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가 눈썹쯤에 내려올 때 보이는 몽환적이고 깊은 눈빛. 남성미를 자랑하는 선 굵은 하관. 당신이 프랑스 영화를 좋아한다면, 루이 가렐의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기억할 것이다. 때론 능청맞게 웃다가도, 금세 우수에 찬 모습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그의 눈을 잊어버리기란 쉽지 않다. 설령 예술영화에 관심이 없는 관객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외모와 연기를 보게 된다면 저절로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장담한다. 배우 루이 가렐은 영화 속 인물과 스크린 밖의 관객 모두를 홀릴만한 매력을 지녔다.

5월 24일 <내 아내 이야기>로 돌아올 루이 가렐(오른쪽)

1989년 6살의 나이로 데뷔한 이래로, 2023년까지 연기 경력만 따지면 34년에 달하는 베테랑 배우 루이 가렐은 현재 유럽 영화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배우 중 하나다. 올해에도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2017), <나의 20세기>(1989) 등으로 잘 알려진 헝가리 출신 감독 일디코 엔예디의 신작 <내 아내 이야기>(2021)로 국내 관객과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 5월 24일 개봉 예정인 <내 아내 이야기>에서 그는 리지 역의 레아 세이두와 함께 호흡을 맞출 예정이며, 카페에 들어오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내기를 건 선장 ‘야코프’(헤이스 나버르)와 리지를 두고 대결하는 묘한 매력을 지닌 남자 데딘 역을 연기한다. 그가 맡은 역할만큼이나 기묘한 매력을 풍기는 배우, 루이 가렐이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그에 대해 알아보자.


퇴폐부터 괴짜까지

그를 대중에게 처음 알린 영화 <몽상가들> 속 테오

루이 가렐의 매력적인 마스크에 속아, 그의 변화무쌍한 연기력을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동시에 모든 배역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줄 아는 배우다. 그가 성인 연기자로 데뷔한 이후 대중들에게 가장 먼저 이름을 알린 배역은 <몽상가들>(2003)의 테오 역이다. 에바 그린이 연기한 이사벨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으로 영화와 혁명에 빠져있으면서 동시에 누나에 대한 성적인 애착을 지닌 인물로, 파격적인 설정과 장면이 많이 등장했던 <몽상가들>에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관객에게 납득시켰다. <러브 송>(2007)에서도 그는 유쾌한 방식으로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이야기했고, 모니카 벨루치와 함께했던 <뜨거운 여름>(2010)에서는 혁명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화가를 연기했다. 하지만 루이 가렐의 연기가 퇴폐의 절정에 오른 것은 <생 로랑>(2014)에서 자크 드 비셰 역을 맡았을 때다. 그는 마약과 성적 취향의 세계를 생 로랑에게 알려주는 존재로 나오며, 퇴폐적인 분위기에 심연을 더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줬다.

이 파시스트 개자식들아! 라고 외치는 장 뤽 고다르로 변신한 루이 가렐

반대로 그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의 끝을 볼 수 있는 작품은 바로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2017)다. 그는 이 작품에서 프랑스의 위대한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로 변신한다. 정수리가 훤한 탈모형의 머리에, 제대로 면도도 안 한 수염,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그는 장 뤽 고다르의 3,40대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이 파시스트 개자식들아!”라고 외치는 영화의 한 장면은, 고다르에 대한 흥미로운 풍자의 절정이었다. 반대로 그런 그가 지난 부산에서 공개한 피에르토 마르첼로의 <스칼렛>(2022)에서 선한 얼굴로 동화 속 왕자 같은 파일럿 장 역으로 나온 모습은 완벽한 반전 그 자체였다. 미치광이 괴짜 감독 고다르, 퇴폐적인 마약중독자 자크 드 비셰, 동화 속 왕자 같은 장, 이상을 꿈꾸는 청춘의 뒤편을 보여준 테오.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배역들이 한 사람의 얼굴에 모두 서려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뼈대 있는 영화 가족

아버지의 영화에 페르소나로 출연하는 루이 가렐. 영화 <질투>

루이 가렐의 첫 데뷔작은 1989년 <구원의 키스>라는 작품이었다. 그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6살에 불과했다. 그리고 <구원의 키스>의 감독은 필립 가렐이었다.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필립 가렐은 루이 가렐의 아버지다. 프랑스의 영화 운동 누벨바그의 마지막 기수였던 필립 가렐은 16살의 나이로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1964)이라는 단편의 각본과 연출을 맡을 정도로 일찌감치 비범함을 보였다. 그는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었으며, 올해에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북두칠성>(더 플라우)이라는 작품을 출품하였다. 필립 가렐이 3년 만에 만든 장편<북두칠성>은 거장의 복귀작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세 자녀를 모두 배우로 기용했다는 사실이 큰 화제를 모았다.

아버지 필립 가렐의 젊은 시절. 루이 가렐의 얼굴이 강하게 겹쳐 보인다.

루이 가렐뿐만 아니라 여동생인 에스더 가렐, 그리고 이복 여동생인 레나 가렐 모두 프랑스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 필립 가렐은 줄곧 아들인 루이 가렐을 페르소나로 기용했다. 그는 1989년 이후 14년만인 2005년 아버지의 영화 <평범한 연인들>의 주연을 맡은 이래로, <새벽의 경계>(2008), <뜨거운 여름>, <질투>(2013),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2015), <북두칠성>까지 총 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여동생 에스더 가렐 역시 <질투>, <러버 포 어 데이>(2017), <북두칠성> 총 3편에 출연했다. 왜 필립 가렐은 자기 아들인 루이 가렐을 페르소나처럼 다뤘을지 궁금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필립 가렐은 청년 시절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 직접 출연하기를 즐겼다. 루이 가렐의 아역 데뷔작인 <구원의 키스> 역시도 필립 가렐이 스스로 주연을 자처했다. 아버지의 청년시절 사진을 보면, 아들 루이 가렐의 얼굴이 뚜렷하게 겹쳐보인다. 어쩌면 자신과 가장 닮은 아들을 자신의 분신으로 사용한 것은 필립 가렐의 오랜 욕망이 아니었을까?


아버지를 따라 감독의 길까지

루이 가렐의 단편 <어린 재단사>. 무려 레아 세이두 주연이다.

그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것은 비단 매력적인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창작 욕구도 물려받았다. 2008년 <Mes Copains>라는 제목의 단편을 연출하며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10년에는 레아 세이두를 주연으로 만든 단편 <어린 재단사>로 자국 내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자국 영화 시상식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세자르 시상식에서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한차례 상영하며, 작은 기회였지만 국내 관객과 만날 수도 있었다. 그는 2015년 <투 프렌즈>를 통해 처음으로 장편 연출 데뷔에도 성공한다. 이 영화에서 그는 프랑스의 스타 배우 뱅상 맥켄(빈센트 맥케인)과 함께 직접 주연도 맡으면서 흥미로운 삼각관계를 이어간다.

칸에도 초청받았던 루이 가렐의 연출작 <디 이노센트>

이후에도 그는 <페이스풀 맨>(2018), <더 크루세이드>(2021), <디 이노센트>(2022) 등 작품 활동을 꾸준히 이어 갔으며, 2023년에는 <디 이노센트>가 세자르 시상식에서 각본상,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연출뿐만 아니라 직접 각본에도 참여했다. 아버지의 명성만큼 뛰어난 작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는 꾸준히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