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최고작은? <어벤져스>? 나쁘진 않은 선택이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슈퍼히어로 영화로 평가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색다른 ‘병맛’을 싫어할 이유는 없다. 마블 말고 DC로 눈을 돌려보자. DC는 좀 그렇다고? 시간을 조금만 과거로 돌려보면 된다. <다크나이트>? 그렇다. 이게 ‘정답’에 가장 가까운 영화가 아닐까. 영화에 대한 평가에 ‘정답’은 없지만 감히 <다크나이트>에 딴지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크나이트>의 명성에 도전을 해온 영화가 있다”고 주장하는 글을 우연히 봤다. 해외 온라인 매체 ‘스크린 랜트’에서 게재한 글이다. 제목은 ‘<다크나이트>보다 <로건>이 더 좋은 이유 15가지’.
‘스크린 랜트’의 필자(Andy Andersen)는 <다크나이트>의 챔피언 벨트를 <로건>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글은 주관적인 글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에 ‘정답’은 없으니까. <다크나이트>보다 <로건>을 더 재밌게 보고 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게 틀린 건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이 ‘어그로꾼’(에디터의 생각)의 15가지 주장이 궁금해졌다. ‘스크린 랜트’의 글을 아주 거칠게 번역해서 소개한다. 전문을 번역하지 않았으며 의역이 많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오역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위의 원문을 참고하길 바란다.
15. R 등급
▶스크린 랜트 의견/ <로건>이 R 등급을 받은 건 유명하다. 기존 ‘울버린’ 영화와는 전혀 다른 어두운 색채의 <로건>은 R 등급이기에 가능했다. <다크나이트>는 PG-13 등급이다.
▶에디터 의견/ R 등급은 확실히 슈퍼히어로 영화에 있어서 모험이었다. <로건>은 R 등급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흥행의 손실을 감수하고 영화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14. 격투 신
▶스크린 랜트 의견/ <다크나이트>의 격투 신은 단조로운 반면 <로건>의 격투 신은 그전까지 <엑스맨> 영화에서 보지 못한 다채로운 액션으로 구성됐다.
▶에디터 의견/ 훌륭한 액션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기본 덕목이다. <로건>의 액션은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인다. 또한 <다크나이트>의 액션, 격투 신이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 특히 최근 영화에 비해 단조로운 건 사실이지만 <다크나이트>가 슈퍼히어로 영화의 ‘고전’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액션 신이 아닌 다른 데 있다.
13. 세계관 만들기
▶스크린 랜트 의견/ <로건>의 세계관이 <다크나이트>보다 더 크다. <다크나이트>의 캐릭터는 가상 세계속 체스판의 기물처럼 움직인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창조한 세계는 꽉 짜여진 엄격한 곳이다. 반면 <로건>이 만든 세계는 관객들에게 열려 있다. 살짝 드러나는 설정들에서 큰 상황을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간단히 말하면 <로건>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Show, don't tell)는 법칙을 따르고 있다.
▶에디터 의견/ ‘스크린 랜트’의 필자는 <로건>의 장점을 언급하고 이런 점은 <다크나이트>에서 부족하다는 식으로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12. <로건>에는 <다크나이트>에서 보지 못한 미국의 이면이 반영됐다
▶스크린 랜트 의견/ <다크나이트>는 필연적으로 고담시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룰 수밖에 없다. <로건>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국경지대가 배경이 됐다. 히스패닉, 흑인, 빈민들이 등장했다. <로건>은 거의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가 다루지 않았던 미국의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에디터 의견/ 이 대목은 <로건>의 훌륭한 점이 맞는 것 같다. 지금까지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사회상을 <로건>만큼 반영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11. <로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살아 있다
▶스크린 랜트 의견/ <로건>의 조연 캐릭터들은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보다 살아있다고 느껴진다.
▶에디터 의견/ <로건>은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이기에 비중 있게 다뤄지는 조연들이 계속 출연한다. 장르의 차이에서 발생한 <로건>만의 장점일 뿐이다.
10. 유사 아버지/아들의 관계
▶스크린 랜트 의견/ <다크나이트>와 <로건> 모두 유사 아버지/아들 관계가 형성된다. <다크나이트>의 경우에는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과 알프레드(마이클 케인)가 그렇고 <로건>에서는 프로페서X/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와 울버린/로건이 그렇다. <로건>에서는 지난 15년 간 두 배우가 그 캐릭터로 살아온 만큼의 관계 묘사가 뛰어났다.
▶에디터 의견/ 굳이 이런 요소까지 비교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9. <로건>은 미래를 예견한다
▶스크린 랜트 의견/ <로건>의 시간적 배경은 2029년이다. <로건>의 디스토피아스러운 미래는 사실 꽤 그럴싸하다. 단순히 <로건>은 슈퍼히어로 영화뿐만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는 진지한 SF영화의 역할까지 해냈다.
▶에디터 의견/ <로건>이 미래를 예견하는 SF영화 요소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12번 항목, 미국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8. 로라/X-23
▶스크린 랜트 의견/ 다프네 킨이 연기한 로라 캐릭터는 이전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본 적 없는 캐릭터다. 그야말로 끝내주는 미니 악당이다.
▶에디터 의견/ 클레이 모레츠가 연기한 <킥 애스: 영웅의 탄생>의 ‘힛걸’이 생각난다.
7. 주인공의 상대역을 더 특별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스크린 랜트 의견/ <다크나이트>에 등장한 영웅의 반대 세력(Opposing Forces), 조커(히스 레저)는 악당의 전설에 가깝다. <로건>에서는 조커와 같은 악당을 찾을 수 없다. 대신 두 영웅이 존재한다. 로건과 로라다. 둘은 같은 적과 싸우지만 서로 다른 목적이 있다. 로건은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고 로라는 희망만이 유일한 목적이다. 결국 두 사람은 하나로 연결된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과 조커가 단순히 질서와 혼돈으로 상징되는 것과 달리 <로건>의 두 캐릭터가 더 인간적인 뭔가가 있다.
▶에디터 의견/ <다크나이트>의 선악 대결 구조가 색다르지는 않다. 문제는 이 흔한 구조를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있다.
6. 악당이 별로지만 더 현실적이다
▶스크린 랜트 의견/ <다크나이트>의 악당 조커에 비교할 만한 캐릭터는 <로건>에 없다. 다만 <로건>의 악당은 더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조커는 좀 과장된 면이 있는 반면 <로건>의 악당 도널드 피어스(보이드 홀브룩)는 독창적인 악당이다. 고전 서부극의 악당을 연상시킨다.
▶에디터 의견/ 흠...
5. <로건>은 시리즈와 함께 자란 관객을 위한 영화다
▶스크린 랜트 의견/ <로건>은 잘 알려졌다시피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영화였다. <로건>은 지난 시절 <엑스맨>, ‘울버린’ 영화들을 보고 자란 세대들을 위한 영화였다.
▶에디터 의견/ 시즌제의 TV 드라마처럼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프랜차이즈화됐다. 이 프랜차이즈의 팬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건 당연하다. <로건>은 특히 이 부분에서 훌륭했다. ‘울버린’과의 이별, 새로운 세대의 등장까지 <로건>은 거의 완벽했다. 마블과 달리 DC에는 팬들을 위한 연속성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4. 서부극 요소
▶스크린 랜트 의견/ <로건>의 본질은 서부극이다. <쉐인>, <용서받지 못한 자>, <더 브레이브>에서 영향을 받았다. <쉐인>은 직접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2000년 이후 <엑스맨> 시리즈에서 등장한 울버린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있다. <로건>에서 극대화됐다. <로건>의 서부극 요소로 인해 울버린의 이지미가 각인됐다.
▶에디터 의견/ <로건>에서 서부극이 본질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슈퍼히어로 영화와 서부극의 이종교배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3:10 투 유마>를 연출했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성취라고 봐도 좋겠다.
3. 휴 잭맨의 울버린/로건이 크리스천 베일의 브루스 웨인/배트맨보다 훨씬 흥미롭다
▶스크린 랜트 의견/ <다크나이트>는 악당보다 영웅이 덜 흥미롭다는 문제점이 있다. 크리스천 베일의 배트맨이 <다크나이트> 3부작에서 연기를 못한 건 아니지만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워낙 강했다. 반면, <로건>에서 울버린/로건보다 더 눈에 띄는 캐릭터는 없었다.
▶에디터 의견/ 브루스 웨인/배트맨의 이야기는 <배트맨 비긴즈>에서 했다. <다크나이트>는 조커의 영화다.
2. <로건>이 더 납득할 만한 엔딩이었다
▶스크린 랜트 의견/ <다크나이트>의 엔딩은 흥미롭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관객들에게 하나의 결론을 제시한다. <다크나이트>를 반복해서 보면 엔딩이 공허하다고 느낄 수 있다. <로건>의 엔딩은 감정적이다.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크나이트>의 결론이 정교하게 짜여진 논문과 같다면 <로건>의 엔딩은 순수한 시와 같다.
▶에디터 의견/ <로건>의 엔딩은 이 영화의 존재 이유다.
1. <로건>은 슈퍼히어로에 대한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스크린 랜트 의견/ <로건>은 R 등급, 서부극과의 만남, SF영화적인 요소 등 대중문화에서 슈퍼히어로 영화가 차지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시켰다. <다크나이트>가 슈퍼히어로 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영화라는 인식을 바꾼 건 분명하다. <로건>은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동시에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에디터 의견/ 슈퍼히어로 장르 내에서 <로건>은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뜬금없지만 ‘<다크나이트>보다 <로건>이 더 좋은 이유 15가지’라는 글을 소개했다. 에디터의 의견도 시시콜콜 붙여봤다. 개인적 의견을 더 보탠다. ‘스크린 랜트’의 글은 ‘슈퍼히어로 영화 <로건>이 훌륭한 이유 15가지’ 정도였다면 충분했다. 굳이 <다크나이트>를 끌어들인 건 에디터 같은 독자를 낚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크나이트>는 2008년 개봉했다. 그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시작점인 <아이언맨>도 개봉했다. 지금 마블이 주도하는 슈퍼히어로 장르는 2008년 이후 약 10년의 역사다.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2012년 개봉하기도 했지만 <다크나이트>는 지금 슈퍼히어로의 생태계와 다른 세계의 영화처럼 느껴진다. 2017년의 <로건>과 2008년의 <다크나이트>의 비교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두 영화 모두 훌륭한 영화다. 그래도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아직은 <다크나이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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