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콧수염 탐정,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탐정 에르큘 포와로는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했다. 브래너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주연 및 연출도 맡았다. 감독과 배우를 오가는 영국 배우 케네스 브래너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그런데 진짜 어디서 봤더라….

- 오리엔트 특급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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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케네스 브래너, 조니 뎁, 데이지 리들리, 미셸 파이퍼,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윌렘 대포, 조시 게드, 데릭 제이코비, 레슬리 오덤 주니어
개봉 2017 미국
록허트 교수
브래너의 얼굴을 기억하는 관객은 아마도 두 부류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먼저 해리 포터 팬들. 브래너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2002)에서 질데로이 록허트 교수로 등장했다. 브래너가 연기한 록허트 교수는 원작의 상당한 미남이라는 설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허풍쟁이 연기만은 일품이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브래너의 연기 내공은 어마무시하다.

-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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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리스 콜럼버스
출연 다니엘 래드클리프, 루퍼트 그린트, 엠마 왓슨, 케네스 브래너, 존 클리즈, 로비 콜트레인, 워윅 데이비스, 리차드 그리피스, 리처드 해리스, 제이슨 아이삭스, 앨런 릭먼, 피오나 쇼우, 매기 스미스, 줄리 월터스
개봉 2002 영국, 미국
‘토르’ 덕후 감독
브래너의 얼굴을 기억하는 또 다른 팬들은 열혈 마블 팬일 가능성이 높다. 브래너는 <토르: 천둥의 신>의 감독이다. 배우가 아니라 감독 맞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코믹스 <토르>의 팬이라고 한다. 마블에서 감독직을 맡기고 <토르> 코믹스 전편을 보내줬다. <토르: 천둥의 신>은 마블 영화 가운데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브래너를 칭찬해야 마땅한 부분이 있다. 같은 영국 출신으로 함께 작업했던 톰 히들스턴을 로키로 캐스팅한 것이다. 흠. 로키 없는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는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 토르: 천둥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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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크리스 헴스워스, 나탈리 포트만, 톰 히들스턴, 안소니 홉킨스, 스텔란 스카스가드, 캣 데닝스
개봉 2011 미국
맨 마지막까지 남는 사령관
잠깐. 브래너의 얼굴을 기억할 만한 또 다른 팬층이 떠올랐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열렬한 팬이라면 그를 알아볼 것이다. 브래너는 놀란 감독의 최신작 <덩케르크>에서 마지막까지 병사들을 구출해내는 볼튼 사령관을 연기했다.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의 주요 배역을 영국 배우들로만 꽉꽉 채웠는데 브래너가 빠지면 섭섭했을 것이다.
- 덩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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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톰 하디, 킬리언 머피, 케네스 브래너, 마크 라이런스, 해리 스타일스, 핀 화이트헤드, 아뉴린 바나드, 톰 글린 카니, 잭 로던, 배리 케오간
개봉 2017 영국, 프랑스, 미국
제2의 로렌스 올리비에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 빠진 거 아니냐고? 진정한 케네스 브래너 팬이라면 이 영화를 분명히 봤을 것이다. 1956년 마릴린 먼로가 <왕좌와 무희>의 촬영차 영국에 머물던 시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브래너는 로렌스 올리비에 경을 연기했다. 먼로를 연기한 미셸 윌리엄스가 그녀의 걸음걸이 동작 하나 하나 완벽하게 재연하려고 노력했다면 먼로의 연기를 우스꽝스럽다고 여기고 천대하는 올리비에를 연기한 브래너는 어쩌면 너무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그의 연기 인생 자체가 올리비에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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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사이먼 커티스
출연 미셸 윌리엄스, 에디 레드메인
개봉 2011 영국, 미국
로렌스 올리비에(1907~1989)가 누군지 모른다고? 그럴 수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연기한 최고의 영국 배우다. 1949년 <햄릿>으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름에 ‘경’이 붙었으니 기사 작위를 받았고, 남작 작위도 받았다. 대표작으로 <레베카>, <햄릿>, <왕자와 무희>, <폭풍의 언덕>, <마라톤 맨> 등이 있다. 국내로 치면 안성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와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 헨리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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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케네스 브래너, 엠마 톰슨
개봉 1989 영국
브래너 역시 영국 배우의 숙명과 같은 셰익스피어 연극으로 단련된 배우다. 1982년 연극 무대에서 활약한 브래너는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수상했다. 1983년,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서는 23살의 나이로 최연소로 셰익스피어 희곡 <헨리 5세>의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가 되기도 하다. 이후 그는 자신이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 <헨리 5세>(1989)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의 후보에도 올랐다. 물론 <햄릿>(1996)에도 출연했다. 역시 직접 감독까지 맡았다. 시대 배경을 바꾸었지만 희곡 전체를 필름에 담은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238분이다. 대략 4시간이다.

-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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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케네스 브래너, 데릭 제이코비, 줄리 크리스티, 케이트 윈슬렛, 리처드 브라이어스, 니콜라스 파렐
개봉 1996 영국, 미국

- 헛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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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케네스 브래너, 리처드 브라이어스, 마이클 키튼, 로버트 숀 레오나드, 키아누 리브스, 엠마 톰슨, 덴젤 워싱턴
개봉 1993 미국
그가 연출하고 출연한 셰익스피어 원작 영화로 <헛소동>(1993)도 있다. 당시 브래너의 아내였던 엠마 톰슨도 출연했다. 출연만 한 영화로는 <오델로>(1995)가 있다. 그밖에 <햄릿 만들기>(1995)라는 제목의 극단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영화도 연출했다. 이만하면 로렌스 올리비에를 연기하고도 남을 진정한 셰익스피어 덕후, 아니 전문가라고 할 만하다. 배우 아내를 두고 이혼한 것까지 비슷하다. 브래너 역시 올리비에처럼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연극 경력은 영화에 비해 훨씬 더 화려하다. 브래너는 영화제작자 데이비드 파핏과 함께 르네상스 극단(Renaissance Theatre Company)을 만들기도 했다. 이때 찰스 왕세자가 후원해줬다.

- 작전명 발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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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톰 크루즈
개봉 2008 미국, 독일
케네스 브래너의 다른 작품들
영국 왕실도 사랑한 브래너의 다른 출연작, 연출작도 살펴보자. 그의 할리우드 데뷔작은 <환생>(1991)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또 다른 오손 웰스, 로렌스 올리비에”라는 극찬을 받은 뒤 브래너는 좀더 큰 예산의 영화에 참여하게 됐다. <프랑켄슈타인>(1994)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역시 연출과 출연을 겸한 이 영화에는 로버트 드 니로까지 캐스팅했다. 결과는 별로였다. 엠마 톰슨과 이혼한 브래너는 <프랑켄슈타인>에 출연한 헬레나 본햄 카터와 연인 사이였다. 이후 브래너는 우디 앨런의 <샐러브리티>(1998), 베리 소넨필드 감독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1999) 등에 출연했다. <작전명 발키리>(2009)에서는 트레스코프 소령 역을 맡았다. 2014년에는 크리스 파인,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로 감독 및 배우로 복귀했다. 다음해 디즈니 실사영화인 <신데렐라>의 연출도 맡았다.

-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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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크리스 파인, 키이라 나이틀리, 케빈 코스트너
개봉 2014 미국
케네스 브래너의 본업은 연기일까, 연출일까. 이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연기, 연출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본업은 연기, 부업이 연출 정도 돼 보인다. 본업과 부업을 함께 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어찌 됐건 아가사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 <나일강의 죽음>에서도 케네스 브래너 버전의 포와로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