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한결 포근해진 날씨와 시선을 가득채우는 꽃잎에 새 계절을 곱씹다보니, 어느새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꼭 3년이 지났다. 그토록 거대한 참사는 끈질기게 비밀에 부쳐졌고, 내 아이가 죽은 이유를 알려달라고 울부짖던 가족들을 향한 폭력은 다양했고 지속적이었다. 그리고 지난 3월,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세월호 인양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진행됐다.

세월호 참사는 영화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무도 이것이 세월호에 대한 은유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대중들은 근래 많은 한국영화들 속에서 어른대는 세월호의 흔적을 보았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세월호라는 거대한 상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부산행, 터널, 판도라

작년 하반기 개봉한 <부산행>, <터널>, <판도라>. 불과 다섯 달 사이에 개봉된 이 세 영화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이 재난을 맞닥뜨린 상황을 그렸다. 좀비, 터널 붕괴, 방사능 등 재난의 종류는 각자 다르지만,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언론은 하나같이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공권력의 도움은 전혀 받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다. 특히 <부산행> 속 홀로 살아남은 뒤 괴로워하는 고등학생, <터널> 속 사고 현장에 와서 하는 것이라곤 피해자 가족과 사진이나 찍는 것이 전부인 정부 고위간부와 사람을 구조하기 위한 방책에 비용을 들먹이는 언론 등에서 대중들은 자연히 세월호를 둘러싼 징후들을 떠올렸다. 이러한 현실 묘사가 수많은 사람들을 극장가로 이끌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부산행
터널
판도라


세월호와 관련한 진실에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한 다큐멘터리들 역시 속속 만들어졌다. <다이빙벨>,<나쁜 나라>, <업사이드 다운> 세 작품이 극장에 개봉돼 여러 관객들을 만났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4월 13일부터 19일까지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전을 열고 있다.  



다이빙벨

감독 이상호, 안해룡

사고가 벌어진 지 불과 6개월이 지난 2014년 10월, <고발뉴스>를 이끄는 이상호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됐다. <다이빙벨>은 세월호 침몰 이후 다이빙벨 투입을 두고 해경과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정부는 물론 언론의 무능함까지 매섭게 비판한다. 그는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동시성에 있다"는 믿음으로 재빠르게 <다이빙벨>을 완성했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인 故송신도 할머니를 기록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연출한 안해룡 감독이 힘을 보탰다.

추가
<다이빙벨> 메인 예고편

참사 이후 처음 공개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인 만큼 열렬한 반응이 뒤따랐다. 영화의 논조에 대해 동의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특정한 인물의 주장에 맞춰 편파적으로 그리고 자극적으로 접근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꽤 많았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벌어진 정부 측의 압력과 그 흔적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나쁜 나라

감독 김진열

<나쁜 나라>는 참사 이후부터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의 긴 여정을 따라간다. 자연히 사고 피해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목소리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진도 팽목항의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왔고, 그 자리에서 보여준 그들의 무책임함은 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외치게 했다. <나쁜 나라>는 그 순간에서 시작해 가족들이 이어온 투쟁의 시간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영화는 빙산의 일각이고 실제로 겪은 대한민국은 더욱 악랄했다고 말했다.

추가
<나쁜 나라> 메인 예고편

피해자 가족들에 초점을 맞춘 작품인 만큼, 책임연출을 맡은 김진열, 공동연출의 정일건, 이수정 감독 모두가 진도, 국회, 광화문, 청와대 부근 청운동 일대를 찾아가 그들의 투쟁을 담았다. <나쁜 나라>는 2015년 10월 개봉을 준비하던 중, 생존 학생들 얼굴과 단원고 교실 풍경이 담긴 오프닝이 그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개봉을 연기하고 편집을 수정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대하는 관료의 무능과 무심함이 들어왔다. <나쁜 나라>가 개봉한 후, 익명의 관객들이 티켓을 기부하는 현상이 줄지어 나타나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업사이드 다운

감독 김동빈

<업사이드 다운> 역시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 카메라를 비췄다. <나쁜 나라>가 투쟁을 이어가는 피해 가족들을 지켜봤다면, <업사이드 다운>은 보다 직접적으로 네 명의 단원고 학생 아버지들과 각계 전문가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두 부류를 동시에 끌어안음으로써, 사고를 맞닥뜨린 가족의 심정과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김동빈 감독을 비롯한 여러 재능기부자들의 힘으로 만들어진 <업사이드 다운>은 "울지 않는 다큐멘터리가 돼야 한다", "정치적 지향이 어떻든 누구나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데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한 채 만들어진 작품이다.

추가
<업사이드 다운>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