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잡는다>

최근 개봉한 <반드시 잡는다>는 백윤식과 성동일의 영화다. 연기 달인들의 존재감이 커 보인다. 두 배우는 30년 장기 미제 사건을 쫓는 동네 터줏대감 심덕수(백윤식)와 전직 형사 박평달(성동일) 역을 맡았다. 두 배우 가운데 좀 더 무게감이 있는 배우는 아무래도 성동일보다 백윤식 쪽이다. KBS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오랜 기간 배우로 활동한 백윤식의 영화 속 캐릭터 베스트 5를 꼽아봤다.

반드시 잡는다

감독 김홍선

출연 백윤식, 성동일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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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이강희
명대사가 유독 많은 <내부자들>에서 가장 현실적이었던 대사는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집니다”다. 실제로 이런 발언을 현실에서 한 고위 관리가 있기도 했다. 정경유착의 연결고리였던 수구언론의 유명 논설주간 이강희가 내뱉는 이 ‘X소리’는 백윤식의 연기 덕분에 그 파급력이 더 크지 않았을까. 관객들은 온갖 비리의 끝을 보여준 기득권을 대변하는 백윤식의 발언을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을 것이다. <내부자들>의 ‘큰 그림’을 짜는 이강희는 백윤식의 카리스마에 기댄 캐릭터라고 봐도 좋겠다.

내부자들

감독 우민호

출연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개봉 201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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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맛> 윤 회장
이 회장님, 어딘가 짠한다. 백씨 재벌 가문에 일종의 데릴사위로 들어간 윤 회장은 이제는 돈에 미련이 없는 듯 보인다. 자신은 이 집안의 종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영화의 초반에는 그저 노회한 속물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재벌 가문과 돈에 환멸을 느끼는 백윤식의 연기를 볼 수 있다. 윤 회장이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백윤식은 잘 보여줬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크기의 금고(?) 혹은 돈 창고에서 돈을 꺼내는 영화의 초반 장면이 인상적이다. 윤 회장은 눈이 휘둥그래진 비서 영직(김강우)에게 아무렇지 않게 “몇 다발 챙기라”고 말한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돈의 맛

감독 임상수

출연 김강우, 백윤식, 윤여정, 김효진

개봉 2012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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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평경장
백윤식의 인생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평경장이다. 명대사만 따지면 위에서 언급했던 <내부자들>은 <타짜>의 세 발 피라고 해도 좋겠다. 특히 기억나는 대사는 “화투가 나고 내가 화투인 몰아일체… 혼이 담긴 구라!” 정도? 아니다. “아수라 발발타, 아수라 발발타”가 있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전설의 타짜 아귀(김윤석)와 목숨을 건 승부를 벌이는 고니(조승우)가 “아수라 발발타”를 나직하게 말하며 화투패를 섞을 때 아귀는 “아아~ 평경장? 잘 계시고?”라고 대꾸하기도 한다. 2편인 <타짜 - 신의 손>에서는 평경장을 보지 못했지만 <타짜 3>에서 회상 장면 등을 통해 평강장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건 지나친 바람일까.

타짜

감독 최동훈

출연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유해진

개봉 2006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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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들> 김 부장
임상수 감독의 도발적인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백윤식은 김 부장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김 부장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2005년 개봉 당시 정치권에서 대단한 논란을 일으켰고, 상영금지 가처분 등 여러 이슈가 있었다. 이런 영화에서 김 부장 캐릭터를 연기하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거사(?)를 앞둔 급박한 순간임에도 차분함을 보여주는 백윤식의 연기는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이와 반대의 캐릭터도 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김 부장의 직속 부하 주 과장(한석규)이다. 두 캐릭터의 대비는 관객을 몰입시키는 극의 리듬을 만들었다. 거사를 치른 다음, 사태를 마무리짓기 위해 방문한 육군본부의 거대한 회의실에서 김 부장이 홀로 앉아 있던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때 그사람들

감독 임상수

출연 한석규, 백윤식

개봉 2004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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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강 사장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에서 백윤식이 강 사장을 연기했다. 납치된 강 사장은 기상천외한 온갖 고문을 당하는 인물이다. 특히 물파스와 때밀이 수건 고문은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강 사장이 고통받는 건 언뜻 보면 그냥 ‘돌+아이’인 것 같은 병구(신하균)가 그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계인이라니! 병구는 외계인으로 인해 지구가 곧 위험에 처할 거라고 믿는다. 개기월식까지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지 못하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강 사장을 납치한 것이다. 이 황당한 설정의 연기를 위해 백윤식은 삭발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은 백윤식 없이 완전할 수 없다.

지구를 지켜라!

감독 장준환

출연 신하균, 백윤식

개봉 200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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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식의 영화 속 캐릭터 베스트 5를 살펴봤다. 연기도 연기지만 백윤식의 선택이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신인 장준환 감독의 비주류 SF영화, 임상수 감독의 도발적인 영화 2편, 최동훈 감독의 영화 속 타짜, 우민호 감독의 야비한 기득권 언론인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해 보이는 게 없다. 중년을 넘은 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이렇게 많았던가. 어디서도 평범한 아버지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다. 백윤식이라는 연기 베테랑만이 가능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반드시 잡는다> 이후 백윤식의 차기작이 궁금하다. 백윤식은 박희곤 감독의 <명당>에 출연한다. 2018년 개봉 예정인 <명당>은 2명의 왕을 배출할 천하길지 대명당을 둘러싼 묏자리 쟁탈전이다. <타짜> <내부자들>에 함께 출연한 조승우도 출연한다. 왠지 느낌이 좋다.

명당

감독 박희곤

출연 조승우, 지성, 김성균, 백윤식, 문채원

개봉 2017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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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