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티노의 영화에 유달리 자주 등장하는 발.

영화계에는 수많은 괴짜가 존재한다. 할리우드의 소문난 영화광 쿠엔틴 타란티노는 유달리 영화마다 발에 집착한다. 희대의 광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베르너 헤어조크는 <피츠카랄도>(1982)를 찍기 위해 페루 밀림에 직접 들어가는 바람에 스태프들과 배우들을 사지로 몬 적이 있다. 누벨바그의 아이콘인 장 뤽 고다르와 스웨덴의 거장이었던 잉그마르 베리히만은 모두 노년에 각각 스위스와 포뤠섬에서 칩거하며 은둔 생활을 이어 나갔다. 엄청난 영화를 만들어 내던 폴 토마스 앤더슨은 <펀치 드렁크 러브>(2002)를 만드는 기간 동안 코카인에 취해있었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영화감독 중에는 유달리 인간의 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언뜻 보아도 광기가 넘치는 비주얼.

그리고 이 리스트에 프랑스의 쿠엔틴 두피욱스도 추가해야만 할 것 같다. 그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기발한 상상력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뛰어난 연출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의 커리어에 있다. 프랑스의 저명한 전자 음악 아티스트이자, 귀여운 인형을 마스코트로 삼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동시에 자국 영화계에서 독창적이고 괴짜 같은 코미디를 만들어 내며 두각을 드러냈다. 한 사람의 커리어라고는 믿기도 힘든 쿠엔틴 두피욱스의 인생과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면, 그의 괴짜 같은 면모에 오히려 애정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의 신작인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2022)가 6월 21일 국내 개봉하면서 <디어스킨>(2019)에 이어 다시 한번 한국 관객을 찾게 된 점은 덤이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 Mr.Oizo

Mr. Oizo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 놓은 "Flat Beat"

프랑스에서 쿠엔틴 두피욱스는 감독보다는 전자음악 아티스트로 훨씬 더 유명하다. 그의 스테이지 네임은 바로 Mr. Oizo다. 여기서 Oizo는 프랑스어로 새를 의미하는 ‘oiseau’에서 음차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1997년 24살의 나이로 EP <#1>을 처음 발매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해당 앨범은 당시 프랑스에서 주로 다루는 일렉트로니카와 프렌치 하우스 사운드에 익스페리멘탈의 장르적 시도를 더하며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듬해 발매한 EP <M-Seq (2,5)>는 전작에 비해 훨씬 더 빅비트와 테크노의 향기가 짙었으며, 그로 인해 댄스플로어에서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계기는 바로 희대의 명곡 Flat Beat가 담긴 첫 정규 앨범 <Analog Worms Attack>의 발매 이후였다.

스크릴렉스와 협업한 <RATATA>는 그의 2008년 곡 ‘Positif’를 샘플링했다

사실 그의 명곡 ‘Flat Beat’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리바이스와의 광고 작업이 컸다. 후술하게 될 인형 Flat Eric이 등장하여 그의 곡 Flat Beat에 맞춰 고개를 흔드는 광고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Mr. Oizo의 앨범은 그야말로 히트를 치게 된다. 지금도 ‘Flat Beat’의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5,000만 뷰를 넘고 있다. 이후에도 Ed Banger Record에서 2008년에 발매한 정규 3집 <Lambs Anger> 속 ‘Positif’는 ‘Flat Beat’만큼의 화제를 모았고, 2023년 미국의 가장 유명한 DJ인 스크릴렉스(Skrillex)가 미시 엘리엇과 함께 그의 곡을 재해석한 <RATATA>를 발매하는 데에 이르렀다. 여전히 Mr. Oizo의 인기는 여전하며, 그는 작년에도 <Voila>라는 앨범을 발매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담으로 2005년 그가 배우로 활동했던 카빈스키Kavinsky를 꼬셔 음악계에 진출하게 만든 점 또한 최고의 업적이 아닐까. 카빈스키는 영화 <드라이브>에 삽입된 ‘Nightcall’로 유명하다.)


쿠엔틴 두피욱스를 상징하는 인형 Flat Eric

Flat Eric. 이 인형은 개일까 곰일까?

사실 Mr.Oizo 활동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인형 Flat Eric의 도움이 컸다. 리바이스 광고에 Mr.Oizo의 트랙이 사용되면서, 함께 고안했던 인형 캐릭터가 바로 플랫 에릭이다. 강아지 인형에서 시작했지만, 귀를 없애 독특한 모습을 지닌 플랫 에릭은 비주얼 자체로도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리바이스 광고에서 경찰에 쫓기는 범죄자 필립과 함께 차에 탄 채로, 경찰을 따돌리려 노력하는 인형으로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Flat Beat’에 맞춰서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드는 장면이 엄청난 화제를 모으게 된 것. 여담으로 인형은 <세서미 스트리트>로 유명한 짐 헨슨 사단에서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Flat Beat’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 플랫 에릭

플랫 에릭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고, 리바이스 광고 3편에 추가로 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영국판 <더 오피스>(스티브 카렐이 나오는 미국판의 원작)에서 등장하면서 그 인기를 입증했다. 2004년에는 영국의 Auto Trader라는 브랜드의 광고에도 출연하는 등 오랜 기간 영국과 프랑스의 인기를 이어갔다. 컬트적인 인기는 심지어 아레나, 코스모폴리탄, 히트, 믹스맥 등 세계 유수의 잡지에서도 다뤄졌다. 이 정도면 당시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도 쿠엔틴 두피욱스는 플랫 에릭을 자신의 아이콘으로 삼고 있다. 3집 <Lambs Anger>의 표지를 루이스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1929)의 역사적인 한 장면을 패러디해 플랫 에릭의 버전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안달루시아의 개>(왼쪽)를 패러디한 <Lambs Anger>


미친 상상력. 프랑스 코미디의 미래는 쿠엔틴 두피욱스에게!

공포의 살인 타이어가 나가신다. 영화 <루버>(광란의 타이어)

쿠엔틴 두피욱스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이던 15살 때라고 한다. 일찌감치 그는 자신의 음악을 발매하는 동시에 뮤직비디오의 연출을 담당했는데, 앞서 언급된 ‘Flat Beat’의 뮤직비디오 역시 쿠엔틴 두피욱스가 연출했다. 그의 첫 작품인 <논필름>(2001)에는 음악적 동료인 카빈스키가 출연했는데, 이때부터 그의 음악적 동료들이 두피욱스의 작품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2010년이었다. 저예산으로 만든 공포 영화 <루버>(2010)는 그야말로 잘 굴러가는 영화였다. 무슨 소리냐고?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타이어다. 원하는 모든 것을 폭파시킬 수 있는 살인마 타이어가 마을을 부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뻔뻔하게 풀어내며 평단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2013년 데스메탈의 권위자인 마릴린 맨슨을 출연시켜 화제를 모은 <배드 캅>(2013)은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영화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

국내에서 처음 개봉한 쿠엔틴 두피욱스의 영화는 2019년에 발표한 <디어스킨>이라는 작품이다. 44세의 남자가 전 재산을 털어 100% 사슴 가죽 재킷을 산 뒤, 덤으로 받은 캠코더로 영화감독 행세를 하다가 미쳐버리는 이야기다. 결국 이 사슴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는 다른 사람들의 재킷을 모두 없애 자신이 유일하게 재킷을 입은 사람으로 남으려 한다. 얼토당토않고 괴랄한 이 이야기는 사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은유가 담긴 작품이다. 카메라를 찍는 존재와 피사체의 관계가 마치 사슴과 사슴을 죽여 재킷을 입는 사람의 관계와 같다는 명제를 풀어냈다. 물론 이 작품의 미친 전개에 혼절하여 영화를 그렇게 보지 못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올해 6월에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독특한 상상력으로 호평받은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가 개봉할 예정이다. 이사 온 집 안에서 12시간씩 젊어지게 만드는 이상한 지하 터널을 발견한 두 부부의 이야기가 주된 주제지만, 영화를 직접 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기발한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백문여 불여일견이라고, 줄거리를 읽는 것보다는 직접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흡연하면 기침한다> 이것이 파워레인저 아니고 흡연 레인저..

하나의 희소식이 있다면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쿠엔틴 두피욱스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름부터 수상한 신작의 제목은 <흡연하면 기침한다>(2023)라고. 타바코 포스(담배 특공대)라는 어벤저 팀이 주인공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누구든지 흡연하면 가차 없이 응징해 버리는 히어로(?)들이다. 담배를 피우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지? 프로그램 노트에 따르면 팝 문화와 섬뜩한 전개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있지만, 늘 그렇듯 괴짜 쿠엔틴 두피욱스의 영화는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부천에 직접 가서 그의 괴상한 상상력을 직접 경험해 보자. 물론 관람 전 금연을 시작하는 것은 잊지 말자!


씨네플레이 최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