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1일, 배우 장국영이 거짓말처럼 돌연 세상을 떠났다. 중화권 최고 스타의 자리를 지킨 장국영은 앞으로 보여줄 모습들이 무궁무진한 배우였기에,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빈 자리는 크게만 느껴진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만우절 농담보다 그의 부드러운 표정들이 더 먼저 떠오르는 이들이 한국에도 많을 것이다.
기억 속 장국영의 모습을 선명히 하기에 좋은 4월이다. 지난 3월 30일엔 장국영의 대표작 <아비정전>(1990)과 <패왕별희>(1993)가 다시 극장가에 걸렸다. 이미 여러 차례 상영된 바 있지만, 언제 봐도 새로운 감흥을 안기는 작품이기에 여전히 반가운 소식이다. 한편,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운영하는 중국영화 전용관은 4월을 맞아 특별전 <중국 최고의 배우 ‘장국영’>을 마련했다. <영웅본색>(1986), <영웅본색2>(1987), <천녀유혼>(1987), <백발마녀전>(1993), <야반가성>(1994), <금옥만당>(1995) 총 6편이 한달 내내 상영된다. 장국영의 생애를 간단히 정리해봤다.


데뷔 전

장국영은 1956년 홍콩 가우룽,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재단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말론 브란도, 캐리 그랜트, 알프레드 히치콕 등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을 고객으로 둘 만큼 유명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긴 했지만, 그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행복하지 않은 시절을 보냈다고 밝혔다.

12살에 영국으로 건너갔다. 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엔 친척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바텐더로 일하며 노래도 불렀다. 그 시절, 자신의 영어 이름을 '레슬리'로 정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좋아해서 주연배우 레슬리 하워드의 이름을 가져왔다. 리즈대학교에서 섬유 경영을 전공했으나, 부친의 병환으로 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홍콩으로 돌아왔다.


배우보다는 가수로
더 잘 나가던 초창기
장국영의 음반

1977년, 홍콩 ATV가 주최하는 'Asian Music Contest'에 참가해 돈 맥클린의 'American Pie'를 불러 2등을 차지했다. 유려한 영어 발음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 길로 가수로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초창기엔 레슬리라는 이름으로 영어로 부른 노래를 발표하다가 1979년부터 광둥어 노래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 즈음 꾸준히 영화도 찍었지만 배우보다는 가수로서 반응이 그나마 더 좋았다. 1977년부터 1985년까지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만 배우로는 무명에 가까웠다. 훗날 평생을 함께하는 파트너 진숙분을 만난 1982년부터는 가수로서의 입지를 제대로 다져 히트 싱글도 여럿 발표했다.

<홍루춘상춘>(1978) / <고수>(1983) / <성탄쾌락>(1984)

<영웅본색>으로 스타덤에 오르다

드디어 터졌다. 오우삼 감독의 걸작이자 홍콩 누아르의 최초/최고로 손꼽히는 <영웅본색>을 통해 장국영은 일약 대스타의 자리에 올라섰다. '<영웅본색>은 곧 주윤발'이라는 인식이 워낙 넓게 퍼져 있지만, 영화는 적룡이 분한 조폭 송자호와 장국영이 분한 경찰 송아걸의 갈등이 서사의 주를 이룬다. 적룡과 주윤발이라는 굵직한 이미지의 배우들이 내뿜는 에너지와 공존하는 장국영의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면모는 홍콩 누아르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다. 그는 '당년정'(當年精)을 불러 가수로서의 면모까지 뽐냈다.

'영웅본색' 시리즈

그리고 1987년 속편 <영웅본색 2>와 왕조현과 함께한 <천녀유혼>에 출연하며 톱스타의 자리를 굳건히 했다. <영웅본색 2>에서는 심금을 울리는 공중전화박스 신으로 전편보다 더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이때 나오는 노래 '분향미래일자'(奔向未來日子)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천녀유혼>의 성공은 전적으로 왕조현의 눈부신 미모에 있었지만, 영화의 재미는 장국영이 분한 어리바리하지만 순수한 서생 영채신과 처녀귀신 섭소천의 절묘한 케미가 좌우했다. <영웅본색>처럼 <천녀유혼> 역시 속편이 제작됐고, 마찬가지로 장국영이 출연했다.

    

초콜릿 CF로 한국을 휩쓸었다
장국영 (張國榮) 오리온 투유 초코렛 광고 1989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사이, 많은 해외 스타들이 한국의 제품 광고를 촬영했다. 장국영은 초콜릿 '투유'의 주인공이었다. 1989년 제작된 이 광고는 여자 모델을 세우고, 비가 오는 배경은 금지하고, 행복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초콜릿 광고의 업계 철칙을 모두 거스르고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비오는 날 밤 연인과 이별하며 괴로워하는 장국영의 처량한 모습은 그야말로 여성 팬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이 광고 덕분에 매출이 300배나 뛰었다는 후문. 광고 촬영 당시 아주 나이스한 태도로 훈훈한 미담까지 남겼다. 그해 장국영은 인기 음악 프로그램이었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하기도 했다.

張國榮 (장국영) - 無心睡眠 (무심수면, 1989年 韓國)

가수를 은퇴하고 배우로 전념하다

가수와 배우 활동을 병행하던 장국영은 천안문 항쟁에 대해 중국 정부를 비난하고 삼합회의 영화계 진출을 반대하는 발언으로 인해 논란에 휩싸였다. 이미 연예계 생활에 염증을 앓던 그는 1990년 은퇴를 선언하고, 고별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밴쿠버로 건너가 캐나다 국적을 취득했다. 하지만 그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매니저 진숙분은 배우로서 복귀할 길을 마련해놓았고, 그 이듬해부터 장국영은 배우 활동에 전념한다. 그 전까지는 노래도 잘하는 스타 배우 정도로 인식되던 그는 <아비정전>, <종횡사해>, <패왕별희>, <백발마녀전>, <동사서독>, <야반가성> 등 홍콩영화 황금기의 대표작들에 이름을 올리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이 시기에 대해 풀어쓰자면 몇 주치 연재도 가능할 테니, 당시 활약상들의 이미지로 간단히 대신한다.

<종횡사해>(1991)
<패왕별희>(1993)
<백발마녀전>(1993)
<야반가성>(1995)

왕가위와의 협업
장국영과 왕가위

어느 영화에서든 장국영의 존재는 빛났지만, 그 빛이 더욱 밝았던 건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서였다. 비록 <아비정전>, <동사서독>, <해피 투게더> 세 작품밖에 출연하지 않았지만, 왕가위의 끈질긴 주제인 '사랑'의 감정을 이토록 선명하게 표현한 배우는 단연 장국영이었다. 그는 평소 사생활에서도 꽤 격정적인 사랑을 보여줬다.

공교롭게도 저 세 영화는 모두 양조위와 함께한 작품이었다. 왕가위는 한 인터뷰에서 장국영을 양(陽)에, 양조위를 음(陰)에 비한 바 있다. 모든 사람이 집중하게 되는 배우라는 점에서다. 장국영은 감정이 꽉꽉 들어찬 듯한 얼굴을 감추지 않고 아비, 구양봉, 보영 세 남자의 애끓는 마음을 드러냈다. 장국영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왕가위가 그를 통해 어떤 사랑을 그렸을지 문득문득 궁금해진다.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1994)
<해피 투게더>(1997)

'감독' 장국영

영화감독은 장국영의 오랜 꿈이었다. 중국 투자자의 지원으로 감독 데뷔를 열심히 준비했지만 계획은 무산됐다. 하지만 그가 감독으로서 이름을 올린 영화가 딱 한 작품 있다. 2000년 공개된 36분짜리 중편 <연비연멸>이다. 홍콩 정부의 의뢰를 받아 연출, 각본, 주연까지 1인 3역을 맡았던 '금연 캠페인' 영화다. 공식석상에서도 담배를 피울 만큼 소문난 애연가인 그가 <연비연멸>을 맡은 이유는 아무래도 연출에 대한 갈망 때문이 아니었을지.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헤비스모커인 두 부부가 아들이 소아암에 걸리면서 금연을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대놓고 캠페인 냄새가 풍기지만, 워낙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장국영인 만큼 영화는 노골적인 태도로 금연을 강요하는 법 없이 자연스럽게 주인공들에게 이입시키는 데에 집중한다. 꽤나 느슨하게 진행되는 와중 배우들의 에너지가 휘몰아치는 클라이막스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장국영과 돈독한 우정을 자랑했던 매염방이 함께 주연을 맡았다.


갑작스러운 죽음

2003년 4월 첫 날, 47세의 장국영은 자신이 머물던 호텔 24층 객실에서 몸을 던졌다. 아시아 전역이 큰 충격에 빠졌고, 홍콩에서는 6명의 팬이 그를 따라 투신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전염병 SARS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4월 5일 진행된 추도식에는 수많은 인파가 찾아와 그에게 안녕을 고했다. 장국영의 돌연한 죽음에 대해서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여전히 사인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전해지고 있다. 커밍아웃한 양성애자였던 그의 마지막 연인은 당학덕으로 회자되고, 2002년 개봉한 스릴러 <이도공간>이 유작으로 남았다.

당학덕과 장국영
<이도공간>(2002)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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