발달한 인류의 정신 (이성, 지성, 태도 등)을 과연 믿을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으로까지 확장된다.

인간의 태도와는 달리, 나비족이 숲과 자연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정반대로 묘사된다. 그들은 '우리의 에너지는 자연으로부터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며, 수명이 다한 뒤에는 돌려줘야' 한다는 순환주의적 태도를 지닌다. 이러한 생각이 진화에 영향을 준 덕인지, 그들의 육신에는 교감을 위한 기관이 아예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가설을 세우고, 예측하고, 실험하고,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하는 과학적 반복만이 진실을 규명하는 효율적 방식이라 주장하는 자연주의에서 정신 (이성)적 측면을 폄훼하는 부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회는 그런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정신과 지성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넌지시 던진다.

마일즈 대령은 이성을 좋지 않게 활용한다. 파괴가 그의 소통방식이며 기다리는 지혜란 없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이성의 소산인 과학을 이용하여 자연을 탐구하고 외계인인 나비족과 교감하고 있다. 후자는 정신적인 요소의 본디 목적으로 작용하는 긍정적인 면일 것이다. 극의 초반에서 제이크는 마일즈와의 공통점을 언급하며 일치성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레이스를 통해 아바타와 싱크로 된다. 클라이막스 전투에서 로봇 모듈에 올라탄 마일즈는 일종의 기계 아바타로 동조됐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맞서 싸우는 제이크는 나비족과 싱크로 되어 이윽고 마일즈를 물리친다. 인간의 침탈에 관한 역사는 폭력과 약탈로 점쳐져 있다. 이는 본디 폭압은 올바른 육신을 기반으로한 건전한 이성에게 패배한다는 심층적 서사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맨 인 더 다크>의 그 지독한 영감님이시다.

어떤 모티브

제이크와 동료들의 첫 판도라 탐사에서 인간과 나비족이 우호적일 때 운영됐던 폐교에 가게 된다. 거기서 그레이스는 한 동화책을 줍게 된다. 그것은 로렉스 Thee lolax 라는 동화책인데, 이 책은 공교롭게도 나무가 사라져 버린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나무가 사라져 버린 인공도시에서 인간들이 황폐한 삶을 이어난간다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그 골조다. 인간이 초래한 환경파괴로 재앙을 부른 것이 무차별적인 벌목에 있다는 근거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아바타>에서 군인들이 언옵타늄을 캐기 위해 공격하며 불태우는 것도 나무다. 그리고 나비족은 자신들의 여신인 에이와가 스며있어서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것 또한 나무이다. 이윤을 위해 닥치는 대로 벌목하는 기업에게 되려 화가 미친다는 원작동화의 내용을 상기해보면, 영화는 동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뼈대를 차용하여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 더 광범위한 테두리에서 인간의 과학문명을 경계하는 것이다.

일루미네이션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도 했다.

신의 누구의 기도를 듣는가?

나비족의 샤먼인 모앗은 인간에게 진실을 보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진즉에 알았다. 이는 그녀의 대사를 통해 전달된다.

하늘의 사람을 가르쳐 봤지만, 가득찬 잔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지.

제이크는 아바타로 싱크되어 판도라의 말(처럼 생긴 짐승) 위에 올라타서 달려보려고 한다. 그는 짐승과 관계를 만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제압하고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네이티리(조 샐다나 분)의 조언처럼, 교감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상대방과의 통로도 열렸고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된다.

한국은 전쟁과 가난을 많이 겪은 탓인지, 안부를 묻거나 식사의 여부를 궁금해 하는 것이 인사가 됐다. 모든 문명은 인사를 한다. 나비족도 인사를 한다. 그들에겐 "나는 당신을 봅니다 I see you" 라는 표현이 인사다. 문물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인사라는 기표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영혼을 깊숙히 이해하고 들여다보며 교감하는 것은 나비족에게 으뜸의 의미였을 것이다. 자연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비족을 이해한 제이크에게 에이와 신이 축복을 내려주는 것은 당연한 처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