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나라 일로 호들갑 떨고 싶진 않지만, 전 세계 영화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씨네플레이에서도 이전에 전한 대로 할리우드는 북미 작가조합이 파업을 시작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거센 불을 끄기도 전, 새로운 바람이 시작됐다. 북미 배우 노동조합의 파업 선언이다.
63년 만의 대파업
미국 배우조합, 일명 SAG(Screen Actors Guild, 영화배우조합)-AFTRA(American Federation of Television and Radio Artists, TV/라디오 연기자 연맹)는 지난 7월 14일부터 파업을 선언했다. 작가조합(WGA, Writers Guild of America)과 마찬가지로 영화·TV제작자연맹(AMPTP,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과의 고용계약 협상에서 타결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배우조합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은 파업에 돌입했고, <바비>나 <오펜하이머> 같은 대형 상업영화의 주역들도 홍보 활동을 전면 중단한 채 피켓 시위에 나섰다. 런던 프리미어 행사에 참여하던 <오펜하이머> 배우들이 영화 상영 막바지에 파업 선언을 전달받고 시사회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대중에게 노출되기도 했다.
이번 파업이 특히 위기로 지목되는 이유는 하나다.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이 같은 목소리를 내며 동시에 파업한 것이 자그마치 63년 만이기 때문. 이미 작가조합의 파업으로 많은 영화/드라마가 제작 중단을 선언했는데, 배우조합까지 파업에 가담하며 사실상 할리우드의 대규모 상업 작품들은 전면 중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파업이 지속된다면 배우들이 홍보에 참여하지 않을 테니 앞으로 공개할 작품들도 순탄치는 않을 예정이다.
작가와 배우들이 들고 일어난 이유
그럼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 그리고 제작자들이 이런 '위기'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조항은 무엇일까. 바로 산업에 급변화를 가져온 인공지능(A.I), 디지털화, 스트리밍 서비스(OTT) 관련 문제다.
먼저 파업을 실시한 작가조합은 OTT 플랫폼 작품 관련 처우 개선과 인공지능 도입 금지 조항을 AMPTP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OTT 시대가 도래하기 전, 작가들은 시즌당 12~24개 에피소드를 집필하고 그에 따른 수당을 받았다. 그러나 넷플릭스를 필두로 OTT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급증하자 시즌당 에피소드가 8~10편으로 급격하게 줄어 작가들의 수입 또한 줄 수밖에 없었던 것. 거기다 이른바 '미니룸'이라는 공동 집필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수입은 더욱 보장받기 힘들게 됐다.
더불어 작가진은 생성형 인공지능과도 싸워야 할 위기에 처했다. 근래 인공지능 시스템의 급격한 발전을 할리우드가 모른 척 할 리가 없다. 작가들은 '인공지능이 작성한 초안을 작가가 수정하는 방식'을 금지해달라고 요구했으나 AMPTP는 이를 거절했다.
배우들 또한 상황은 비슷하다. OTT 플랫폼이 대세가 되면서, 2차 시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대폭 줄어든 것. 기존에는 비디오와 DVD 판매량이나 대여량에 따라, 드라마의 경우 재방송에 따라 배우들에게 부가 수익이 발생했으나 OTT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 같은 시스템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배우들(특히 조연급)에겐 상당한 타격이 온 것이다.
여기에 불을 지핀 건 다름 아닌 '디지털 자료 수집'. AMPTP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라며 배우의 외형과 목소리 등을 스캔해 저장한 후, 유사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3D 모델에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러나 배우조합 측에서 밝히길, AMPTP는 그 자료를 스캔하는 그 “당일”의 수당만 지급하고는 “평생” 자료를 소장하려고 했다며 맹비난했다. 결국 이 같은 제안이 불씨가 돼 배우조합 또한 작가조합에 지지 성명을 발표하며 본인들도 파업을 실시하겠다고 선언, 연대 파업을 시작했다.
기름 붓는 CEO들의 말말말
이번 파업의 신호탄은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과욕이다. 이번 파업이 시작되자 AMPTP 측은 “파업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다”라며 “배우조합은 업계 종사자들을 재정적 어려움에 빠뜨릴 선택을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작가나 배우 입장에서 부당한 상황을 조율하고자 했으나 AMPTP에서 그 조항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각 스튜디오 CEO가 기름을 붓고 만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CEO 밥 아이거는 “(이번 파업이) 업계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로부터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다”라고 조합에게 책임을 미루는 발언을 해버린 것. 이에 배우 숀 건(제임스 건의 동생이자 크래글린 연기한 배우)은 “1980년대 CEO는 가장 낮은 임금 노동자의 30배를 받았는데 밥 아이거는 400배를 받고 있다”며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고 일갈했다. 넷플릭스 CEO 테드 서랜더스 또한 “나 또한 노조 가정에서 자랐다”면서 파업은 본인이 원한 결과가 아니라고 말해 비판받고 있다. 두 CEO는 각각 300억, 600억 가량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근 신작 <오펜하이머>를 공개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양대 조합 파업에 힘을 실었다. 그는 인터뷰 중 파업 관련 질문이 나오자 “파업이 해결되기 전엔 새로운 영화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확실하게 밝혔다. 놀란처럼 인지도나 영향력 있는 감독이 동종 업계 사람들을 챙기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양대 조합 파업에 더 많은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복잡하지만, 상황을 숙지하기 위해 정말 간략하게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드라마 에피소드 수 감소에 따른 처우 개선,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 금지를 위한 작가 조합 파업 실시
배우를 스캔한 디지털 자료를 평생 보유하려는 제작자연맹의 제안에 반대하는 배우 조합 파업 실시(작가조합-배우조합 연대 형성)
조합 연대 파업으로 할리우드 대형 영화/드라마 전면 제작 중단
이렇게 작가조합, 배우조합이 연대하고 파업을 전개 중인 할리우드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에 가깝다. 작가조합이 파업했을 당시엔 '완성된 시나리오를 다시 수정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촬영이 가능했으나 배우조합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촬영이 완전히 불가능해졌기 때문.
뿐만 아니라 외신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파업 동안 배우들의 홍보 활동도 중단된 탓에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없는 개봉예정작 또한 개봉 연기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OTT 플랫폼은 타국의 콘텐츠를 제작, 제공할 순 있겠지만 영화계는 그야말로 '할리우드 프리미엄'을 잃는 건 물론이고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대규모 작품 가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연 할리우드의 작가, 배우, 제작자는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AMPTP가 욕심을 접고 작가와 배우의 대우를 개선해줄까. 먼 나라 이야기지만, 영화와 드라마 등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할리우드 사태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