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vve 오리지널 드라마로 서비스되고 있는 미드폼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에 이어 이종필 감독과 손미 작가가 다시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고등학교 국어교사 박하경(이나영)이 토요일 딱 하루 해남, 군산, 부산, 속초, 대전, 제주, 경주, 그리고 서울까지 여행을 다니며 소소한 만남을 갖는 8개의 에피소드들을 모였다. 원톱 배우로서 작품을 이끌어간 이나영 배우를 만나 <박하경 여행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하경 여행기>는 14년 만에 아들을 만난 인물로 엄마 역할에 처음 도전한 <뷰티풀 데이즈>(2018) 이후 햇수로 6년 만의 신작이다. 자연스럽게 그동안 공백기가 왜 이리도 길었냐는 기자들의 애정어린 투정이 첫 질문이 됐다. “특별히 공백기를 둔 건 아니에요. 시나리오에 집중하는 편이고, 계속 접하고 있었어요. <박하경 여행기>는 처음 시나리오 보자마자 하고 싶었어요. 구성 자체가 독특한데, 그 안에 담백하고 신선한 느낌도 있고, 모든 게 완벽했어요.” <전국노래자랑>(2013),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을 만든 이종필 감독의 ‘드라마’가 궁금하다는 점 역시 <박하경 여행기>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스토리가 빡빡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느슨한 편이라 처음엔 쉽게만 생각했다. “솔직히 멍때리기만 잘하면 되겠다 싶어서, 그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지 같은 1차원적인 고민만 했어요. 그런데 이종필 감독님, 손미 작가님하고 시나리오를 보면서 의견 나누고 정리하는데 ‘현타’가 딱 오는 거예요.” 에피소드마다 각기 다른 배우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하나 캐스팅 되어가는 와중엔 원톱 주연으로서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그 중심이 돼야 한다는 걱정이 붙기 시작했다.
한바탕 고민이 지나간 후 결정적인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박하경에 대한 설정이 국어선생님 하나뿐이라는 점이었다. “애초에 인물의 히스토리나 특정한 성격이 없었어요. 박하경을 한정하는 경계는 없으니 오히려 우연히 어딘가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의 감정에 집중하면 좋겠다고 방향이 잡히더라고요.” 어디까지나 현장의 분위기가 절대적인 조건이기에 촬영 전 준비해야 하는 감정이 없어 평소보다 더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홀로 여러 여행지를 다니며 그곳에서 마주하는 이들과의 소소한 사연이 중심을 이루는 작품의 정체성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에너지를 얻게 됐다.
시청자가 처음 만나는 하경은 해남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자고 있는 모습인데, 실제로 잠든 이나영을 찍은 것이다. 그만큼 편한 촬영장에서 찍은 <박하경 여행기>의 주인공 하경은 1998년 데뷔 이래 이나영이 선보여온 캐릭터 가운데 실제 이나영의 모습이 가장 많이 반영된 캐릭터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워낙 경계가 없으니 그럴 수 있죠. 제가 운동 배우는 선생님들은 평상시 제 말투를 잘 알잖아요. 진짜 이나영하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기자들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목소리와 말투 역시 <박하경 여행기>에서 듣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덟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먼저 촬영한 건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3화 ‘메타멜로’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부산을 찾은 하경이 여러 번 마주치게 되는 남자 창진(구교환)에게 설렘을 느끼는 과정을 그린다. “실제 영화제 기간에 찍어야 해서 가장 먼저 촬영한 거라 좀 더 긴장했어요. 구교환 씨와의 호흡도 기다려왔고, 더군다나 유일한 멜로 장르에 대화 신은 테이크도 길다보니 욕심을 덜어낼 수가 없더라고요.” 하경과 창진의 긴 대화 중에 묻어나는 “엇박자의 이상한 시너지 효과”가 재미있게 닿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갖고 촬영에 임했다.
유독 이질적인 에피소드가 있다. 군산에서 촬영한 2화 ‘꿈과 우울의 핸드드립’이다. 다른 에피소드들이 해당 지역의 명소와 맛집 등을 들르는 하경을 따라간다면, 과거 하경의 제자였던 연주(한예리)가 군산에서 여는 전시회에 찾아가는 2화는 전시가 열리는 공간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배경과 동선뿐만 아니라, 하경의 태도도 사뭇 다르다. 연주가 예술가의 꿈을 이뤘다고 축하한 것도 잠시, 연주의 지인들이 실은 제자의 작품을 우습게 여긴다는 걸 알고, 꿋꿋이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연주에게 그걸 내색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군산 에피소드를 찍을 때 이상하게 계속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으라차차 라구라구 주문을 외는 연주를 보는데 너무 울어서 이건 결국 못 쓰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지금도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치밀어오르는 복합적인 감정들을 눌러야 한다는 긴장은 있었어요.”
극 중에서 방문하는 곳 중 가장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는 1화 해남을 꼽았다. “예전에 남해까진 가봤는데 해남은 처음이었는데, 대부분 절(미황사)에서만 찍어서 다른 곳은 못 가봤어요. 다시 가서 더 많은 곳을 보고 싶어요.” 사라져 버리고 싶은 순간 토요일 딱 하루 여행을 떠나는 박하경과 이나영의 여행 스타일은 얼마나 다를까? “여행은 좀 더 계획적으로 하는 편이에요. 2박 3일 정도는 가야지 핸드폰도 둘째날이나 돼야 멀리할 수 있고 그때부터 제대로 놀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거 찍으면서 짧은 여행에도 설득됐어요. 숙제 같은 걸 덜어내면 충분히 가능한 것 같아요.”
<박하경 여행기>는 OTT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이나영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TV 드라마와 달리 시청률의 압박을 받지 않고, 매 에피소드가 30분을 넘기지 않는 미드폼 콘텐츠라는 것도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다. “원래 시청률을 계산하고 그러는 편이 아니에요. 미드폼이나 OTT라는 점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어요. 조금 짤막하게 잘 짜인 그저 한 작품일 뿐이에요. 포맷 때문에 현장이 특별히 다르다는 느낌도 전혀 없었어요.” <박하경 여행기>를 어떻게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작품으로 무언가를 느껴주세요, 힐링 하세요, 보다는 멍때리듯 그냥 쉽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이따금씩 생각나면 경주 편 하나 보고 대전 편 하나 보고 하는 식으로, 강요되지 않는 드라마였으면 좋겠어요.”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사진 제공=wav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