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실을 담고, 현실은 영화를 닮는다. 몇십 년 전에는 SF 영화 속에서나 보던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재차 말하기는 어쩐지 좀 새삼스럽다. 히어로나 소수의 얼리어답터만 첨단 기기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너도나도 스마트 워치를 차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SF 영화가 아닌 다른 장르의 영화에서 주인공이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활용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백 투 더 퓨처’라고 했던가. 과거에 개봉된 SF 영화를 보다 보면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역으로, 과거에서 온 사람은 현재의 영화를 보고 이거 SF 영화 아냐? 할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의 영화가 상상해낸 스마트 워치
<딕 트레이시>가 상상한 스마트 워치의 원형
1930년대부터 연재된 미국의 인기 만화, <딕 트레이시>는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그중에서도 1990년 영화 <딕 트레이시>는 워렌 비티가 감독이자 주연을 맡고, 마돈나, 알 파치노 등이 출연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마치 만화를 그대로 영상화한 듯한 알록달록한 색채와 과장된 액션 등이 특징으로, 주인공 딕 트레이시 형사의 노란 코트는 영화를 떠오르게 하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딕 트레이시가 찬 손목시계는 ‘투 웨이 라디오(two-way radio)’ 기능을 지니고 있다. <딕 트레이시>는 핸드폰조차 없었을 시절, 송신과 수신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을 ‘투 웨이 라디오’라는 표현을 빌려 묘사했다. ‘투 웨이 라디오’란,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하면 ‘전화 통화’ 기능이다. 원작 만화에서는 ‘투 웨이 라디오’ 손목시계의 기능을 ‘투 웨이 티비’, ‘투 웨이 컴퓨터’로 점차 업그레이드했다.
<스타 트랙> 시리즈가 예측한 수많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SF의 고전 <스타 트랙> 시리즈는 실제로 많은 과학자에게 영감을 준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무선 블루투스 헤드셋부터 스마트 글라스, 태블릿 PC에 이르기까지 현존하는 거의 모든 스마트 디바이스가 <스타 트랙> 시리즈에서 소개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많은 <스타 트랙> 팬들이 굿즈로 소장하기도 하는 스타트렉의 상징적인 아이템, 교신 장치 ‘커뮤니케이터’는 모토로라에서 최초로 개발한 핸드폰의 모티브가 되었다.
스마트 워치 역시 <스타 트랙> 시리즈가 예견한 디지털 디바이스 중 하나다. <스타 트랙>의 커크 선장은 손목에 찬 통신장비로 대원들을 호출한다.
시계로 자동차를 호출?! 1982년 <전격 Z작전>의 스마트 워치
미국 NBC에서 1982년부터 방영된 90부작 드라마 나이트 라이더(Knight Rider)는 우리나라에도 <전격 Z작전>이라는 이름으로 KBS 2TV에서 방영되었다. <전격 Z작전>의 핵심 자율주행 자동차도, 스마트 워치도 2023년 현재와 꼭 닮아 눈길을 끈다. 물론 시계로 자동차를 호출해서 적을 물리치는 기능은 아직까지는 없지만, 충분히 구현할 수 있는 미래에 도달했다. 이미 스마트 디바이스로 세탁기, 청소기 등의 가전제품을 작동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21세기의 영화가 담아낸 스마트 워치
2017년 <킹스맨 : 골든 서클> 에이전트들이 찬 시계? 실제로 판매된 태그호이어의 스마트 워치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속편 <킹스맨 : 골든 서클>에서는 전작과는 달리 에이전트의 시계가 스마트 워치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주목할 것은, 이 시계가 실제 제품이라는 것. <킹스맨 : 골든 서클>은 제작 전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었다. 태그호이어는 1860년 설립된 스위스의 럭셔리 시계 브랜드로, 아날로그시계는 물론, 스마트 워치 라인업까지 보유하고 있다. 태그호이어는 <킹스맨 : 골든 서클>을 위해 ‘킹스맨 스페셜 에디션’ 스마트 워치를 제작했는데, 실제로 한정판으로 일반 고객들에게 판매한 바 있다. 물론 킹스맨 에이전트가 아닌 일반인인 우리로서는 영화에서처럼 적의 정보를 해킹하고 원격 조종을 할 일은 없겠지만.
마침내 그려진 스마트 워치 시대의 사랑, 2022년 <헤어질 결심> 속 애플워치
'<헤어질 결심> 최고의 굿즈는 애플워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영화를 관람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애플워치 가격을 검색하게 된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딕 트레이시>의 주인공 딕 트레이시처럼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인 해준(박해일) 역시 형사이며, 스마트워치를 애용하는 사람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에게 애플워치는 그야말로 수사 필수품이다. 해준은 애플워치를 톡톡 두드려 음성 메모 기능으로 사건에서 느낀 점을 기록한다.
애플워치는 수사의 보조도구를 넘어 두 주인공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핵심적인 매개로 기능한다. 서래는 해준이 서래를 관찰하며 빼곡하게 채워 넣은 음성 녹음을 들으며, 해준을 향한 사랑이 비로소 시작된 것. <헤어질 결심>의 대표적인 대사 “폰은 바다에 버려요”는 (영혼까지 동기화한다는) 애플의 놀라운 연동 기능 덕분에 가능했다. 애플워치로 녹음한 파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핸드폰은 그들의 사랑을 대표하는 물건이다.
생명을 살리는(?) 애플워치! 2023년 <서치 2>
러닝타임임 전부가 맥북, 아이폰 등의 디지털 기기의 화면으로만 구성된 영화 <서치>. 최근 개봉한 <서치 2>는 전작의 스토리에서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지만, 역시 전작의 동일한 연출 방식을 따라 디지털 스크린으로만 모든 장면이 구성되어 있다. <서치 2>에서는 <서치>에서 더 나아가 스마트 워치를 활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데, 이 스마트 워치는 주인공의 목숨(!)까지 살리는 톡톡한 조연 역할을 해낸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만일 납치될 때를 대비해 애플워치를 사고 싶었달까. ‘시리’를 내 개인 경호원으로 매일 데리고 다니는 셈이다.
<서치 2> 주인공이 트렌드에 빠른 10대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애플워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은 한결 설득력을 얻는다. 영화의 반전과 스릴러 요소보다, 영혼까지 복사되는 애플의 동기화 기능에 더욱 소름이 돋는다. 동기화 기능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오히려 추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극장을 나서며 다시금 비밀번호를 복잡하게 바꾸겠다고 다짐한다.
씨네플레이 김지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