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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펜스> 배우 인터뷰 영상

아오이 유우는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배우다. 2001년 <릴리 슈슈의 모든 것>으로 데뷔해 현재까지 꾸준히 '배우'와 '스타'로서의 정체성을 고루 다지며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 얼마 전엔 오다기리 죠와 함께한 최근작 <오버 더 펜스>가 한국에 개봉했다. TV시리즈 <아오이 유우X4개의 거짓말, 카무플라주>(2008)를 작업한 바 있는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근래 단아한 캐릭터들을 주로 맡아온 아오이의 행보에 다소 심심했던 팬들이라면, <오버 더 펜스> 속 사토시의 자유분방한 태도는 과거 그녀가 선보였던 다채로운 매력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한다. 사토시와 더불어, 그녀가 지난 16년간 보여준 캐릭터 가운데 유독 빛나는 케이스를 정리해봤다.


'시오리'

<릴리 슈슈의 모든 것>
(リリィ シュシュのすべて, 2001)

아오이 유우의 영화 커리어 시작점에는 이와이 슌지가 있었다. 중학생들의 처참한 삶을 지독하리만큼 서늘한 시선으로 담아낸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아오이는 원조교제를 강요당하는 소녀 시오리로 분했다. 1시간을 훌쩍 넘긴 시점에 등장해 상대적으로 비중은 적지만, 막막한 상황에서도 생기를 잃지 않으려는 시오리의 에너지는 더없이 선명했다. 시오리가 품는 '어둡지만은 않은' 기운이 있었기에 그녀의 마지막 선택이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었으리라. 아오이 유우는 불과 중학생의 나이에 세상에 대한 적개와 순수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배우였다.


'앨리스'

<하나와 앨리스>
(花とアリス, 2004)

이와이 슌지는 <하나와 앨리스>에 다시 아오이 유우를 기용했다. 온통 절망뿐이었던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달리, <하나와 앨리스>는 유쾌하고 활기찬 순정만화 같은 영화다. 두 고교생이 한 남학생을 두고 삼각관계에 놓인다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아오이 유우의 해사한 매력은, 이와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넘어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기에 충분했다. 아기자기하게 이어지는 감정선도 좋지만, 아오이가 보여주는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와 앨리스>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구미'

<허니와 클로버>
(ハチミとクローバー, 2006)

<허니와 클로버>의 아오이 유우는 그야말로 '만화를 찢고 나왔다'는 표현이 걸맞는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 있다가 옆을 슬쩍 돌아보는 모습만으로도, 두 친구 다케모토(사쿠라이 쇼)와 마야마(카세 료)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섯 청춘의 복잡한 사랑을 그린 동명의 만화를 영화로 옮긴 <허니와 클로버>에서 다른 배우들은 특별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한편, 아오이는 내내 극 전반을 장악하며 영화 톤을 자유자재로 매만졌다. 다만 그녀 홀로 지탱하기엔 영화가 지나치게 밍밍했다.


'키미코'

<훌라 걸스>
(フラガ-ル, 206)

조용한 마을의 학생들이 새로운 문화를 학습해 훌륭한 결과물을 선보인다는 서사는 강한 설득력을 보장한다. 1960년대 후쿠시마 탄광마을의 소녀들이 마을을 살리고자 훌라 춤을 배운다는 <훌라 걸스>가 전하는 감흥 역시 만만치 않다. 훌라 춤 특유의 유쾌하고 정열적인 에너지, 춤을 연습하는 이들이 각자 지닌 사연이 만나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으로써 훌라를 배우기 시작하는 기미코(아오이 유우)가 단연 돋보이는 건 물론이다. 여리여리한 파스텔 톤이 떠오르던 기존의 이미지와 달리 <훌라 걸스>에서는 새빨간 소품들을 몸에 두르고 세차게 몸을 흔든다. 이 작품으로 아오이는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센'

<오센>
(おせん, 2008)

드라마 <오센>은 많은 이들이 아오이의 '리즈시절'이라고 추켜세우는 작품이다. 일본의 전통 문화에 빠삭한 센은 거의 모든 순간 기모노를 입고 등장하고, 요리를 아주 잘 만들며, 늘 세상물정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 '요즘 얼굴' 같은 아오이의 모습과 전통에 박식한 센의 이미지가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오히려 그 상충으로 인해 '모에적'인 매력이 한껏 살아났다. 일본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도 전달하되, 결국 무용한 일이다. 아오이 유우의 예쁜 모습에만 골몰하기 십상이니까. (편애를 담아 <오센>의 이미지는 보다 많이 첨부했다)



'피자배달부 소녀'

<흔들리는 도쿄>
(シェイキング東京, 2008)

봉준호 감독 영화에 아오이 유우가 출연한 적도 있다. 옴니버스 영화 <도쿄!> 속 단편 <흔들리는 도쿄>다. 11년간 바깥에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카가와 테루유키)가 우연히 눈을 마주친 피자배달부를 사랑하게 되고, 그로 인해 바깥 세상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아오이가 분한 피자배달부는 아주 드물게 등장하지만, 오랫동안 세상을 등진 사내를 바깥으로 나오게 하는 동력을 발산한다. 오랜만에 건조한 표정의 그녀를 만날 수 있어 더욱 반가운 작품이었다.


'린'

<플라워즈>
(フラワーズ, 2010)

<플라워즈>는 일본의 내로라하는 여성 배우들이 빼곡히 모인 작품이다. 히로스에 료코, 다케우치 유코, 나카마 유키에, 스즈키 쿄카, 다나카 레나 등 한국에서도 익숙한 배우들이, 여섯 여성이 살아온 3대에 걸친 시간을 채웠다. 이 영화의 시작을 아오이 유우가 연다. 1936년을 배경으로 가부장적인 풍습에 떠밀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린을 연기했다. 대부분 맹하고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에도, 개인의 의지와 전통 사이에서 고민하는 복잡한 마음이 세세히 새겨졌다. 기모노 입은 아오이 유우를 흑백화면으로 만나는 감흥도 쏠쏠하다.


'나츠메'

<양과자점 코안도르>
(洋菓子店コアンドル, 2011)

'음식영화'로 불려도 좋을 만큼의 식도락과 아오이의 앳된 얼굴이 만났다는 점에서, <양과자점 코안도르>에 나츠메는 <오센>의 센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남자친구를 따라 무작정 시골에서 상경한 나츠메가 얼결에 도쿄의 인기 양과자점 코안도르에 들어가 겪는 좌충우돌을 담았다. 일본에서 제작된 음식영화답게 일상의 아기자기하고 나른한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이야기 구성이 다소 밋밋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아오이 유우의 사랑스러움에 대한 찬탄은 만장일치에 가까웠다.


'노리코'

<동경가족>
(東京家族, 2013)

일본 가족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야마다 요지 감독이 일본영화의 최고걸작으로 손꼽히는 <동경이야기>를 리메이크 했다. 시골에 사는 노부부가 도쿄의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해 그들에게 환대받지 못하는 과정을 그린 골격은 엇비슷하다. 아오이는 막내아들 쇼지(츠마부키 사토시)의 애인 노리코로 분했다. 원작의 하라 세츠코가 분한 정감 넘치는 여성 노리코와 같은 역할이다. 원작에서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의 미망인이었지만, <동경가족>에서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애인이라는 설정이 다르다. 하지만 노리코가 천사처럼 노부부의 여정을 성심껏 돕는다는 건 여전하다.


'사토시'

<오버 더 펜스>
(オーバー・フェンス, 2016)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아오이 유우는 점차 전통적인 여성상을 연기하며 장년배우로서의 이행기를 지났다. 방황보다는 순종이 걸맞는 여성상으로 분하며 그녀는 아이코닉한 스타의 이미지에 '좋은 배우'로서의 저변을 더할 수 있었다. <오버 더 펜스>는 오랜만에 아오이 유우에게서 청춘의 징후를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스스로 망가진 인생으로 고백하는 사토시는 주변의 시선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을 살아간다. "비정상"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길거리에서 갑자기 춤을 추면서 벅찬 마음을 표현하고, 목이 터져라 오열하며 자신의 삶을 비관하기도 한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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