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독님, 그 이름을 어디다 갖다 놔도 참 잘 어울립니다. <택시> 앞에 두면 스피디한 느낌이 있고, <레옹> 앞에 두면 묵직한 감도 있는데, <제5원소> 앞에 두면 파란만장한 상상력이 보입니다. 그 '천의 생각'을 가진 뤽 베송 감독이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이하 <발레리안>)로 돌아왔습니다.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감독 뤽 베송

출연 카라 델레바인, 데인 드한

개봉 2017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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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개봉한 <발레리안>은 1967년 처음 발간된 프랑스 그래픽노블 [발레리안과 로렐린]을 원작으로 합니다. 어릴 적부터 이 만화를 즐겨봤던 뤽 베송 감독은 40년 만에 영화로 완성시켰는데요, 영화를 만나기 앞서 뤽 베송 감독의 필모그래피 특징과 인터뷰를 만나볼까요?

필모만 100여 편, 다재다능 영화인
The Films of Luc Besson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뤽 베송'이란 이름을 한 번도 못 들어보진 않았을 겁니다. 뤽 베송 감독이 작업한 영화는 네이버 DB 기준 89건이고, IMDB 기준으로 하면 100편이 넘으니까요. 

그렇다고 엄청난 '다작 감독'인가? 그건 아닙니다. 1987년 <마지막 전투>로 데뷔한 이후 연출작은 18편뿐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영화의 스태프로 이름을 올린 겁니다. 각본, 기획, 제작, 촬영, 편집, 심지어는 단역 출연까지
(<레옹>뿐이지만요).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영화인 중 1순위라 봐도 무방하죠. 

뤽 베송 감독의 손이 닿은 영화는 흥행 성공으로 시리즈화되기도 했죠. 각본을 전담했던 <택시>는 4편까지 제작되고 할리우드 리메이크도 나왔습니다. 1편에서 각본과 제작을 담당했던 <트랜스포터>와 <테이큰> 모두 3편까지 제작되는 인기를 누렸고요. 지금까지 영화인으로 활약할 수 있는 이유가 이런 꾸준한 흥행작 덕분이기도 하죠.


은퇴한 적이 있었다고?

이렇게 많은 작품을 만들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이지만, 뤽 베송 감독은 한때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2006년 10번째 연출작 <아더와 미니모이>를 공개한 이후 "10은 좋은 숫자다.(…) 스스로에게 내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열 편을 만들면 좋겠다고 다짐해왔다. 만일 당신이 열 편을 만들었고 그게 자신의 마음에 든다면 썩 괜찮은 일 아닌가?"라고 말했었죠.

아더와 미니모이: 제1탄 비밀 원정대의 출정

감독 뤽 베송

출연 프레디 하이모어, 미아 패로

개봉 2006 미국,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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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은퇴는 연출 한정이긴 했죠. 은퇴 당시에도 제작자로서 글과 영화 제작은 꾸준히 한다고 밝히고, 은근슬쩍 "난 바보가 아니라서 누군가 좋은 시나리오를 들고 오면 돌아올 수도 있다"고 떡밥(ㅋㅋㅋ)도 미리 깔아놨었죠.

그렇게 <아더와 미니모이>는 뤽 베송 감독의 은퇴작이 되었다고 한다…
…는 훼이크고 속편이나 받아랏!

역시 뤽 베송 감독은 끊임없는 상상력의 소유자여서일까요? 남이 쓴 시나리오가 아닌, 자신이 직접 집필했던 <아더와 미니모이> 속편으로 연출에 복귀했습니다. 그는 2007년 <아더와 미니모이>가 삼부작이 될 거라며 발표했고 실제로 그 계획을 이뤘습니다. 그 이후로 <블랑섹의 기묘한 모험>, <더 레이디>, <위험한 패밀리>, <루시>, 그리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발레리안>까지 오게 됐으니 영화가 천직인 감독인가 봅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더 레이디>, <위험한 패밀리>, <발레리안>, <루시>

늘 새로운 걸 꿈꾸는 탐험가, 혹은 발굴자

뤽 베송 감독은 아웅 산 수치가 주인공인 <더 레이디>를 만들곤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 묘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랑블루>는 바다라는 공간, <제5원소>는 하늘, <잔다르크>는 14세기 중세가 배경이다. 이번 영화는 아시아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새로운 세계다”라고요. 누아르부터 SF까지, 파격적인 그의 필모그래피를 단번에 대변하는 발언입니다.

<야마카시> / <트랜스포터>

실제로 뤽 베송 감독은 새로운 문화를 영화에 접목시키는 데 앞장섭니다. 2000년 초엔 급속도로 유행한 파쿠르(맨몸으로 도심과 자연의 다양한 장애물을 극복하는 운동)를 영화해 접목해 <야마카시>를 집필했었고, 제작과 각본을 겸한 <트랜스포터>는 제이슨 스타뎀이란 새로운 액션 스타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장르: 리암 니슨'을 만든(ㅋㅋㅋ) <테이큰> 삼부작

물론 그 새로움의 으뜸이라면 <테이큰>이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제작과 각본을 겸한 <테이큰>은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라인에 음습한 유럽 암흑가를 담아 다채로움을 더했고, '제이슨 본' 시리즈와 함께 실전 무술 영화의 기원으로 자리매김했으니까요. 거기다 "너희 찾아내서 죽여버릴 것이다"라는 무한 패러디 양산 명대사를 남기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강한 영웅은 여성이다.

<발레리안> 기자간담회 당시 뤽 베송 감독이 한 말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손에서 자랐고 여성의 위대함을 많이 느꼈다.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우월함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로렐린 및 <발레리안>의 여성 캐릭터를 설명했죠.

실제로 뤽 베송 감독은 꾸준히 '강인한 여성상'을 영화에 투영해왔습니다. 주인공 니키타가 비밀요원으로 세뇌당하는 내용의 <니키타>는 '세뇌 당한 킬러' 혹은 '비밀훈련을 받은 특수요원'이란 새로운 설정을 전세계에 깊게 남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연출한 작품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레옹>의 마틸다, <제5원소>의 리루, <잔 다르크>의 잔 다르크, <블랑섹의 기이한 모험>의 블랑섹, <루시>의 루시까지 '강인한'이란 단어에 국한할 수 없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능숙하게 표현했죠. <잔 다르크> 이후 오랜만에 실화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가 아웅 산 수치가 주인공인 <더 레이디>란 점도 상기할 만하죠.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레옹>, <제5원소>, <루시>, <잔 다르크>

뤽 베송이 말하는 발레리안은?

씨네플레이는 <발레리안>이 국내에 첫 공개됐던 8월 22일, 뤽 베송 감독을 만났습니다. 뤽 베송 감독은 에디터를 만나기 전에도 앞서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오랜 시간 진행했는데도, 먼저 박수를 청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해줬습니다. 여러 번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인지 여유로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씨네플레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작품을 마침내 영화화했는데, 지금 심정은?

뤽 베송 감독: 지금 배를 타고 항해하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 같다. (웃음)

[발레리안과 로렐린]의 코믹스·TV 애니메이션 작화 / 영화 속 발레리안(데인 드한)과 로렐린(카라 델레바인)

씨네플레이: 이번 <발레리안>도 그렇고 <아델 블랑섹의 기묘한 모험>도 프랑스 그래픽노블이었다. 프랑스 그래픽노블 만의 장점이 있다면?

뤽 베송 감독: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다만 영화를 만드는 게 20단계라면, 아무 것도 없을 때는 0에서 시작한다면 이런 작품들을 영화화하는 건 1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약간 도움이 되는 정도다.

씨네플레이: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

뤽 베송 감독: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에 가장 신경썼다. 이 영화는 '뮐 부족'에 관한 이야기다. 두려움이나 잔혹함을 전혀 모르던 이 부족은 초반부에 무참하게 공격당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는지, 세상을 파괴하는 것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진주를 수집하는 생활양식을 가진 뮐 부족.

또 발레리안과 로렐린 둘 다 슈퍼 파워를 가진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경찰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발레리안은 로렐린을 좋아하지만 로렐린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 가장 집중했다.

씨네플레이: 사실 한국은 SF장르가 비주류로 인식되는 경향이 아직도 있다. <발레리안>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면?

뤽 베송 감독: 영화는 그림과 같다.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사람들이 볼지, 누가 좋아할지를 생각하고 그리지 않는다. 영화도 한 국가나, 특정 사람들을 겨냥해서 만드는 게 아니다. 다만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할리우드 SF는 영웅이 나라를 구하거나 모든 사람을 구하는 식이다. 항상 외계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방식인데, 어떻게 보면 그게 지금 트럼프가 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영화는 그런 싸움이나 파괴의 방식에 집중하는 게 아니다. <발레리안>에서 모든 외계 생명체는 멋지다. 아름답고 재밌고,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을 얘기한다는 게 다른 영화와 다르다.

씨네플레이: 데인 드한과 카라 델레바인, 두 젊은 배우들과 함께 한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뤽 베송 감독: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정말 완벽했다. 두 사람은 다정다감한 사람들이어서 작업하는 게 행복했다. 그래서 늘 촬영장을 갈 때면 휴가를 가는 기분이었다.(웃음)

씨네플레이: 한국에선 아직도 <레옹>과 <그랑블루>를 기억하는 관객이 많다. 이런 톤의 영화를 구상하는 게 있는지?

뤽 베송 감독: 사실 두 작품이 '클래식'하다는 건 두 영화가 나온지 20년이 됐기 때문이다(웃음). <레옹>을 예로 들면 당시에 평론가들의 평은 별로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아진 경우다. 만일 내가 이 영화들에 대해 언급을 하면 새로운 발견을 할 수가 없다. 속편을 원한다고 관객들이 말할 때마다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을 내놨다. 지금 12살인 관객이 있다면 그 친구는 <레옹> 같은 예전 영화를 본 적이 없을 거고, 이 영화 <발레리안>을 봤을 것이다. 그럼 그 관객은 <발레리안 2>를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겠나?


뤽 베송 감독의 마지막 대답에서 어떻게 그가 과거 작품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드림 프로젝트'를 마친 뤽 베송 감독, 과연 앞으로는 또 어떤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줄까요? 지금 마음으로는 그의 농담처럼 더 응축된 <발레리안 2>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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