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도 보도 못한 이들이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여기에 살아있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우당탕 생존 신고는 등대의 불빛이 되어 검은 바다를 비춘다. 그러면 깜빡깜빡. 또 다른 불빛들이 켜진다. 2021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며 돌풍을 일으켰던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이야기다. 한꺼번에 조명이 켜지듯 순식간에 매진된 건 물론이고 영화제 종료 후에도 관람 문의가 쇄도했다.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듣보인간’들의 모습은 그렇게 다른 이들의 전구를 켰다. 크레딧에 ‘듣보인간1’, ‘듣보인간2’, ‘듣보인간3’으로 표기된 이들은 영화를 공동 연출한 권하정과 김아현, 그리고 그들의 친구 구은하다. 세 사람이 처음 빛을 쏜 대상은 ‘방구석 음악인’ 이승윤. 작은 음악회에서 만난 무명 싱어송라이터의 가사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으며 “심적으로 힘들고 마음이 많이 아팠던 해”를 보낸 하정의 마음을 울렸고, “이 가수랑 작업해 보고 싶다"라는 하정의 이야기에 아현과 은하는 당연하다는 듯 원탁에 둘러앉았다. 무작정 시작한 일의 끝엔 피, 땀, 눈물이 담긴 뮤직비디오가 남았다. 이승윤이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의 초대 우승자가 되기 전의 일이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그 뮤직비디오의 제작기이자, ‘듣보인간’들이 세상에 보낸 반짝이는 사인이다.

좌충우돌 제작기는 뮤지션에게 연락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호기롭게 협업을 선언했지만 그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데서부터 이미 난항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닿을 수 있을까? 열정을 보여주기에 그럴듯한 결과물만 한 건 없으니, 세 사람은 방구석에서 영상을 찍는다. 책상을 무대 삼고 스탠드를 조명 삼아 만든 ‘무명성 지구인’의 일러스트 뮤직비디오는 이들의 어엿한 첫 작품. 그다음엔 공연장에 찾아가 덜덜 떨며 편지와 영상 파일을 건네고, 가슴 졸이며 답변을 기다리는 일이 남는다. 뮤직비디오도 다큐멘터리도 이대로 끝나는 건가 우려하던 찰나 “내내 울다가” 보냈다는 이승윤의 답장과 함께 다음 챕터가 열린다. 이처럼 영화엔 계속해서 파도가 친다. 가수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한 데모곡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할 땐 마냥 밝은 내일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제작 규모가 커지고 코로나 상황이 겹치며 미래는 다시 불투명해진다. 촬영감독부터 스튜디오 담당자까지 뮤직비디오 제작에 크고 작게 관여한 이들은 힘 빼놓는 말만 늘어놓는다. 지금 예산으로는 턱도 없을 텐데, 이렇게까지 하고 망하면 속상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는 포기하는 게 나을 텐데. 그런데 무모하다는 평가는 하정의 마음에 오히려 불을 지핀다. 안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거듭 들으며 반발심이 생겼다는 하정. 그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 역시 단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영화가 힘주어 강조하지는 않지만 ‘듣보인간’들의 동력은 단연 세 사람이 함께하는 회의에 있다. 서울과 부산을 계속해서 오가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공간은 다름 아닌 집이다. 집의 주 거주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는 영화의 선택은 그곳을 공동의 장소로 보게 한다. 그중에서도 거실에 놓인 동그란 식탁은 의견이 활발히 오가고 일이 진행되는 핵심 거점. 노래에 대한 감상부터 뮤직비디오의 콘셉트와 컷 구성에 이르기까지, 원탁회의에는 온갖 주제가 오른다. 게다가 여기서 쏟아진 말은 아무리 느리고 더디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실현된다. 그뿐인가. 진척되지 않는 일과 미적지근한 반응에 대한 속상한 마음까지 다 털어놓고 새로운 출발도 기약할 수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마법의 탁자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그 마법의 뒷면을 파헤치지 않는다. 그저 “언니를 조금이나마 웃게 해주고 싶었다”는 담담한 독백과 “같이 하는 건 항상 꿈이었다"라는 무던한 읊조림을 흘려두는 것으로 족하다. 네가 울기에 따라 울고, 네가 웃기에 따라 웃는 게 이 신비로운 공동 작업의 비밀이라면 비밀인 셈이다.

갈등은 다른 데 있다. 감독들과 이승윤이 한 화면에 들어오는 순간엔 항상 묘한 긴장이 내재한다. 낯선 이를 대하는 어색함과 상호 존중에서 비롯된 조심스러움이 큰 이유겠지만 그게 다는 아닌 듯하다. 이들이 한 프레임에 잡히는 각각의 장면들엔 생각의 차이, 커져 버린 일에 대한 우려, 고마움과 난감함이 섞인 복잡한 마음 같은 것들이 잔잔히 흐른다.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나 겸연쩍은 시선 처리가 그러한 긴장의 존재를 미약하게나마 환기한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그 거리와 격차야말로 이 특별한 애정의 조건이라는 걸 알고 있는 영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당신에게 바짝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우리에게 닿은 당신의 노래에 우리의 방식으로 화답하고 싶은 절실함이다. 그리고 그건 무언가 해내고 싶다는 욕구와 자연스레 연결된다. 하정의 말처럼 본인이 좋아하는 걸 찾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에, 기적처럼 찾아온 순간을 맞이한 세 사람은 눈이 부실만큼 열심이다. “처음 시작은 이승윤의 노래였지만, 진행될수록 이승윤은 안중에도 없고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었던 것, 욕심내고 싶었던 것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영화의 말미, 뮤직비디오 제작이 무사히 끝난 뒤 이승윤이 보내온 편지에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전체를 압축한 듯한 아름다운 문장이 들어있다.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편지의 영화다. 주인공들은 종종 편지로 감정을 전하고 대화를 나눈다. 정성스레 눌러쓴 손 편지와 고심의 흔적이 엿보이는 이메일, 그리고 SNS에 올린 줄글에 이르기까지. 받는 이를 생각하며 찬찬히 적어 내려갔을 무수한 문장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든다. 하정, 아현, 은하, 승윤에게 그랬듯 많은 이들의 어깨를 가만히 도닥일 고마운 말들이다. 한편으로 <듣보인간의 생존신고>는 편지의 한 성질을 닮은 영화이기도 하다. 양자의 거리는 물론 상대에게 도달하는 시차까지도 품는 편지처럼 영화도 여러 간극과 기다림을 수용한다. 그러기 위해선 결국 쓰는 이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당당한 믿음이 필요할 테다. 그건 수신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이기심이 아니라, 자신에게 솔직해질 때 얻을 수 있는 자부심에 더 가깝다. ‘우리만의 상영회’를 마친 사람들이 “언젠가 다시 만나자며 안녕을 고한 뒤,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유독 맑고 개운하게 보이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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