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온 정인(정이서), 그가 사는 곳 인근 저택에 혜정(김혜나)이 이사 온다. 할머니가 살았던 오래된 집,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저택. 서로 사는 환경이 다르듯 전혀 달라보이는 정인과 혜정은 갖은 폭력에도 쉽게 대응하지 못하는 정인을, 외지인이라고 괄시 받는 혜정을 목격하며 서로에게 조금씩 호기심을 느낀다.
‘얼굴합이 좋다’는 표현은 멜로 영화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취미생활>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정인과 혜정, 그리고 이 둘을 연기한 정이서와 김혜나는 그야말로 ‘얼굴합이 좋아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 여성의 여정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물론 그 얼굴 합은 당연히 두 사람의 연기력에 뿌리를 둔다. 유약한 듯 보여도 단단하게 삶을 꾸려가는 정인과 주변 시선에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혜정을 두 배우는 스크린에 현현한다. 씨네플레이는 8월 30일 개봉을 앞둔 두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얼굴합뿐만 아니라 성격합까지, 케미가 넘쳤던 두 사람의 대화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쯤 촬영에 들어가셨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개봉하는 게 또 남다르실 것 같은데 간단하게 소감 먼저 부탁드릴게요.
정이서 작년 여름에 8월 말쯤 시작해서 딱 한 달 찍었거든요. 그래서 촬영도 금방 끝났는데 또 금방 이제 감독님께서 편집에 들어가시고 금방 완성을 해서 금방 부천영화제에 다녀오고…. 이제 영화제 다녀온 지 거의 한 달 만에 지금 개봉을 앞두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모든 게 되게 빨리 진행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저도 아직 실감이 잘 안 나고 아직까지는 이런 상태로 계속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김혜나 저는 더 금방금방이었던 게 작년에 촬영 들어가기 한 보름 전에 감독님한테 대본을 받고 읽고 3일 만에 답장을 했어요. 하루는 튕기느라고(웃음) 3일 만에 연락을 하고 바로 만나고. 정말 제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며칠 없었거든요. 그래서 촬영하면서 감독님에게 얘기하고 제가 익숙해지고 이런 과정들이 있어서 정말 계속 달려온 것 같아요. 그거 끝나고 잠깐 한숨 돌리고 났더니 편집이 끝났다고 하고, 개봉도 가을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8월 말이 돼버리고. 갑자기 작년이 막 생각나면서 진짜 약간 숨찬 느낌이에요.
캐스팅 말씀을 하셨었는데 혹시 이 영화에 대해 ‘이 영화를 하게 되겠구나, 해야겠구나’ 싶은 계기가 있을까요?
정이서 전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일단 정인이라는 그 인물의 감정선을 쭉 따라가는 게 첫 번째로 좀 매력 있게 다가오고요. 근데 딱 결심을 하게 된 순간은 이 정인이라는 인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정인이는 행복해지고 싶은, 평범한 행복을 누리고 싶은 사람일 뿐인데 그게 잘 안돼서 혼자 힘들어하고 발버둥 치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만약 시나리오 뒷이야기가 있다면 정인이가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김혜나 저는 지금도 그날이 기억이 나요. 막 더워져서 햇볕이 엄청 센 날, 카페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데, 제가 인스타에 DM을 안 보거든요. 근데 그날따라 인스타를 막 이렇게 구경하다가 그냥 기분이 되게 이상해서 DM을 봤어요. 그것도 메시지를 보려는 것보다 정리하고 싶단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모르는 분들 DM을 딱 열었는데 “안녕하세요. 저는 하명미입니다. 혜나 씨 잘 지내셨어요? 번호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네요.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합니다. 전화 주세요”라는 메시지가 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연락을 했더니 감독님이 ‘이런 영화를 지금 들어가야 되는데 사실 김혜나 씨는 두 번째로 생각했던 캐스팅이다. 근데 나는 혜나 씨한테 지금 이거를 주고 싶다’ 그러셔서 “일단 주세요. 급하신 거죠?” 그랬더니 “네 좀 급해요” (해서) 그날 바로 읽었어요.
읽어보니까 이런 캐릭터는 진짜 처음 받은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항상 당하거나 약자였거나 뭔가 되게 센 역할이지만 정인이 같은 캐릭터들을 많이 했었는데 혜정이는 그렇지 않았어요. 되게 흥미롭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이런 거 안 해봤는데?’ 약간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하룻밤 자고 눈을 딱 떴는데 그냥 갑자기 다시 읽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읽으면서 도전해 보자, 한번 해보자. 감독님이 옛날에 연극 보고 잠깐 인사하셨었는데 그때 기억이 남으셨나 봐요. 그런 감독님이 이렇게 제안을 한 데는 이유가 있겠다, 한번 해볼까 이 생각이 들어서 정말 딱 하루 참았다가 전화했어요. 제가 그걸 만약에 (DM을) 안 읽었으면 이 혜정이는 저한테 못 왔을 거예요.
원작 소설이 있는데, 혹시 감독님께서 원작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코멘트를 해주셨는지요.
정이서 시나리오 읽고 나서 원작 소설을 전달받아서 읽었거든요. 근데 그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원래 서미애 작가님께서 그 정인이라는 인물을 소설로 그려나가실 때 되게 수동적이고 주체적이지 않은 인물을 생각하셨대요. 근데 영화화되면서 정인이가 조금 더 주체적인 인물이 됐을 때, 정인이가 계획을 하고 자기만의 뭔가가 있거든요. 조금씩 행동해 나가는 그런 인물로 변화를 하게 됐다고 감독님께서 말씀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원래 소설에는 전 남편 광재와의 이야기가 없는데 영화에만 추가가 돼서 저도 그 점이 조금 흥미로웠어요. 왜냐하면 광재라는 인물이 소설에도 등장을 하긴 하지만 정인이와의 이야기는 아예 없었거든요. 비교를 하면서 읽으니까 그것도 좀 재밌었어요.
김혜나 저한테는 이렇게 저렇다 얘기 많이 하신 건 없고 딱 하나는 얘기하셨어요. “혜정이는 꼭 멜빵 청바지를 입을 거예요.” (일동 웃음) 그래서 “왜요?” 그랬더니 “꼭 입혔으면 좋겠어요”. 저 진짜 멜빵 청바지 입고 한 장면 나오잖아요, 감독님이 그 장면을 적극적으로 제안하신 거고. 원작이랑 영화랑 혜정이라는 인물이 조금 비슷한 것 같지만 굉장히 달라요. 혜정이 원작 속에서는 정인이한테 굉장히 직접적으로 이렇게 해 저렇게 해 뭔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처럼 나오는 단선적인 느낌이라면 영화에서 감독님이 캐릭터를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셨어요.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절대 뭘 하지 않고 ‘내가 도와줄까 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될 것 같은데’ 약간 옆에서 떠보는 느낌으로 그런 식으로 얘기해요. 정인이가 이렇게 단단해져 가는 그 길에 그냥 옆에서 이렇게 지켜봐주고 힘이 돼주는 역할이 된 것 같아서 소설이랑 영화랑 보는 데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명미 감독님과 같이 작업한 소감은 어떤가요? 영화계에 오래 계셨지만 장편은 이번이 처음이시기도 하고요.
정이서 감독님 너무 러블리하세요. (일동 웃음) 그 얘기하지 말라고 맨날 그랬는데 감독님이 진짜 소녀소녀하시거든요. 손으로 뭐 이렇게 만드시는 것도 좋아하셔서 이번 영화 스페셜 엽서도 감독님이 직접 만드시고. 현장에서도 그게 있어요. 정인이가 샛길에 이렇게 꽃을 심는 그 장면이 있는데 그게 사실 감독님이 하나하나 다 심으신 거거든요. 감독님께서 직접 다 이렇게.
김혜나 가내수공업이야.(웃음)
정이서 완전 가내수공업으로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이제 직접 하신 것들이 되게 많았어요. 러블리하시고 열정적인.
김혜나 우리 감독님 세상 귀여워요. 근데 뭔가를 결정해야 되고 본인이 원하는 거를 해 나갈 때는 굉장히 카리스마가 있으세요. 그래서 평소에는 막 "너무 귀여워요" 막 이러다가… 저희가 어떤 장면을 찍을 때, 순간 당황해서 ‘이거 어떻게 하죠’ 그러니까 시간이 별로 없는데도 저희를 설득하셨어요. 저희도 설득돼서 그 장면을 촬영했는데, 감독님이 원한 그림이 좋게 나와서 역시 하명미 감독님 진짜 멋있다 (했죠). 영화에 관해서는 굉장히 멋있고 평소에는 진짜 세상 귀여워요.
정이서 브런치를 좋아하세요. (일동 웃음)
영화 대사로도 나오지만, 여름에 야외면 벌레도 많고 좀 어렵잖아요. 여름에 찍어서 기억에 남는 건?
정이서 지금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건 정인이 집이 파주였거든요. 거기가 실제로 대대손손 그 어르신분들께서 사셨던 집이라서 진짜 옛날 집이었어요. 정말 산 중간에 있어가지고 벌레들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뭐라 그러죠? 공기 뿌예지는 그 소독약 뭐죠? 그거를 이제 한 번 뿌리고 촬영에 들어가는데 그게 다 날아갈 때까지 숨 참는다고(웃음) 막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고. 그게 가장 지금 기억나요.
그 방역차가 뿌리는 그런 건가요?
정이서 맞아요.
김혜나 그걸 감독님하고 PD님하고 같이 뿌렸어요. 저는 별로....
정이서 선배님 집은 집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환경이 그래도 쾌적했어요.
김혜나 저는 벌레 진짜 무서워했는데 저 갈 땐 항상 없더라고요. 모기도 없고, 벌레도 없고. PD님이랑 스태프분들이 다 이렇게 방역해 주시고. 제가 반바지를 많이 입으니까 온몸에다가 모기 기피제 뿌려주시고. 그래서 거의 뭐 벌레랑은 만나지 못했어요. 좀 아쉽네요.(웃음)
감독님께 어울리는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정인이가 달을 보는 장면에서 타이틀이 떠요. 그리고 혜정이 위기를 앞두고 있는 순간에 달이 이렇게 비추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이 설명한 것이 있는지, 없다면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정이서 저는 따로 감독님께 설명을 들은 건 없는데 그 생각은 해봤어요. 저는 사실 되게 힘든 일이 있거나 할 때 웃기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김혜나 달님한테 빌어?(웃음)
정이서 아녀요!(웃음) 비슷하긴 한데, 그러니까 전 종교가 없는데 가끔 너무 힘들 때 이 어딘가가 누군가가 있다면 “내가 힘들다, 지금 내 얘기를 들어달라” 하고 싶은데 그 대상이 없으니까. 제 집이 1층이거든요. 이렇게 창문을 열면 하늘이 그래도 어렴풋이 이렇게 보여요. 별들이랑 달이 가끔 이렇게 떠 있는데 거기를 이렇게 보면서, 달을 향해 기도를 하는 건 아니지만 속으로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정인이도 뭔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김혜나 저도 감독님이 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신 건 없고, 다만 그 장면을 찍을 때 혜정이가 좀 서글펐으면 좋겠대요. ‘나 진짜 편안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또 이런 일이 나한테 왜 일어나는 거야 도대체’ 그런 마음으로 있었고 그때 하필이면 그때 이렇게 보름달이 떠 있는데 그 당시라 굉장히 밝은 빛이잖아요. 어둠 속에서 별도 밝지만 달은 엄청나게 밝은 빛인데 그 빛을 향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나 그냥 내버려둬 제발’ 약간 이런 마음으로 갔던 것 같아요.
영화 중간중간에 총을 사용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따로 연습을 하셨을까요?
정이서 따로 훈련을 하지 않았고요. 왜냐하면 정인이라는 인물 자체가 총을 능숙하게 다루고 이러면 또 아닐 것 같아서. (웃음) 사실 영화 보면 저희는 그냥 들 수 있는 자세대로 그냥 들고 다니거든요. 근데 그 총이 생각보다 진짜 더 크고 무겁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실제 총이었으면… 쏠 때 반동이 엄청나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반대로 이제 선배님은 되게 이제 멋있게 이렇게 들고.
김혜나 저는 액션 영화 보면서 엄청 연구했죠. “감독님, 혜정이 잘해야 되나?” 했더니 “혜정이는 취미가 많지만 완벽한 취미는 없어도 된다. 그냥 취미일 뿐이지”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여러 번 해본 약간 능숙한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 개인적으로 그랬으면 좋겠어가지고 정인이 이렇게 총 잡아줄 때도 괜히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액션 영화 많이 보고. 어릴 때 사격 비슷하게 해본 것 떠올리고, 그다음에 군대 갔다 온 친구들한테 “총 쏘면 너 몸이 얼마만큼 움직여?” 이렇게 물어봐서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냥 이 정도 반동 있지 않나” 해서 “오케이 알았어” 하고. 진짜 총이 아니니까 어떻게 써야 되는지 약간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영화 중간에 정인이 ‘필요한 것’들을 쓰기 시작하잖아요. 혹시 그 부분은 시나리오에 명시돼 있던 건가요?
정이서 시나리오에 있었어요. 감독님께서 실제 제 글씨로 하셨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걸 썼어요. 그것도 나름 테이크를 여러 번 갔거든요. 왜 여러 번 갔지?(웃음)
그거랑 관련된 질문을 드리면 정인이는 ‘바다 보이는 집’이라고 쓰잖아요. 혹시 두 분은 산이랑 바다 쪽 어느 쪽이 좋으신가요?
김혜나 바다요!
정이서 저도 바다요! 저는 바다의 탁 트여 있는 느낌이 더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산은 벌레를 굉장히 무서워하기 때문에… 제가 어릴 때부터 물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는데 물을 워낙 좋아해서 혼자 뜨는 법이랑 이렇게 대충 개헤엄 정도는 스스로 터득을 했거든요. 그래서 물에 자주 이제 놀다 보니까 저 바다가 더 좋고, 선배님은 자격증도 있고.
김혜나 저는 바다를 가면 되게 편안해져요. 어떤 분들은 산에 가면 편안해진다고 하는데 제가 강원도로 이사를 갔거든요. 그래서 서울에서 일을 하고 운전해서 강원도를 가다 보면 딱 바다가 보이는 시점이 있어요. 그러면 갑자기 마음이 확 안정이 되면서 그 약간 날 섰던 게 이제 편안해지고. 그리고 저는 옛날에 물을 정말 무서워했어요. 그래서 샤워도 뒤돌아서 할 정도로. 세수도 숨 참고 막 이렇게 하고 그랬었는데 그거를 극복하려고 스쿠버 다이빙을 어릴 때 배웠어요. 지금도 물론 바다랑 물은 무섭지만 극복을 한 거죠. 이제는 샤워도 이렇게 앞 보고 해요.(일동 웃음) 이제는 다이빙도 하고 바다에서 즐기는 스포츠나 배 운전하는 것도 너무 재밌고. (정이서에게) 언니가 나중에 배에 태워줄게! 내 배는 아니지만. (일동 웃음)
관련해서 하나 더 질문드리면, 정인이는 원하는 것에 고양이를 쓰잖아요. 김혜나 배우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만, 혹시 고양이랑 강아지 어느 쪽이든 좋으세요?
정이서 저는 고양이요. 선배님은 강아지?
김혜나 아니, 나는 둘 다 너무 좋아하는데 고양이도 정말 좋아해요. 제 친구네 근처에서 너무 귀여운데 다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데리고 와서 닦이고 약 먹이고 밥 먹이고, 그래서 엄청 건강해졌거든요. 정말 귀여워요. 그래서 딱 안아서 “너무 예뻐!”하는 순간 온몸에 알러지가…. 근데 너무 좋아해서 길고양이랑도 잘 놀아요. 그런데 그러고 나면 온몸이 가려워지고 그래가지고, 고양이도 너무 좋아하는데 가까이는 못하고 멀리서만.
그러면 반려견 자랑을 잠깐 하신다면.
김혜나 우리 쪼꼬는요!(일동 웃음) 데리고 올걸, 극장이라서 못 데려왔거든요. 그 친구가 아기 때 고양이랑 잠깐 같이 키웠었어요. 막 가까이 가고 싶은데 고양이처럼 딱 요만큼 거리를 두고 막 굉장히 좋아서 이렇게 오고 싶은데 잘 못 오고 막 이래요. 근데 걔는 머리 긴 예쁜 여자를 굉장히 좋아해요. 아마 저쪽 구석 화장실에 있다가도 저기서 예쁜 여자가 걸어오면 보이지 않는데도 뛰어나와서 엄청 꼬리를 흔들고 막 안아달라고 그러고 너무 신기해요. 그리고 진짜 약간 되게 조용해서… 비밀인데, 드라마 리딩을 갔는데 걔를 데려간 거예요. 근데 추운 한겨울에 리딩이 좀 오래 걸려서 어떡하지 하다가 제작사 대표님한테 ‘여기다 좀 놔둘게’ 이러고 놔뒀는데 리딩하는데 얘가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바닥에 집 만들어주고 쉿 하고 4시간 동안 리딩했는데 한 번도 안 움직이고 버텨주더라고요. 엄청 얌전하고. 한 7년 동안 거의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한 두세 달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촬영할 때도 항상 같이 가고 스태프들도 너무 예뻐해주고, 짖지 않으니까 현장에 막 데리고 들어가고. (웃음) 민페긴 한데 다 너무 예뻐해 주셔서.
영화 중간부터 정인과 혜정, 두 사람이 수많은 취미생활들을 해보잖아요. 두 분은 취미생활을 할 때 이것저것 다 해보시는 타입인가요? 아니면 딱 하나 꽂히면 거기에 이렇게 확 빠져드는 편이신가요?
정이서 저는 꽂히는 편인 것 같아요. 약간 부끄러운데 (웃음) 최근에 개인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는데 제가 편집도 하는 거거든요. 전문가가 아니니까 되게 서툴고 제대로 못하긴 하는데, 쉬는 날 노트북 이렇게 켜놓고 편집을 하면 하루가 금방 가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그 재미로 사는 것 같아요. 재밌어요, 집중을 딱 할 수 있는 거다 보니까.
딱 부천영화제 때 (브이로그)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두 분이 함께 하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김혜나 저도 등장 많이 했어요. (웃음) 저는 혜정이랑 비슷하게 취미 부자인데 하나에 꽂히면 그래도 꽤 길게 집중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처음에 요가에 너무 좋아가지고 시작한 게 10년 정도 하다가 강사 시험 준비를 하다가 (웃음) 막판에 시험만 못 보고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하는 것 같아요. <요가 학원> 찍으면서 더 재밌어졌고, 그 영화도 제가 요가를 하고 있는데 감독님이 요가원에 왔다가 저를 보고 캐스팅하신 거였어요. 그리고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탱고 추는 장면이 잠깐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아르헨티나 탱고에 엄청 빠져서 그것도 한 4~5년 정말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라벤타나’라는 탱고밴드 콘서트에서 두 곡 공연하고 그런 식으로 되게 깊게 들어가는 것 같아요. 되게 많은 걸 하고 있긴 한데 스쿠버 다이빙도 지금 강사까지 가고. 볼링도 <스플릿> 찍으면서 재미 붙어가지고 한 3년간 매일 볼링장에 출퇴근을 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계산을 해봤더니 그 볼링장에서만 한 달에 100얼마를 쓰더라고요.
그 정도 쓰면 사장님이 되게 기뻐하는 얼굴로 반겨주잖아요.
김혜나 사장님이랑 아직도 연락해요. (일동 웃음) 그럴 정도로 깊게 빠져요.
두 분은 이 영화에서 처음 만나셨을 텐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서로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비슷해서 친해지는 경우도 있고, 달라서 흥미가 생기는 경우도 있잖아요.
정이서 선배님을 전체 대본 리딩 때 처음 뵀어요. 그래서 촬영 전에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었다 보니까 촬영 초반에도 되게 서로 막 낯가리면서 어색해하면서 ‘선배님’ 이러면서 촬영을 시작했거든요. 사실 정인이랑 혜정이라는 인물도 사실 초반에는 서로 경계도 하다가 점점 이렇게 친해지잖아요. 그래서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담긴 것 같아요, 저희도 그렇게 친해지면서. 그리고 저는 취미도 정적인 취미 좋아하고 되게 찐내향인 느낌이에요. 집순이에다가 선배님은 진짜 외향적이고 취미도 액티브한 거를 이렇게 즐기시고 하니까 되게 다르잖아요. 그쵸?
김혜나 나도 내향인이야. (일동 웃음) 나도 내 집에 있는 거 좋아하고 혼자 바닷가 이렇게 앉아 있는 거 좋아하고 해. (웃음)
정이서 제가 잘못 알고 있었네요. (웃음)
김혜나 아까 얘기한 걸 덧붙이면은 정인이랑 혜정이가 이제 둘이 처음 만나서 경계도 아니고 호감도 아니고 뭔가 궁금하니까 계속 지켜보는 그게, 혜나라는 저 자신도 ‘이 친구는 어떻게 연기하지 이 친구는 어떤 사람이지’를 알고 싶으니까 그 궁금함으로 계속 지켜봤던 것 같아요. 저희가 초반에는 침대에 앉아 있어도 내가 앉아 있으면 (이서가) 안 오고 이서가 있으면 저도 안 가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밥을 먹고 둘이서 이렇게 “너무 피곤하다, 누울까?” 그래서 여기 누워 같이 놀자 해서 둘이 침대에 누웠는데 그때가 제일 가까워진 어떤 순간이겠죠. 거기서 잠깐 한 30분 잠이 들었어요. 잠이 들었는데 감독님이 보시고 그 장면을 영화에 넣으셨어요.
정이서 맞아요. 그게 원래는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인데, 저희가 정말 너무 배부르고 졸려가지고 이렇게 쉬고 있었던 건데 그걸 이렇게 담아주셔가지고.
그러면 혹시 영화 속 서로의 명장면을 뽑아주신다면?
정이서 저는 저 선배님 그 달 보는 장면 개인적으로 진짜 좋아해요. 그 장면 정말 좋아하고 그리고 이거는 항상 볼 때마다 혼자 터지는 장면인데 선배님이 그 빈집에 들어가서 물건들 훔치는 모습,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김혜나 진짜 엄청 힘들었어. (일동 웃음) 그 장면이 제일 힘들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이렇게 가져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내 거를 만들어버리는 그런 여자인 거니까요. 혜정이를 보여줄 수 있는, 혜정이라는 인물을 더 풍성하게 보여주는 행동들이어서 촬영할 때 계속 힘들어했어요. “감독님 얘 이상해요, 취미가 절도야” 이러면서. 이렇게 농담하긴 했는데 그 장면이 저도 볼 때마다 재미있어요. 저는 인트로 때 정인이 할머니랑 누워있는 장면을 제일 좋아해요. 그 장면은 볼 때마다 울컥해가지고. 할머니 대사도 좋고 정인이 그때 그 표정도 너무 좋고 저는 그 장면을 제일 좋아하고. 개인적으로는 저 첫 등장했을 때. 집에 처음 가서 이렇게 구경하다가 발코니로 나와 구경하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 예쁘게 나와서 좋아요.(일동 웃음) 옛날에는 연기를 잘하면 무조건 다 예쁘게 나온다고 믿었고, 그게 지금도 믿고 있지만 그 장면 정말 예쁘게 찍어주셨어요.
개봉 전이지만 부천 영화제 상영, GV 시사회 등으로 관객들을 만나셨어요. 그때 관객들 반응이라든가 주변 사람 반응 혹은 들었던 질문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실까요?
김혜나 저는 제 옆자리에서 영화 같이 본 친구인데 고3 학생이 저한테 편지를 써서 준 거예요. 그것도 손글씨로. 글씨 너무 예쁘더라고요. 영화를 전공하고 싶은 고3 학생인데, 영화를 찍을 때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꿈이 어느 순간 갑자기 영화들이 이렇게… 자기가 생각했던 영화와 다른 영화들만 나오고 그러면서 ‘내가 이 길을 가는 게 맞나’라는 생각하다가 우리 영화를 우연히 만나고 저희 연기하는 걸 보고 자기가 다시 희망을 가지고 힘을 얻었다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 저한테도 고마운 말을 했는데 그 눈빛에서 너무 뭔가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게, 저 되게 옛날에 데뷔했잖아요. 제 옛날 작품부터 DVD 이런 거 구해가지고 다 봤대요. 그러면서 응원한다는 편지를 이렇게 써줬는데 그거에 너무 고맙더라고요. 이제 방학이 끝나서 앞으로 이렇게 영화를 보러는 못 오지만 마음은 함께 하겠다는, 응원도 되고 힘도 되고 막 고맙기도 하고.
정이서 저도 선배님 얘기 들으니까 생각나는 분 계신데 이번 영화가 영화제에서 3일을 상영했는데, 이틀은 GV를 했고 하루는 상영만 했어요. 어떤 분이 GV 없는 세 번째 날까지도 영화를 보러 3일 연속 와주신 거예요. 그리고 편지를 적어서 이렇게 보내주셨는데 이게 참 힘이 되더라고요. ‘그래, 난 잘할 수 있어! 난 오늘도 할 수 있어!’ 이렇게 힘낼 수 있는 응원이 되고. 얼마 전에 그 서포터즈 시사회 때도 오셨더라고요. 이제 얼굴을 보면 알거든요. 그래서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그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게. 그리고 영화를 4번 보신 거잖아요. 볼 때마다 볼 때마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정말 기억에 남아요. 편지마다 이렇게 다르게 해서 써주시는데 그게 또 힘이 되고요.
제가 이 인터뷰 기사로 대신 감사하다는 마음을 꼭 전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근래에 듣고 있는 플레이 리스트가 있다면?
정이서 저는 최근에… 빌리 아일리시 노래인데, <바비>라는 영화에 나오는 곡인데… ‘What Was I Made For?’ 맞나? 이 노래가 나는 무얼 위해 태어났는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깊이 성찰하는 내용이거든요. 제가 또 (MBTI) F거든요. (웃음) 혼자 노래 듣다가 또 울고.
저도 F여서. (웃음)
김혜나 어! 나도 F예요. (일동 웃음) 저는 요즘 최신 음악을 듣고 있어요. 감독님 춤 연습하는 ‘Super Shy’(뉴진스) 같은 거. 그게 공약을 했어요. 팬들이 공약을 해달라고 해서.
정이서 제가 GV 때 ‘Super Shy’를 얘기한 거예요…. 감독님이 연습하고 있다고 하셔가지고! 저 진짜 몸치거든요.
김혜나 저도저도. 그래서 연습하고 있어요.
정이서 (김혜나에게) 저 이따가 알려주세요.
김혜나 알려줄게! 그래서 최근에 유행하는 음악들을 들어보려고 하고 있어요. 너무 모르니까 창피한 거예요.
정이서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김혜나 그래서 요즘 Top100 이런 거 드는데 리메이크한 음악들은 귀에 잘 꽂혀도 새로운 곡들은 하나도 모르겠고. 그래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정이서 음악을 즐기지 않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일동 웃음)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점을 소개해주신다면.
정이서 저희 영화가 스릴러긴 하지만 잔인한 장면들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두 인물, 정인이랑 혜정의 그런 감정들에 주목해서 흘러가는 영화니까 거기에 공감을 같이 해 주시면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그런 상황들, 되게 아프고 좀 무거울 수 있는 그런 상황들과는 상반되게 자연 풍광은 아름답게 담겨 있어요. 그래서 그런 상반된, 대비된 그런 부분들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혜나 어쩌면 정인이랑 혜정이는 되게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에요. 혜정이는 이미 그걸 많이 겪어 많이 겪고 단단해져 있는 인물이고 정인이는 이제 그걸 막 겪고 있는데, 이 정인이가 얼마만큼 더 단단해지고 얼마만큼 강해지는지를 지켜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살면서 여성 남성을 떠나서 힘든 일들이 무조건 다 있잖아요. 정인이가 점점 강해지고 자기를 이렇게 단단하게 만드는 걸 보면서 힘을 얻으셨으면 합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사진=㈜트리플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