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자>에서 변희봉, 윤제문이 산골마을에 등장할 때 "올 게 왔구나" 한 이가 에디터뿐만은 아닐 것이다. 2000년 <플란다스 개>로 입봉해 올해 <옥자>까지 총 6개의 장편영화를 내놓은 봉준호 감독은, 특정한 배우를 여러 영화들에 거쳐 기용하며 나름의 편애를 드러내왔다. 봉준호의 모든 영화 크레딧을 샅샅이 뒤져 그가 특히 사랑하는 배우들을 정리했다. 1위는 바로..



변희봉
 
<플란다스의 개> 변 경비
<살인의 추억> 구희봉 반장
<괴물> 희봉
<옥자> 희봉
(+ 단편 <싱크&라이즈>)

괴물

"봉준호 영화" 하면 송강호만큼이나 먼저 떠오르는 배우, 바로 변희봉이다. 그는 봉준호의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부터 아파트 단지 내 강아지를 훔쳐 지하실에서 보신탕 끓여먹기를 일삼는 경비원 역으로 등장했다. 이후 꿀바른 논두렁에서 미끄러지며 등장하는 <살인의 추억>에서는 조작수사를 부추기다가 좌천당하는 수사반장(봉준호 감독은 어릴 적 즐겨보던 드라마 <수사반장> 때부터 그를 흠모해왔다고 한다), <괴물>에서는 착하지만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세 남매의 아버지 역을 맡았다. <괴물> 중 괴물과 추격전을 벌이던 중 총알이 떨어졌다는 걸 깨닫고 자식들에게 어여 가라고 손짓하던 장면은 많은 이들이 가장 서글프게 기억하는 변희봉의 모습일 것이다. 한동안 그를 봉준호 영화에서 만날 수 없었지만, 근 10년 만에 <옥자>에서 미자 할아버지 역으로 출연하며 다시 한번 '봉준호-변희봉' 조합의 짜릿함을 선사했다. 그가 출연한 작품 모두 캐릭터 이름이 '희봉'이라는 점은 그 남다른 애정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옥자

김뢰하

<플란다스의 개> 부랑자 최모씨
<살인의 추억> 조용구
<괴물> 노랑1
(+ 단편 <백색인>/<지리멸렬>)

살인의 추억

김뢰하는 봉준호 감독과 가장 오랜 연을 자랑하는 배우다. 통상 <플란다스의 개>를 비롯한 초기작에 출연했다고 알려졌지만, 그 연은 봉준호가 단편 <백색인>, <지리멸렬>을 발표하며 독립영화계 스타로 발돋움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두 영화에서 각각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회사원, 기득권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검사를 연기했다. (결국 조롱을 위한 설정이긴 하지만) 꽤나 멀끔한 행색으로 등장했던 김뢰하는 <플란다스의 개>에선 위협적이면서도 어딘가 얼빵한 부랑자, <살인의 추억>에선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형사로 분했고, 이후 다른 감독들의 작품에서 주로 악역을 맡았다. 안타깝게도 <괴물>에서 노랑 구호복을 입은 방역대원 역으로 짧게 등장한 이후 더 이상 봉준호 영화에서 그의 연기를 만날 수 없는 상태다.

플란다스의 개
괴물

윤제문

<괴물> 노숙자
<마더> 제문
<옥자> 박문도
(+ 단편 <싱크&라이즈>/<인플루엔자>)

괴물

<옥자>에서 미란도 코퍼레이션에 다니는 미자 삼촌으로 등장해 웃음을 선사한 윤제문 역시 봉준호의 필모그래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배우다. <괴물>을 연출하기에 앞서 몸풀기로 작업했던 단편 <싱크&라이즈>에 참여해 변희봉, (<살인의 추억> 에필로그의 소녀를 연기했던) 정인선과 함께 한강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가족을 보여줬고,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출한 단편 <인플루엔자>에서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다가 은행 강도가 되는 남자를 연기했다. 장편에서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은 게 사실. <괴물>에서는 남일(박해일)이 화염병 던지는 걸 돕는 노숙자로, <마더>에서는 도준(원빈)을 취조하는 동네 형사(극중 이름도 '제문'이다)로 짤막하게 등장했다. 봉준호 감독이 각본에 참여한 <남극일기>(2005)와 제작을 맡은 <해무>(2014)까지 출연한 것만 봐도 윤제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눈치챌 수 있다.

마더
옥자

송강호

<살인의 추억> 박두만
<괴물> 박강두
<설국열차> 남궁민수

살인의 추억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송강호는 봉준호의 6개 장편 가운데 딱 절반만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봉준호의 남자'라 해도 무리없다. 모든 작품마다 범접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주는 송강호지만, 그의 얼굴을 이만큼 다양하게 끌어냈던 사람은 봉준호밖에 없었다. 오로지 직감으로써 80년대의 축축한 범죄현장을 파헤치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온갖 삑사리로 구르고 넘어져도 딸을 구출하겠다는 의지를 놓지 않는 <괴물>의 박강두, 언어의 장벽도 개의치 않은 채 계급의 끝과 끝을 고스란히 돌파하는 <설국열차>의 남궁민수는 송강호의 다채로운 얼굴이 없었다면 좀체 상상하기 힘든 캐릭터다. <살인의 추억> 마지막의 그 응시만으로 송강호와 봉준호의 연결고리는 절대적이다.

괴물
설국열차

권병길

<살인의 추억> 노의사
<괴물> 격리공간 의사1
<마더> 골프장 학장

예상치 못한 이름에 잉? 하게 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임상수 감독 작품들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에서 '얄미운 노인'을 도맡아온 권병길 역시 봉준호의 단골배우다. 얼굴은 몰라도 왠지 야비하게 들리는 특유의 목소리를 들으면 무릎을 칠 것. 어물쩡 넘어가도 신경쓰지 않을 만한 작은 역만 맡았지만 <살인의 추억>부터 <마더>까지 세 작품 연속 이름을 올렸다. <살인의 추억>에선 의사 역으로 "설명 또 해줄까? 안 그러면 쟤 죽는다. 파상풍... 아주 살벌한 거여, 이~ 녹슨 못에 찔렸으면 바로 병원을 찾을 것이지, 천하의 미련쌍곰탱이같은 새끼들.."이라는 명대사를 남겼고, <괴물>에선 강두(송강호)가 갇힌 격리소 의사로 등장해 다시 한번 의사 선생님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마더>에선 골프채를 빼돌리기 위해 진태(진구)와 도준(원빈)이 난리통을 벌이는 골프장-경찰서 시퀀스에서 "이런 데 계시면 안 되는 분"으로 나와 "내 차 빽미러를 뽀개버렸어요~ 주차장에서" 한 마디만 남겼다.


딱 2편 출연한 배우들
    
배두나, 박해일, 고아성, 틸다 스윈튼
전미선, 박노식, 이재응, 김진구

배두나_ 플란다스의 개 / 괴물
박해일_ 살인의 추억 / 괴물
고아성_ 괴물 / 설국열차
틸다 스윈튼_ 설국열차 / 옥자

에디터 개인적으로 배두나 하면 노랑 후드 끈을 바짝 매고 아파트를 뛰어다니는 <플란다스의 개> 현남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옥자를 찾겠다며 대뜸 자주색 추리닝을 입는 미자를 보며 한강의 괴물을 향해 망설임 없이 불화살을 쏘아내던 <괴물>의 남주가 입었던 추리닝이 다시 떠오르긴 했지만. <살인의 추억> 속 공장에서 몸을 쪼그린 채 책을 읽는 박현규(박해일)의 자태는, 연쇄살인의 유력한 용의자인 듯 아닌 듯 관객의 신경을 긁는 미스터리의 입구치곤 너무나 해사했고 그래서 더욱 매혹적이었다. 술과 욕설을 끼고 사는 실패한 운동권인 <괴물>의 남일은 현규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경중을 따질 틈도 없는 박해일의 완벽한 두 얼굴이었다. 고아성은 <옥자>의 안서현 이전에 봉준호 월드의 유일한 소녀였다. <괴물>의 현서와 <설국열차>의 요나는 시공간적 배경의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송강호가 맡은 캐릭터의 딸이라는 것, 두 소녀에게서 결국 '엄마'의 그림자가 어른댄다는 점에서 묘한 기시감을 남겼다. 천하의 틸다 스윈튼은 봉준호의 할리우드 프로젝트 <설국열차>, <옥자>에 모두 참여하면서 봉준호의 단골배우가 됐다. 여전히 얼떨떨한 사실이다.

전미선_ 살인의 추억 / 마더
박노식_ 살인의 추억 / 괴물
고수희_ 플란다스의 개 / 괴물

전미선은 <살인의 추억>의 설영과 <마더>의 미선 역으로 나와 두 주인공 두만(송강호)과  '마더'(김혜자)에게 사건의 자그마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영화 속에서 두만은 설영이 놓는 주사를 맞는 한편, 미선은 마더가 놓는  침을 맞는다. "향숙이 이쁘지~"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던, <살인의 추억> 백광호 역의 박노식은 바로 다음 작품  <괴물>에서 흥신소 직원으로 분해 전작과 사뭇 다른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수희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현남과 함께 세월아네월아 시간을 죽이던 장미로 등장해 사이드미러를 가볍게 박살내는 이단옆차기를 선보였고,  <괴물>에선 격리소에 갇힌 강두에게 깐족대다가 인질로 잡혀 탈출의 빌미를 제공하는 간호사로 나왔다.

이재응_ 살인의 추억 / 괴물
김진구_ 플란다스의 개 / 마더

오프닝에서 두만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던 <살인의 추억>의 소년, 동생과 함께 한강을 배회하다가 괴물에게 변을 당하는 <괴물>의 소년은 모두 이재응이 연기했다. 목소리가 참 고운 배우였는데 신작 소식이 뜸하다. 작년 세상을 떠난 故 김진구 배우는, 굴러오던 과일을 줍다가 반려견을 잃어버리고 현남에게 "말리논 무말랭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플란다스의 개>의 할머니 역에 이어, <마더>에서 처연한 삶을 살다가 어처구니 없는 돌팔매질에 목숨을 잃는 아정(문희라)의 할머니로 등장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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