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계속)
후기 작품, <짝패>에서도 반복되듯, 류승완의 영화에서 친구와 형제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된다. 주인공에게 이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로 시작하지만 작은 오해와 작은 타이밍과 같은, “가늘고 붉은 선(thin red line)”으로 희대의 원수가 되는, 허망하고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류승완의 액션은 처절하다. 피를 나눴거나 나눈 것과 마찬가지인 벗을 마주하는 액션은 늘, 안타깝고 애잔하기 때문이다.
류승완은 <짝패>이후로도 꾸준히 액션 장르에 머물렀다. <부당거래>(형사 액션), <베를린>(첩보 액션), <베테랑>(형사 액션) 등 약간의 장르적 변형과 변주가 있었고 이전의 작품들보다 스케일이 커졌지만 그는 액션영화 감독의 정체성을 고수했다. 무엇보다 천만 관객을 달성한 류승완의 첫 작품인 <베테랑>은 2010년 이후로 많이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 액션 장르영화의 전환점이 되었다.
<베테랑>이 천만을 달성하고 2년이 지난 2017년, <범죄도시>(시리즈의 1편)가 개봉했다. 강윤성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범죄도시>는 주로 조연으로 활약했던 마동석을 전면에 앞세운 정통 형사 액션 영화다. <범죄도시>는 마동석의 정의로운 형사 캐릭터 이외로도 악랄한 빌런을 맡은 윤계상(장첸 역), 코믹하고도 자상한 반장 역의 최귀화(전반장 역), 마형사의 충성스러운 동료 형사역의 허동원(오동균 역) 등 조연배우들의 빛나는 연기와 액션으로 700만 명 가까운 관객수를 기록하는 성취를 이뤄냈다.
<범죄도시>의 배경은 2004년 서울이다. ‘장첸’(윤계상)은 하얼빈에서 넘어와 단숨에 기존 조직들을 장악하고 가장 강력한 세력인 춘식이파 보스 ‘황사장’(조재윤)까지 위협하며 도시 일대의 최강자로 급부상한 신흥범죄조직의 우두머리다. 장첸 일당을 잡기 위해 오직 맨주먹으로 도시의 평화를 유지해 온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와 인간미 넘치는 든든한 리더 ‘전일만 반장’(최귀화)이 이끄는 강력반은 나쁜 놈들을 한방에 쓸어버릴 작전을 세우고 이들, 강력반 형사들의 ‘가리봉동 조폭소탕작전’이 시작된다.
각종 유행어를 양산해내며 영화의 흥행을 넘어 문화적 트렌드가 되었던 <범죄도시>의 성공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액션 히어로, ‘마석도’의 기여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동석이 연기하는 마석도는 한국 액션 장르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체형에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전편에서 다루었던 80년대의 액션 영화 시리즈, <돌아이>의 전영록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힘이 넘치는 액션과 피 튀기는 대결 씬에서도 끊이지 않는 유머 등 한국영화에서보다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가까운 전형을 보여주었다.
궁극적으로 <범죄도시>의 성공은 시리즈의 제작으로 이어졌으며 팬데믹으로 인해 극장들이 얼어붙었던 2022년, 전편의 조연출 출신인 이상용 감독에 의해 완성된 2편이 공개되었다. 새로운 빌런은 스타로 부상한 손석구가 맡았고, 영화의 배경을 베트남으로 설정하며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를 더했다. 영화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던 한국영화산업의 전망을 다시금 점쳐보게 할 정도로 큰 성공을 보였으며 불과 개봉 3주 만에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가리봉동 작전 후 4년 뒤, 금천서 강력반은 베트남으로 도주한 용의자를 인도받아 오라는 미션을 받는다. ‘마석도’와 ‘전일만’ 반장은 현지 용의자에게서 수상함을 감지하고, 그의 배후에 무자비한 악행을 벌이는 ‘강해상’(손석구)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석도와 금천서 강력반은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범죄를 일삼는 강해상을 본격적으로 쫓기 시작한다.
전편에 비해 조연들의 역할과 활약이 줄었음에도 2편은 공동 주연인 악당, 강해상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마석도와 강해상의 최후의 액션 대결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스릴이 넘친다. <범죄도시 2>의 역대급 흥행으로 3편의 개봉은 어렵지 않게 진행되었고, 불과 1년이 지나 <범죄도시 3>이 개봉했다.
※ 하기 문단엔 <범죄도시3> 악역 캐릭터, 주성철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한다.-편집자 주
베트남 납치 살해범 검거 후 7년 뒤, ‘마석도’는 서울 광수대에서 새로운 팀원들과 함께 살인사건을 조사한다. 사건 조사 중, 마석도는 신종 마약 사건이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고 수사를 확대한다. 한편, 마약 사건의 배후인 ‘주성철’(이준혁)은 마약을 유통하던 일본 조직원을 매수하여 약을 한국으로 뺴돌린다. 이를 눈치챈 조직의 해결사, ‘리키’(아오키 무네타카)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사건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간다. 이제 마석도는 한국의 악당들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넘어온 야쿠자들까지 상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범죄도시 3>은 실망스럽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빌런과 조연들의 약세와 역부족이 이번 영화의 가장 큰 단점으로 보인다. 윤계상, 손석구를 잇는 이준혁의 캐릭터, 주성철은 수많은 한국영화에서 반복해 왔던 뻔한 ‘부패경찰’에서 한 발자국도 진화하지 못한 캐릭터다. <범죄도시>만의 매력적인 악인의 계보가 이번 편으로 인해 끊기는 셈이다. 배우 이준혁은 클리셰로 탄생한 캐릭터를 더더욱 진부한 연기로 재현한다. 마치 악역의 연기를 오로지 눈을 부라리는 것으로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반장 역의 최귀화, 동료 경찰들 역의 허동원, 허준 등을 없애버린 것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선택이다. <범죄도시>는 마동석, 혹은 마석도 하나의 캐릭터로만 사랑받은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짜릿함은 상당 부분, 마석도와 팀의 오케스트레이션, 그들의 활약과 이들이 주고받는 살가운 농담들에서 빚어진 것이다. 물론 이번 편의 과감한 대체가 전편의 역할을 전복하는 만족을 주었거나 비슷한 수준의 케미스트리를 보여주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새로운 반장의 이범수도, 확 줄어버린 (김민재 배우를 포함한) 두 명의 동료 경찰들도 전편 영웅들의 부재를 더 크게 느껴지게만 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혹은 시리즈 전체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동석의 액션만큼은 전편을 능가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현재 700만 관객 스코어를 향해 나가고 있는(이 글이 기고되는 시점에선 이미 돌파했으리라) 영화의 행보는 아마도 마동석의 진보한 액션이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2-3개의 속편이 아닌, ‘유니버스’를 목표하고 있는 시리즈로서, 이번 <범죄도시 3>은 자축보다 성찰을 더 많이 해야 할 시점이다. 성공적인 액션 시리즈의 공통점은 속편을 거듭할수록 주인공의 절대적인 포지션이 서서히 줄고, 시리즈의 주축이 되는 조연들과 새로 등장하는 빌런, 혹은 공동주연과의 케미스트리를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범죄도시 3>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기도 하다.
김효정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