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추천, <프레쉬> (미미 케이브, 2022): 헐리우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극작가이자, 감독 (<돈 룩업>, <론 버건디의 전설> 등), 그리고 프로듀서인 아담 멕케이가 제작을 한 공포영화다. <프레쉬>는 작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며 호평을 받았다. 이야기는 데이팅 앱으로 쓸 만한 남자친구를 찾고 있는 ‘노아’ (데이지 에드가 존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노아는 매일 밤 앱을 키고 도전을 해보지만 대부분 무례하고, 변태이거나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인간들 뿐이다. 데이팅 앱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중, 노아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스티브’ (세바스찬 스탠) 를 만나게 된다. 의사인 스티브는 수려한 말솜씨로 외로움에 지쳐가던 노아를 위로한다. 슈퍼마켓에서의 첫 만남 이후 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노아와 스티브는 곧 연인이 된다.
스티브는 노아를 그의 별장으로 초대한다. 별장은 비싼 물건과 컬렉션으로 가득 찬, 고상한 밀실이다. 벽에 걸려있던 그림들을 둘러보던 노아는 스티브가 만들어준 칵테일을 마시고 잠이 든다. 노아가 깨어났을 때 그녀는 손목과 발목에 잠긴 사슬을 발견하고 괴성을 지르지만 깊고 깊은 지하에서 그녀의 외침은 허공만 맴돌 뿐이다.
차가운 표정으로 다시 나타난 스티브는 노아의 몸이 부위 별로 (고기로) 서서히 팔려 갈 것이며 그녀 말고도 몇 명의 여자들이 밀실에 갇혀있다는 것을 고백한다. 스티브는 여자들의 몸을 한 번에 조금씩 떼어내어 그들의 소지품과 함께 세계 각지에 있는 클라이언트들에게 보내는 일을 하는 부쳐 (butcher) 이자 브로커다. 노아는 온 몸이 다 팔리기 전에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프레쉬>는 많은 지점에서 <소우> 시리즈 (2004~2022)의 첫 번째 편을 연상하게 한다. 단 한 명의 스타도 고용하지 않고 100만 달러의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소우> (제임스 완, 2004)는 잡힌 인질에게 생존을 댓가로 잔인한 게임에 동참하게 한다는 참신한 소재 하나로 제작비의 100배가 넘는 이윤을 남겼다. <소우> 역시 <프레쉬> 가 그랬듯,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가 되고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소우 1> 의 대성공 이후 20년이 흘러 제작된 <프레쉬>는 데이트 앱이나 GPS 등 테크놀로지의 설정이 영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호러 영화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무엇보다 <프레쉬>는 온라인 데이트의 맹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 (그랬다면 그저 그런 호러영화로 남았을 것이다) 온라인 데이트로 길들여지고 세뇌 당한 사람들의 맹점, 즉 관계를 맺고 시작하는 것을 경시하는 경향을 경계한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의 빌런도 온라인 데이트로 만난 남자가 아닌 오프라인에서 만난 남자다. 또한 <프레쉬>의 주인공이자 피해자인 노아는 멍청하거나 이성에 굶주린 여성 캐릭터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침착하고, 영리하다. 그녀가 밀실의 피해자로 전락한 이유는 일상이 되어버린 온라인 데이팅에서처럼 한 순간에 스티브를 만나고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클릭을 하듯 관계를 시작한 것 뿐이다. 준비과정이 없는 만남에는 적지 않은 희생이 따른다. 그것이 때로는 살을 떼어줘야 하는 희생이 되기도 한다.
두번째 추천, <바바리안> (잭 크레거, 2022): <JFK>, <파이트클럽>, <L.A 컨피덴셜> 등의 작품을 포함 130편이넘는 작품을 만들어 낸 굴지의 프로듀서, 아논 밀첸이 제작한 작품이다. 4백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한 이 작품은 박스오피스에서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45.4 백만 달러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는 주인공, ‘테스’ (조지아 캠벨) 가 면접을 위해 에어비엔비로 예약해놓은 디트로이트의 한 숙소를 방문하면서 전개된다. 테스가 늦은 밤 가까스로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예약자, ‘키스’ (빌 스카스가드) 가 짐을 풀어놓은 상태다. 당황한 테스는 키스와 예약 목록을 확인한다. 둘은 같은 집에 두개의 예약이 동시 진행 되었음을 알게 된다. 키스는 집을 나눠 쓰자고 제안하지만 테스는 그가 왠지 불안하다. 그러나 밤이 늦었고, 폭우가 쏟아지는데다가 시내에 행사가 있어 호텔에 남은 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숙소에 머물기로 한다. 알고 보니 키스는 테스와 일하는 분야가 같고, 분야에서 나름 이름을 알린 전문가다. 에어비엔비 숙소에 있던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신 그들은 곧 각자의 공간에서 잠이 든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테스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는다. 그녀의 숙소가 위치한 곳은 쓰레기장과 다를 바가 없는 폐허의 한복판이었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을 뒤로하고 면접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녀는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한다. 테스는 짐을 싸던 중 집의 지하실에 또 다른 통로로 연결되는 문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문 안에는 마치 다른 세계가 존재하듯, 몇 개의 방과 낡은 텔레비전, 그리고 피가 묻어 있는 철장들이 즐비하다. 뒤늦게 도착한 키스 역시 테스의 지하 공간 탐험(?)에 동행한다. 그러나 철장으로 연결되는 또 다른 동굴에서 키스는 비명을 남기고 사라진다.
<바바리안>의 배경은 디트로이트다. 이는 영화의 이야기와 결말에 드러나는 반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디테일이 된다.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고, 1950년대에 들어서는 자동차 산업이 부상하면서 ‘자동차 산업 도시’로 재탄생했다. GM, Ford 등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의 생산공장들이 모두 디트로이트로 몰려들었다. 디트로이트의 황금기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유럽이나 일본 차와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며 막을 내린다. 1980년대 후반 GM 공장이 해외로 떠나면서 디트로이트는 급속히 추락했다. 실업률이 급등하고 범죄가 빈번해지면서 사람들은 디트로이트를 떠나기 시작했다. 2010년 기준, 디트로이트 인구의 36%가 극빈층 이하로 분류되었고, 비어 있는 집들이 전체 주거지역의 26%를 넘어섰다. 이후 디트로이트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을씨년스럽고 공포스러운 공간으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짐 자무시 감독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14) 의 배경 역시 디트로이트다. 텅 빈 도시를 밤 마다 쏘다니는 뱀파이어 커플, 아담과 이브를 그리는 이 영화는 디트로이트라는 공간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바리안>에서의 디트로이트도 비슷한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블록 전체가 빈 집인, 그러나 재개발의 움직임은 전혀 볼 수 없는 폐허와 그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는 거지와 홈리스들은 영화의 설정이 아닌 실제 디트로이트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의 반전에서 드러나는 괴물, ‘바바리안’ 역시 디트로이트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형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로부터 버림받고, 정부로부터 방치되어 혼령이 된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