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이준익 감독의 이력이 특별나다는 사실을. 본격적으로 찾아본 이준익 감독의 삶은 드라마틱했다. 언젠가 그의 삶을 자신 스스로 영화로 만든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이준익 감독이 절대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지난해 <동주>, 올해 <박열>까지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의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봤다. <왕의 남자>로 ‘천만 감독’이 되기 이전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이준익 감독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 포스트는 영화주간지 <씨네21>에서 진행했던 이준익 감독의 여러 인터뷰를 참고했음을 밝힌다.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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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
출연 강하늘, 박정민, 김인우
개봉 2015 대한민국

- 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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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
출연 이제훈, 최희서, 김인우
개봉 2017 한국
분유값을 벌어라
이준익 감독은 공부를 못했다. 그림은 잘 그렸다. 인문계 고등학생으로서 어떻게든 대학을 가려고 했다. 입시상담 결과 미대는 가능하겠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 길로 이준익 감독은 서울대, 홍익대에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입학할 수 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뻔했다.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다”였다. 가난했던 이준익 감독은 홍대에서 소개받은 화실에서 청소를 하며 입시 준비를 하고 세종대 회화과 동양화 전공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덜컥 아이가 생겼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아버지가 된 것이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분유값이 필요했다. 학교는 그만뒀다. 정부종합청사 경비 일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학원사의 <주부생활>이라는 잡지의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학원사의 다른 잡지 <여성자신>의 편집장이던 이세룡 감독이 서울극장 기획실장으로 옮기면서 이준익 감독도 서울극장으로 이직했다. 월급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이준익 감독은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외판사원도 좀 하고. 너무 여러 가지를 해서. 정리하기 싫어. 귀찮아. 너무 길어. 얘기하기가. 성공한 자의 고생담은 그 개인을 미화할 뿐이다. 그게 싫어서 얘기하기 싫어.”
-이준익 감독
도안사로 영화와 만나다
서울극장에서 이준익 감독은 선전부장 겸 도안사(圖案士)로 일했다. 요즘말로 하면 마케팅팀장 겸 디자인팀장이다. 도안사라는 말이 생소한데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보면 된다. 영화 홍보를 위해 제작하는 포스터, 전단지, 신문광고 등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컴퓨터로 하는 작업을 당연하게도 당시에는 직접 손으로 했다. 영화 스틸 속의 등장인물들을 칼로 오려서 자르고 붙이고 하는 일이 도안사의 주된 업무였다. 위에 있는 임권택 감독의 <티켓> 포스터도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 당시 이준익 감독의 손을 거쳐간 영화는 대략 1천여 편 정도다.
“처음에 <변강쇠>. 롤랑 조페의 <미션>. 임권택 감독 <티켓>. <마지막 황제> <로보캅> <백 투 더 퓨쳐> <양들의 침묵>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너무 많아. 한 1천편 되는데 어떻게 다 얘기하냐.”
-이준익 감독

-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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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임권택
출연 김지미, 안소영, 명희, 이혜영, 전세영, 박근형
개봉 1986 대한민국
잘나가는 영화 광고 전문가
이준익 감독은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젊었다. 20대의 젊은 감각으로 쓴 카피와 디자인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서울극장이 아닌 다른 극장에서도 일을 의뢰받을 정도였다. 그렇게 일을 하느니 영화 광고회사를 차리는 게 낫겠다 싶어 1987년 광고대행사 씨네시티를 열었다. 훗날 <친구> <말아톤> 등을 제작한 석명홍 대표가 파트너였다. 씨네시티는 승승장구했다. 시장의 80%를 점유할 정도였다.
“어느 해던가 추석 때는 개봉작 7편 중 6편을
내가 디자인했다.”
-이준익 감독
영화 제작의 꿈을 꾸다
서울극장 선전부장 시절부터 씨네시티 대표 시절까지 이준익 감독은 모두 1500여 편의 영화 광고를 제작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산업 전반에 대해 알게 됐다. 자연스레 영화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준익 감독은 씨네시티를 그만두고 씨네월드를 창립했다. 1992년이었다. 씨네월드는 영화 제작·홍보·수입·배급사였다. 씨네월드의 첫 작품은 <키드 캅>이라는 가족·코미디영화였다. 이준익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애들 나오는 영화라 아무도 감독을 하려고 안 해서 결국 직접 연출을 했다”고 한다. 영화 연출에 대해 잘 몰랐던 이준익 감독은 데뷔작으로 쓴맛을 보게 된다. <키드 캅>은 한마디로 ‘폭망’했다. 이후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 유영식 감독의 <아나키스트> 등을 제작했다. <아나키스트>는 씨네월드의 야심작이었다. 장동건, 정준호, 김상중, 이범수 등이 출연했다. 연출은 박찬욱 감독이 하려고 했다. 제작 일정이 늦어지면서 당시 ‘못 나가던’ 박찬욱 감독은 <아나키스트> 대신 <공동경비구역 JSA>를 선택했다. <공포택시>, <달마야 놀자> 등도 씨네월드에서 초창기에 제작한 영화들이다. <달마야 놀자>가 초창기 씨네월드의 성공작이다.
“난 시네필의 경험도 없었고, 감독에 대한 꿈도 없었고, 영화판에 오려고 해서 온 것도 아니고 봉급 더 준다니까 와서 광고디자인 하면서 밥벌이 했던 거고…. 영화는 대중과의 채널 속에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100년을 지내왔는데 그런 영화에 대한 경외심이 아예 없었던 거야. 그래서 반성하기 시작했어. 할리우드 따라한다고 재주 피워봤자 내 인생의 결핍을 메울 수는 없겠구나, 하고. 그때 조철현 대표랑 기획을 시작한 작품이 <아나키스트>였어. 박찬욱 감독이 잘 못 나갈 때 셋이서 시나리오 회의하다가 상하이까지 가서 시나리오 쓴 게 1995년이니...”
-이준익 감독

- 키드 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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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
출연 이재석, 김민정
개봉 1993 대한민국

- 아나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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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유영식
출연 장동건, 정준호, 김상중
개봉 2000 대한민국

- 공포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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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허승준
출연 이서진, 임호, 최유정, 정재영, 정해균
개봉 2000 대한민국
40억 빚쟁이?
위에 언급한 영화 가운데 주목할 영화는 <공포택시>다. 한국의 로저 코먼을 꿈꾸며 B급 호러 영화를 지향한 이 영화는 관객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 영화 제작에 들어간 12억 원은 고스란히 빚이 됐다. 씨네월드에서 수입해온 영화도 빚을 키웠다. <성스러운 피> <벨벳 골드마인> <어둠 속의 댄서> <메멘토> <헤드윅> <이도공간> <나인야드> <제너럴> <뤽 베송의 택시> <시몬> <K-19: 위도우메이커> <블레이드 2> 등을 수입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를 비롯해 눈에 띄는 작품들이 꽤 있지만,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많지 않아 보인다. 여기 언급하지 못한 영화들도 다수 수입했을 텐데 아마도 망한 영화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외국영화 수입하다가 빚을 수십 억 원 졌었다. <왕의 남자> 찍는데 촬영현장에서 “레디!” 하면 전화가 온다. 돈 언제 갚느냐는 독촉 전화다. 그럼 (비굴하게 전화받는 시늉하며) 아, 제가 지금 새 영화를 찍는 중인데 이 영화 다 찍고 돈 벌어서 그때 꼭 갚겠습니다, 만날 그러면서 영화를 완성했다.”
-이준익 감독

- 메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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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가이 피어스, 캐리 앤 모스, 조 판토리아노
개봉 2000 미국

- 헤드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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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존 카메론 미첼
출연 존 카메론 미첼
개봉 2000 미국

- 어둠 속의 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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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비요크, 까뜨린느 드뇌브, 데이빗 모스, 피터 스토메어, 조엘 그레이, 카라 세이무어, 블라디카 코스틱, 쟝 마르 바, 빈센트 패터슨, 시옵한 폴론, 젤리코 이바넥, 우도 키에르
개봉 2000 덴마크,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미국, 영국,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천만 감독이 되다
2003년 개봉한 <황산벌>은 이준익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었다. 색다른 사극 코미디영화였던 <황산벌>은 그럭저럭 성공한 영화였다. <황산벌>을 이은 작품이 <왕의 남자>다. 이 영화로 이준익 감독은 이른바 ‘천만 감독’의 대열에 올랐다. 이준익 감독은 “제작자 혹은 외화 수입업자였다가 <왕의 남자>에 이르러 감독으로서의 의지를 어느 정도 존중받는 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왕의 남자>를 통해 수십 억 원의 빚도 청산할 수 있었다.
Q. <왕의 남자> 성공으로 빚은 다 갚았나.
A. 40억 원 빚 완전히 다 갚았다. 그런데 세금 낼 돈이 떨어져서 다시 빚져야 될 판이다. 이번 영화 잘 되면 세금 내는 거고. 난 아직도 ‘빚테크’ 하고 있다. 평생에 재테크 해본 적이 없다.
-이준익 감독

- 왕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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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
출연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이준기
개봉 2005 대한민국

- 황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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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
출연 박중훈, 정진영, 이문식
개봉 2003 대한민국
“내 영화가 늘 그렇지만 이 영화도 비주류, 마이너리티, 아웃사이더들이 세상에서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방식에 관한 거고.”
-이준익 감독
이준익 감독은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후 영화 광고로 성공하고, 영화 수입으로 망하고, 감독으로 우뚝 섰다. 어려웠던 그 시절 기억 때문일까. 그는 늘 비주류, 마이너리티, 아웃사이더의 이야기를 그린다. 조선시대 광대, 동성애 소재의 <왕의 남자>도 그렇고 중년 남성들이 록 밴드를 결성하는 <즐거운 인생>도 그렇다. 한물간 가수와 매니저의 이야기인 <라디오 스타>는 특히 더 그랬다. 최근 그가 연출한 <동주>와 <박열>에도 이런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 라디오 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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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
출연 박중훈, 안성기
개봉 2006 대한민국

- 즐거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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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
출연 정진영, 김윤석, 김상호, 장근석
개봉 2007 대한민국
2006년 <씨네21>은 이준익 감독 특집을 내보냈다. 거기서 발췌한 이준익 감독에 대한 글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중인격자. 위선자. 한입 가지고 두말 하는 사람. 경솔한 사람. 허위의식을 싫어하는 사람. 이준익 감독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말들이다. 그런데 앞에 그런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유쾌하고 솔직한. 그리고 끝에는 변두리 리그의 대변자라고 붙여야 한다.
-<씨네21>
2011년 이준익 감독의 상업영화 은퇴 선언 해프닝이 있었다. 그는 “평양성, 250만에 못 미치는 결과인 170만. 저의 상업영화 은퇴를 축하해주십시오~. ^^;;”라고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언론은 이준익 감독이 은퇴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1년 뒤, 어떻게 됐을까.

- 평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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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준익
출연 정진영, 이문식, 류승룡, 윤제문, 선우선
개봉 2010 대한민국
Q. 트위터로 은퇴 선언한 지 1년이 다 된다. 돌아보면 어떤가.
A. ‘메멘토’라니까. 어제 일도 까먹는데 1년 전을 어떻게 기억하나. (웃음) 트위터의 말도 웃으면서 썼다. ‘은퇴를 축하해주세요’라는 말 뒤에 방긋방긋(^^)도 넣었던 거다. 웃자고 한 건데 진지하게 받아들인 거지. 우리 사회가 경직된 탓이다.
역시 그는 한입 가지고 두말 하는 경솔한 사람일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유쾌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그의 영화처럼.
이준익 감독의 유쾌하고 솔직한 면모를 제대로 느껴보려면 아래 링크에 있는 그의 인터뷰를 찾아보는 걸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인터뷰를 보면 충무로의 밑바닥에서 최정상까지 경험한 그를 직접 만나고 싶어질 거다. 밤이 새도록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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