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천천히 안녕>
조금씩, 천천히 안녕

감독 나카노 료타

출연 아오이 유우, 다케우치 유코, 마츠바라 치에코, 야마자키 츠토무

개봉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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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중반, 반짝이는 일본 여성 배우들이 있었다. 이들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이었다. 우에노 주리(1986년생), 미야자키 아오이(1985년생), 나가사와 마사미(1987년생), 사와지리 에리카(1986년생), 아야세 하루카(1985년생) 등이 그들이다. 한 사람 빠졌다. 아오이 유우(1985년생). 굳이 배우들의 생년을 표시해봤다. 지금 모두 30대가 됐다는 당연한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5월 27일 개봉한 <조금씩, 천천히 안녕>에 출연한 아오이 유우를 보며 새삼 그때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의 주요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보려 한다. 아오이 유우의 가장 찬란하던 시절을 찾아보자.


<오버 더 펜스>(2016)

<오버 더 펜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오다기리 죠와 아오이 유우를 재회하게 했다. 두 사람은 <무시시>(2006)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10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연인을 연기했다. 오다기리 죠는 사랑을 잃은 남자 요시오, 아오이 유우는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 사토시가 됐다. 아오이 유우의 캐릭터 사토시는 꽤나 괴팍한 성격처럼 보인다. 본인의 장기(?)를 살린 기괴한 춤사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런 장면은 아오이 유우라서 가능한 게 아닐까. 2017년 내한한 아오이 유우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힌트를 찾아봤다. 그녀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30대 배우가 된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다채로운 역할을 연기해도 10대 때의 다양함과는 다른 것 같다. 10대 때는 평평한 면이 많은 다양함이었다면 이제는 울퉁불퉁한 면이 많은 다양함을 연기한다고 해야 할까”였다. 울퉁불퉁한 다양함이라…. 아오이 유우는 또래의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오버 더 펜스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출연 오다기리 죠, 아오이 유우

개봉 201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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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가족>(2013)

<동경가족>

<동경가족>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이야기>(1953)에 오마주를 바치는 리메이크영화다.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든 야마다 요지 감독이 자신의 경력 50주년을 기념해 연출했다. 아오이 유우는 쇼지(츠마부키 사토시)의 연인 노리코를 연기했다. 쇼지는 자식들이 살고 있는 도쿄로 찾아온 노부부의 셋째 아들이다. 의사인 첫째, 미용실을 운영하는 둘째가 부모님의 방문을 부담스러워하는 반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프리타(フリーター)인 쇼지와 노리코만이 노부부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아오이 유우의 캐릭터는 원작 <동경이야기>에서 하라 세츠코가 연기했다. 다만 <동경가족>의 노리코는 원작과는 다른 설정의 인물로 영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아오이 유우의 연기는 하라 세츠코 못지않다. 세계 영화사에 남을 명작 <동경이야기>와 함께 비교해 보면 그녀의 연기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동경가족

감독 야마다 요지

출연 하시즈메 이사오, 니시무라 마사히코, 나카지마 토모코, 츠마부키 사토시, 아오이 유우, 요시유키 카즈코, 나츠카와 유이, 하야시야 쇼조

개봉 201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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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2006)

<허니와 클로버>

<허니와 클로버>는 예술대학에 다니는 청춘들이 등장하는 영화다. 사쿠라이 쇼, 카세 료, 세키 메구미, 이세야 유스케와 함께 아오이 유우가 출연한다. 아오이 유우가 맡은 역할은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하구미다. 우미노 지카의 동명 원작 만화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을 때 하구미 역할은 거의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물론 원작에선 하구미가 145cm의 단신이지만 그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아오이 유우니까 그러려니 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분위기라고 해도 좋겠다. 영화 <허니와 클로버>는 500만 부가 팔린 원작만큼 재밌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오이 유우를 비롯한 청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가치를 지닌 영화다. 물론 아오이 유우가 가장 빛나는 배우였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허니와 클로버

감독 타카타 마사히로

출연 아오이 유우, 사쿠라이 쇼

개봉 200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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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 걸스>(2006)

2006년은 아오이 유우의 최고 전성기였을까. <허니와 클로버>와 <훌라 걸스>가 모두 이때 (국내에선 2007년) 개봉했다. 재일 교포 이상일 감독이 연출한 <훌라 걸스>는 아오이 유우에게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안겨줬다. 그밖에 <훌라 걸스>는 일본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최우수감독상, 최우수각본상 등 11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훌라 걸스>의 배경은 1965년 일본 후쿠시마현의 탄광촌이다.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회사는 궁여지책으로 하와이언 센터 설립을 계획한다. 그렇게 탄광 마을의 소녀 사나에와 기미코(아오이 유우)는 훌라 댄서가 됐다. <훌라 걸스>는 전형적인 일본 상업영화의 구조를 취한다. 역경을 딛고 성취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 마지막에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훌라 댄스가 기다리고 있다. 아오이 유우의 훌라 댄스는 익숙한 이야기 공식에서도 빛을 발한다.


<하나와 앨리스>(2004)

<하나와 앨리스>

배우 아오이 유우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그녀의 데뷔작인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라고 하면 정답이다. 그럼에도 <하나와 앨리스>를 ‘배우’ 아오이 유우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이 영화가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줬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뒤로 단정하게 묶은 머리칼과 티 없이 맑은 미소가 아름다운 소녀 앨리스(일본어로는 아리스)는 아오이 유우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여전히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사람들이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는 발레 장면은 배우 아오이 유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영원히 언급될 것이다. 5분여 간 이어지는 이 시퀀스는 오롯이 아오이 유우의 시간이다. 이때만큼은 이와이 슌지 감독 특유의 화사한 조명과 지금 다시 보면 약간 튀어 보이는 디지털 영상의 독특한 이미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기분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촬영할 때 ‘아오이 유우에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고 한다. 10대 소녀이던 아오이 유우는 “엥? 감독님, 이런 건 인생의 추억 만들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을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렇게 말해버렸다고 한다. “너는 배우 해야 한다.” 아오이 유우의 지난 몇 편의 영화를 돌아보니 그녀가 계속 배우를 해주길 바라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바람이 이뤄져서 다행이다. 한 가지 바람을 더 가져본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로 살아줬으면 한다. <하나와 앨리스>의 소녀 아오이 유우가 보여준 아름다운만큼 찬란한 시절이 다시 찾아올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