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시장 빅4의 마지막 타자,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마침내 공개됐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등 믿음직한 배우들을 앞세워 '모든 게 무너진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라는 극단적 설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8월 9일 개봉을 앞두고 7월 31일 열린 언론배급시사회로 첫 선을 보인 <콘크리트 유토피아>. 작품을 만난 후기와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말말말을 정리해 전한다.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재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 재난영화' 카테고리 아래 오랜만에 등장한 영화지만, 재난 영화라고 요약하기엔 훨씬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극중 재난 장면의 분량은 많지 않으며(물론 훌륭한 임팩트를 남긴다) 그 이후 살아남은 이들 간의 갈등과 변화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 사회 드라마적 영역을 종횡하는데 그 어느 하나 아쉽지 않은 변화무쌍함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무기.

그 와중 영화의 요소들은 조화를 이루며 '콘크리트 유니버스'를 완성한다. 점점 극악으로 치닫는 상황 속 캐릭터들의 변화를 눈빛과 얼굴만으로도 드러내는 배우들의 능수능란한 연기, <가려진 시간> 이후 오랜만에 신작을 선보이는 엄태화 감독의 고심이 느껴지는 연출, '한국적'인 상황에서 웃음을 짓다가도 당장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객석을 팽팽하게 사로잡는다. 회색빛 콘크리트처럼 선도 악도 아닌, 생존을 위해 '회색'이 돼가는 풍경 속에서 장르적 재미가 흩뿌려져있다.

빅4 중 가장 마지막으로 타석에 서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란 말을 증명하는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는데, 초중반부에 비해 클라이맥스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 개인의 호불호일 수 있으나 영화를 이끌고 간 힘이 다소 산만하게 분산돼 결말이 아쉽게 느껴졌다.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후속작이 이 아쉬움을 채워질지 모르겠지만, 현재 이 영화만의 끝맛은 조금 밋밋한 편.


최소로 최대 효과 고심

-엄태화 감독

(왼쪽부터) 김도윤, 박지후, 김선영, 박서준, 박보영, 이병헌, 엄태화 감독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세계에 관객을 끌어들이는 관건은 '재난으로 망가진 세상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이다. 이에 엄태화 감독은 “정해진 예산 안에서 스케일은 커보이는 게 중요했다”며 “최소를 보여주되 최대 효과를 얻고자 고심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재난 장면은 분량이 많지 않으나, 거대한 재해의 파괴력과 그것에 휘말린 개인의 공포심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전작 <가려진 시간>에서 폐허가 된 공간을 구현했던 경험을 영리하게 이용한 듯하다.


가장 힘든 건 폭염에 한겨울 옷 입은 것

-이병헌

영탁 역의 이병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겨울에 일어나는 일이다. 때문에 주민들과 외지인들은 “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나가라는 거냐”로 갈등을 빚게 된다. 그 서늘한 한겨울은 사실 한여름에 촬영한 것이라고. 극중 캐릭터들은 겨울 패딩을 입고도 춥다고 벌벌 떨지만, 그들의 본체 배우들은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는 거라서 힘들었다고 한다.


역할 잘 표현하고자 받는 스트레스, 좋은 스트레스라고 생각

-박서준

(왼쪽부터) 민성 역의 박서준, 명화 역의 박보영, 영탁 역의 이병헌

<콘크리트 유토피아> 촬영 중 힘든 점을 묻는 질문에, 이병헌은 위의 '겨울옷' 외에도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인물이 처한 상황에 가까이 가기 위한 몸부림이 힘들다. 배우들은 늘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박서준도 “더위가 제일 힘들었다. 연기를, 역할을 잘 표현하고자 받는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라고 생각해서 어려운 점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면 도균 역을 맡은 김도윤은 “세트부터 배우들의 연기까지, 완벽하게 준비가 돼있어서 '내가 준비됐나' 스스로 압박감이 들어서 힘들었다”고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고를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꽁냥꽁냥 못 보여드려 아쉬워

-박서준&박보영

민성-명화 부부를 연기한 박서준, 박보영

박서준과 박보영은 민성과 명화 역을 맡아 부부로 등장한다. 함께 부부 연기를 한 소감을 묻자 박서준은 “촬영하고 2년 만에 봤다. 촬영 때 생각이 나서 더 신선했다”며 “제3자 입장에서 보려고 하니까 짠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더 예쁜 모습을 못 보여드려서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얘기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모든 캐릭터가 그렇지만 민성, 명화 부부 또한 극중 절망적인 상황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많기 때문. 박보영 또한 “저도 비슷하다. 저희의 꽁냥꽁냥함을 보고 싶은 분들에겐 아쉬울 수 있다. 그래도 현실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드려 만족한다”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에서 꽁냥꽁냥으로 찾아뵈겠다”는 농을 덧붙였다. 엄태화 감독은 “극중 민성이 운영하는 SNS 계정을 만들었다. 영화 보기 전에 보시면 두 사람이 어떻게 꽁냥꽁냥했는지, 그리고 영화 볼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소소하지만 중요한 꿀팁을 알렸다.


나도 가치관을 정립 못했다

-김선영

황궁아파트 부녀회장 금애 역의 김선영

극중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밀려드는 외지인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쫓아낼지 기로에 놓인다. 배우 본인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냐는 질문에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은 받아들인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고 말했다. 부녀회장 금애 역을 맡은 김선영은 “영화를 보기 전까진 받아들인다였는데, 보고 나니 오히려 쉽지 않은 문제다”라며 “갈등이 된다,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 못했다”고 답을 내리지 못하는 솔직한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김도윤은 “가족과 함께 남았을 때와 나 혼자 남았을 때 선택지가 다를 것 같다”는 현실적인 답변을 남겼는데, 극중 외지에 있다가 황궁아파트까지 살아돌아온 혜원 역의 박시후는 “나였으면 외부에서 아파트까지 찾아가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진심 어린 답변을 남겼다.

혜원 역의 박지후(왼쪽), 도균 역의 김도윤


영탁, 이병헌 배우 만나고 바뀌게 되었다

-엄태화 감독

영탁 역의 이병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웹툰 <유쾌한 왕따>의 2부 ‘유쾌한 이웃’을 바탕으로 각색했다. 다만 원작 웹툰과 달리 재난 상황의 아파트가 어떻게 나름의 체계를 갖추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췄고 그 과정에서 주요 인물의 성격도 달라졌다. 원작의 김씨에서 따온 김영탁(이병헌) 또한 그렇다. 엄태화 감독은 “처음 각본을 썼을 무렵의 영탁은 지금보다 스트레이트한 인물”이었다며 “이병헌 배우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극한 상황의 사람들이 선택하길 어려워했고, 그걸 대신해 줄 사람을 찾다가 영탁이 등 떠밀리듯 변해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어졌다”고 캐릭터를 각색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걸 딱 한 장면만 촬영했다. 영탁이 아파트를 올려다보는 장면. 그 장면 하나로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병헌 배우를 보면서 짜릿했다”고 촬영 당시 감흥도 털어놨다. 더불어 그는 이번 영화에 영감, 혹은 모티브를 밝혔는데, 스태프들에게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보여줬다고 한다.


촬영 중 소가 자주 울어

-엄태화 감독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황궁아파트를 그리기 위해 3층가량의 세트를 지어 현실감을 더했다. 엄태화 감독은 연천군의 넓은 공터를 찾아 그곳에 3층짜리 복도식 아파트와 주차장 세트를 만들어 영화 대부분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그는 “소 농장이 촬영장 옆에 있어서 소가 자주 울었다”는 촬영 중 꽤 진땀 뺏을 비하인드를 덧붙였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