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바지핏이 다시 유행 중이다

<비공식작전>(2023)은 중동 국가 레바논에서 납치된 한국의 외교관을 구출해오는(실은 그것이 구출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내막은 알 수 없다) 과정을 그린다.

레바논에서 오재석(임형국) 서기관이 납치되고, 이를 구하러 한국의 외교관 민준(하정우)이 현장으로 달려가고, 거기서 우연찮게 한국인 택시기사인 판수(주지훈)를 만나 티격태격하다가 함께 ‘비공식’ 구출 작전에 임하는 이야기다.


실화기반의 이야기

영화의 이야기는 알려진 바와 같이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1986년 1월 31일 레바논 주재 한국 대사관의 도재승 2등 서기관이 베이루트의 시내에서 무장괴한 4명에게 납치되었다가 21개월 만에 귀환한 실제 이야기가 그 배경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밝혀진 과정은 거의 없다. 실제로 2040년대까지 기밀에 부쳐진 사항이기도 하다(영화 말미에도 이를 명시한다). 그렇기에 연출자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사건을 완전히 재구성하면서 단순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복잡다단한 화약고의 줄거리를 상업 영화의 화술로 풀어내려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벌어지는 내전 상황이 얼마나 많은 사정들이 얽히고설켜있는지 등은 과감하게 스킵하고 넘어간다.

그래서인지 레바논 내에서 한국인을 노리는 현지의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이나 관계에 관한 의아함은 조금씩은 발생한다. 만약 레바논의 사정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조금은 폭넓은 이해가 따라올 것이다. 레바논의 당시 정세를 알자면, 국내 종교와 주변국의 폭력과 국가 자체의 지정학적 요건과 역사적으로 겪어온 사건 등등의 요소가 필요하다. 영화는 이에 관련한 과격 단체들을 모두 간단하게 처리해 버린다. 그래서 마치 외국인만 보면 납치해서 몸값을 받아내기에 급급한, 한국으로 치자면 서양인을 유괴한 빌미로 돈을 버는 총든 조폭쯤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장치들이 영화를 진한 감정에 녹이기보다는 액션과 인물관계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준다.

반대로 <그을린 사랑>(2010)은 진한 감정을 위해 레바논의 배경을 십분 활용한다.


배경이 되는 레바논

서양 문명의 발원지인 레바논의 별명은 중동의 스위스였으며 그 수도인 베이루트는 중동의 파리라고 불릴 정도였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에서부터 시작된 고난의 역사는 튀르키예의 오스만튀르크를 거치고 1차 대전 전후의 프랑스 식민지화까지 간다. 2차 대전 뒤에 독립하여 번영을 누리나 했지만, 1975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인해 주변국들처럼 중동의 화약고가 됐다.

비교적 기독교 인구가 많은 탓인지 레바논은 유난히 주변국의 타깃이 되는 것 같았다. 국경을 접한 시리아는 자기네 내전에 파병을 요구했고, 아래쪽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조직을 멸하기 위해 남 레바논을 점령하기도 했다. 결국 베이루트를 차지하기 위한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군 조직 간의 충돌이 있었고, 여기에 레바논 내 기독교 민병대와 이슬람 민병대까지 가세하면서 아군 적군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지경까지 가게 된다.

2020년 5월, 대폭발의 원인으로 거론되는 질산암모늄 2750t이 6년이나 항구에 적치돼 있었다는 사실이 레바논의 현실을 보여준다


연출과 캐릭터들

주로 액션과 스릴러 장르 영화의 장인인 김성훈 감독은 그의 장기에 걸맞은 실력을 선보인다. 영화의 전반에 산재해 있는 뚫고 나가는 힘은 <끝까지 간다>(2014)를 연상시키고, 개인과 국가의 시스템이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배경과 그 여파에 관한 것을 다룬다는 면에서 <터널>(2016)이 연상된다. ‘국가는 개인을 보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상업영화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며 소화해내는 세련됨을 선사한다.

민준은 구출 브로커이자 미술상인 헤이스(마르친 도로친스키)를 만나며 몸값 대용으로 게르니카의 스케치를 지니고 레바논에 입국한다. 그는 미술상을 상대하는 만큼 피카소의 그림에 관한 사실을 달달 외워갔다가 그것을 들킨다. 사실 그의 구출 작전은 잿밥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된 일이었다. 하지만 재석을 만나 게르니카를 감싸고 있는 재석의 아들이 그린 그림을 전해줄 때는 책으로 달달 외운 사랑이 아닌 뜨듯한 인류애, 동포애로 변모해 간다.

그에 반해 판수의 변모는 좀 아쉬움을 남긴다. 돈 가방을 탈취했다가 가책에 휩싸여 돌아와 민준을 돕는다거나, 국경에 접근하기 위해 직접 택시를 몰기로 결심하는 부분 등은 좀 의아하게 와닿는다. 최근 <더 문>(2023)의 부진으로 신파적인 요소를 꼽는 대중이 늘어났다. <비공식작전>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름 대작 치고는 좀 섭섭한 성적을 보여주곤 있다. 거기에 아마도 이런 신파스러운 요소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한다.


두 그림, 그리고 한국과 레바논

<비공식작전>에는 네 가지의 전쟁이 등장한다. 먼저, 레바논 내의 내전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고국인 한국의 휴전 상황이 등장한다. 민준이 베이루트 공항에 내릴 때는 파블로 피카소의 1937년 작 <게르니카>를 가지고 있다. 피카소가 당시 그림을 그릴 때에는 스페인의 내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스페인 북부 도시 게르니카에 쏟아진 폭격으로 하룻밤 사이에 1600여 명이 사망했고 이 소식을 들은 작가는 한 달 만에 7미터짜리 거대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고 민준이 헤이스의 집에 도착했을 때 보게 되는 그림은 이 역시 피카소가 1951년에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6.25 한국전쟁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2021년에 한국에서 전시한 바 있다)

이 두 그림은 앞의 두 전쟁과도 맞닿은 느낌이다. 한국은 남한과 북한이 대치한 휴전상태이며 레바논은 외부의 적을 상대함과 동시에 내부의 개신교 측과 이슬람 측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 오서기관을 빼오려는 시도에 안타고니스트가 또 존재한다. 다름 아닌 이 작전을 국내 선전용으로 이용하려는 남한의 안기부다. 극 중의 대사로 저번에 외무부의 어떤 일을 안기부에 맡겼더니 무조건 북한의 소행으로 일축하려 했다는 사정을 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부의 적을 상대함과 동시에 내부의 적들과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측면에서 레바논을 인용하여 한국의 실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당시의 대처

실제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도재승 서기관을 구하는데 관심이 없었다가 여론 개선용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게다가 몸값을 지불하지 않아 유럽의 전문가가 사비를 털어 인질을 인계해왔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이미 천문학적 수준의 비자금을 숨겨놓은 상태였다. 호칭이 ‘전 대통령’에서 ‘씨’로 격하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가는 개인을(우리를) 보호하는가? 최근 터지는 무기력한 사태들을 보며 이에 대입하는 것도 관람의 감상을 나누는 한 형태가 될지 모르겠다.


프리랜서 막노동꾼 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