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수화(手話)를 배웠다. 청각장애 소녀와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속죄와 용서의 이야기
<목소리의 형태>는 속죄와 용서에 관한 애니메이션이다. 소년 이시다 쇼야는 초등학교 시절 청각장애 소녀 니시미야 쇼코를 괴롭혔다. 처음엔 조금 짖궂은 장난이었지만 나중엔 장난 수준을 넘어섰다. 집단 ‘이지메’ 단계에 이르렀다.
결국 문제가 터졌다. 쇼코는 전학을 결정했고 학교측은 가해자를 찾았다. 쇼야가 지목됐다. 함께 쇼코를 이지메했던 친구들은 모른 체하거나 쇼야에게 잘못을 떠넘겼다. 쇼야는 친구들을 비난하다가 이지메의 대상이 돼버렸다. 그렇게 쇼야는 세상과 마음의 문을 닫았다. 6년 뒤, 고등학생 쇼야는 자살을 결심했다. 끝내 실행은 하지 못했다. 죽음 대신 쇼야는 속죄의 길을 택한다.
쇼야는 쇼코와 마주한다. 수화를 하는 쇼야를 보고 쇼코는 놀란다. 쇼야는 “나는(자신을 가리키고), 너와(상대를 가리키고), 친구가 되고 싶다(두 손을 맞잡는다)”고 수화로 말한다. 그 순간. 쇼야는 화들짝 놀라고 만다. 방금 자신이 했던 그 수화는 초등학교 시절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미소를 짓던 쇼코가 쇼야에게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의 어색한 만남이 끝나고 헤어질 때 쇼코는 “또 보자”고 수화로 말한다.
왜 그때 우리는 그랬을까
<목소리의 형태>는 가해자와 피해자, 단순히 두 사람만을 다루지 않는다. 쇼야가 쇼코를 만나는 순간부터 속죄와 용서의 관계는 복잡해진다. 두 사람을 둘러싼 인물들이 모두 개입한다. 쇼코의 동생 니시미아 유즈루, 초등학교 시절 쇼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쇼코를 괴롭혔던 친구들인 우에노 나오키, 카와이 미키, 마시바 사토시, 쇼코의 유일한 친구였던 사하라 미요코, 왕따가 된 쇼야와 처음으로 친구가 된 나가츠카 토모히로까지 각자의 사정으로 속죄와 용서의 관계에 엮인다. 알고 보면 그들 역시 모두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목소리의 형태>가 보여주는 치유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한번 깨진 유리컵을 완벽하게 복원하기 힘든 것처럼. 야마다 나오코 감독은 그런 상처난 인물들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 세심한 작화와 감각적인 연출이 한몫했다. 야마다 감독은 <케이온>, <타마코 러브스토리> 등을 연출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야마다 감독의 역량을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스스로 세상과 단절한 쇼야의 시선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애기할 수 있다. 원작 만화에도 등장하는 연출법이지만 가족을 제외한 학교의 학생들, 선생님들 모두 얼굴에 가위표가 붙어 있다. 쇼야가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처음 가위표가 떨어진 사람이 나가츠카였다. 간혹 가위표가 떨어졌다가 다시 붙기도 한다. 불꽃놀이가 있던 밤, 극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야마다 감독의 화면 구성이나 연출력이 극대화된다.
끝내주는 작화와 연출
잉어가 노니는 이미지는 섬세한 작화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마도 쇼코가 홀로 자주 갔던, 나중엔 쇼야와 함께 갔던 강에 살고 있는 알록달록한 빛깔의 비단잉어가 화사한 햇살의 물속에서 움직인다. 야마다 감독은 “이 아이들이 있는 세계에 절망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꽃이 피고 물도 솟고 확실히 생명이 깃들어 있는 세계가 있고, 그들을 둘러싼 세계 모두가 고민하는 것이 싫었다”고 말했다. 잉어의 이미지는 속죄와 용서의 힘든 과정에 위안이 되는 장면이다. “노란색과 하늘색, 연두색 같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색을 많이 사용”한 것도 야마다 감독의 선택이었다.
야마다 감독의 전략은 <목소리의 형태>를 보는 관객에게도 통한다. 쇼야와 쇼코의 화해,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 회복을 지켜보는 것으로 위안을 느낄 수 있다. 이는 흥행과도 연결됐다. 일본 개봉 당시 <목소리의 형태>는 <너의 이름은.>과 함께 쌍끌이 흥행 신드롬을 일으켰다.
물론 <목소리의 형태>가 전하는 울림은 원작의 힘이 크다. 원작 만화는 2014년 코믹 그랑프리 1위, 코믹 나탈리 1위, 2015년 ‘이 만화가 대단해’ 1위, 제19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신생상까지 석권했으며 300만 부 이상 팔렸다.
믿고 보는 ‘쿄애니’
훌륭한 원작을 망쳐놓는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많다. 주목할 점은 원작자인 오이마 요시토키가 “사실 교토 애니메이션이 내 작품을 제작해줬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하긴 했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뛰어난 역량의 교토 애니메이션이 <목소리의 형태>를 제작했다는 사실이다. 재패니메이션 마니아 사이에서 나도는 ‘믿고 보는 쿄애니(교토 애니메이션)’라는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극강의 작화력과 섬세한 연출력을 자랑하는 쿄애니의 대표작으로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러키☆스타>, <케이온!>, <Free> 등이 있다.
덧, 원작 만화에서 들을 수 없는 쇼코의 목소리(청각장애인이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는 꽤 울림이 크다. <목소리의 형태>와 유사한 소재의 웹툰으로 만화가 억수씨의 <Ho!>가 있다. 28살의 김원이와 21세의 청각장애인인 ‘Ho’가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만화다. 이 웹툰의 원작은 일본의 인터넷 사이트 ‘2ch’에 올라온 한 유저의 실제 경험담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