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가 기대에 부흥하며 관객몰이 중이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3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전편 <범죄도시2>의 흥행 기록을 그대로 이어갈 추세다. 이번 작품은 2편에서 7년 후를 그리며 꽤 많은 부분이 변경됐는데, 새로운 조연 캐릭터들의 활약이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특히 몸에 딱 달라붙는 티와 문신, 되지도 않는 허세로 무장한 중고차 딜러 초롱이가 특히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석도(마동석)에게 붙들려 협력하게 되는 이 초롱이는 고규필 배우가 맡았는데,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재수 없는(!) 모습이 영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알고 보면 천생 배우, 알고 보면 이미 천만 배우 고규필의 출연 영화와 비하인드를 살펴보자.
고필규 아닌 고규필
제일 먼저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 이 사람의 이름은 고규필이다. 보통 필규라는 이름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한때 인터넷에서 이름을 날린 '함필규'씨 때문인지 의외로 '고필규'라고 기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혹시 헷갈리는 독자가 있을까 가장 먼저 짚어본다.
근래 활약한 작품이 특히 많지만, 고규필이 데뷔한 건 벌써 30년 전이다. 그의 데뷔작은 <키드 캅>. 백화점을 털려는 도둑 일당과 이를 막으려는 어린이 다섯 명의 활약상을 그린 <키드 캅>은 김민정, 정태우의 아역 시절이 담긴 영화로 유명하다. 고규필은 이 어린이 멤버 중 한 명인 상훈 역으로 출연했다. 멤버 중 체구가 크고 먹성도 좋은 만큼 민폐, 동네북 캐릭터에 가까운 편이다. 처음부터 본인이 출연할 영화는 아녔는데, 원래 출연하려던 배우가 다쳐 추가 오디션이 열렸고 그때 합격해서 <키드 캅>의 일원으로 발탁됐다. 작품이 개봉하고 고규필은 학창 시절 내내 놀림 아닌 놀림을 받아야 했다고. 이후 학업을 위해 별다른 배우 활동을 하지 않다가 흔히 말하는 '친구 따라 간 오디션'(친구들이 같이 원서를 냈다)에서 KBS 공채 탤런트에 합격해 다시 연예계에 복귀했다.
<폭력써클>, 그리고 <마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등에 출연하다가 처음으로 비중이 있는 캐릭터를 맡은 영화 <폭력써클>. 1991년, '타이거'라는 고등학생들의 우정 모임이 'TNT'라는 폭력써클과 맞붙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정경호, 이태성, 연제욱 등이 주연을 맡았다. 고규필은 경철(김혜성)의 친구로 타이거에 합류한 나상식을 맡았다. 사실 여기 출연진 중 고규필의 진짜 친구는 상호 역의 정경호. 그와는 KBS 공채 동기로 이 작품 외에도 훗날 같이 호흡을 맞춘 작품이 꽤 있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 <폭력써클>은 고규필에게 또 하나의 작품을 물어다주었다. 2009년 영화 <마더>다.
<마더>는 아들 도준(원빈)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한 엄마(김혜자)의 이야기다. 엄마는 자신이 직접 해결할 수 없는, 그러니까 힘이나 폭력이 필요할 땐 도준의 친구 진태(진구)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고규필이 맡은 역이 이 진태에게 붙잡혀 피해 여고생의 진상을 털어놓는 고등학생. 봉준호 감독은 <폭력써클>을 보고 고규필에게 미팅을 요청했고(미팅 자리에서도 “<폭력써클> 잘 봤다”고 말했단다). 고규필 또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니 뭐든 할 준비가 돼있었다. 오죽했으면 당시 고규필이 30kg 가량 감량해 75kg이었는데, 봉준호 감독이 “예전 모습이면 좋겠다”고 하자 “한 달이면 충분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고규필을 살을 찌웠고 '남고생 뚱뚱 역'으로 <마더>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선사하는 순간을 채웠다.
<롤러코스터>와 <베테랑>
이렇게 보면 그의 배우 인생이 탄탄대로였을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공익 근무로 공백기가 생기고 작품 제안이 오지 않자 고규필은 배우를 관둘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제 배우 안 할란다, 술 좀 사줘라 하면서 친구들을 만나곤 했는데 그러다가 한 친구의 도움으로 <롤러코스터>에 출연하게 됐다. <롤러코스터> 주인공 톱스타 마준규 역을 맡은 정경호가 제작진에게 그를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마준규의 매니저로 출연한 고규필은 이 영화에서 (욕만 한 바가지인) 명장면을 남겼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히길 그 장면을 찍고 울었다는데, 그렇게 감정을 막 쏟아내는 장면을 찍고 나니 당시 상황이나 자신의 마음이 뒤섞여서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여기서 이어진 또 하나의 도약은 천만 영화 <베테랑>이었다. <베테랑>의 후반부, 광역수사대 형사가 대기하고 있는 파출소의 순경으로 출연한 고규필는 “왜 욕을 해…”라는 불꽃 애드리브로 다소 뻔한 단역 캐릭터를 빛나게 만들었다. 류승완 감독이 고규필이 나온 영화를 보고 연락했다는데, 아무래도 예상보다 작은 배역이었지만 그 대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본인 캐릭터의 존재감을 더욱 과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초롱이
이후 고규필의 활약상은 드라마로 옮겨졌다. <한번 더 해피엔딩> 나현기, <38사기동대> 정자왕, <라이프 온 마스> 양시, <열혈사제> 오요한, <사랑의 불시착> 홍창식 등 그의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고, 시청자들도 그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앞선 계기들을 통해 2011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영화/드라마에서 꾸준히 얼굴을 비춘 고규필은 영화 <원더풀 고스트>, 드라마 <38사기동대>에서 호흡을 맞췄던 마동석에게 직접 연락을 받아 <범죄도시3>에 합류하게 됐다. 고규필이 <범죄도시2>를 본 날, 마동석이 전화로 이상용 감독과의 미팅을 주선했고 이상용 감독 또한 고규필에게서 초롱이를 완벽하게 소화할 가능성을 보았다.
<범죄도시 3>를 본 관객 모두가 '초롱이 초롱이' 하지만, 사실 초롱이는 그렇게 호감형 캐릭터가 아니다. 큰 체격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쫙 달라붙는 티, 팔 전체를 가득 채운 문신, 재력을 과시하는 듯한 온갖 액세서리 등등. 요즘 인터넷에서 '문돼'(문신돼지)라고 불리는 양아치상의 전형이다. 그런 캐릭터가 이렇게까지 화제인 건 마석도와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고규필 본인이 채운 매력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고규필이) 한 번도 이런 양아치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 제대로 보여줄 것 같았다”는 마동석의 예상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제 고규필은 7월 5일 개봉하는 영화 <빈틈없는 사이>, 6월 26일부터 방영하는 <가슴이 뛴다>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초롱이 열풍(?)이 가시기 전에 그가 보여줄 새로운 캐릭터가 이번엔 대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