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면 다른 대로 적당히 어울려서 살아가다 보면 미지의 상대는 금세 평범한 이웃이 된다. <안녕, 프란체스카>가 15년 전 우리에게 능청스레 들려줬던 이야기는, 그렇게 다른 존재들과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이었다.

<안녕, 프란체스카>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거에 딱히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사람이 사람 싫어하는 것에도 꼭 대단한 명분이 필요하진 않다. 우린 별 시답잖은 이유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웃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사람 인상이 복 없게 생겨서, 지지하는 정당이 나랑 달라서, 저번에 보니까 이단 종교를 믿는 거 같아서, 전철에서 내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먼저 올라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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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그냥 “음, 좀 불쾌하군” 하고 넘어가도 될 법한 일들인데, 우린 종종 그 사소한 일들을 근거 삼아 상대를 집요하게 미워하곤 한다. 저런 몰상식한 사람들 때문에 나의 하루를 잡치는 게 너무나 억울하고, 대체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저러는지 모르겠고, 저런 사람들이 많아서 사회가 흔들리는 것이고, 안 그래도 인구 증가로 자원이 고갈되며 환경이 파괴되는 마당에 저런 인간들만 사라져도 한결 세상이 아름답지 않겠냐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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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속으로 몰래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과, 그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혼자 속으로 누군가를 미워할 때엔 몰라도, 티를 내는 순간 그 미움에 대해 정당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상대를 향해 증오의 이빨을 드러낼 때, 미움을 근거로 “당신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말할 때, 같은 사회 구성원끼리의 일상적이고 정당한 교류를 거부할 때, 분명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대체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 거냐고. 그래도 한사코 대놓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차별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꾸 가짜 뉴스를 가져와 이유랍시고 제시하겠지만, 그런다고 졸렬함이 가려지진 않는다. “가짜 뉴스까지 써가며 사람 차별하고 미워하는 인간”이 될 뿐.

<안녕, 프란체스카> 속 한남동 사람들도, 아마 그래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올 블랙으로 차려 입은 음침한 인상의 사람들을 내치지 않았을 것이다. 깜장드레스 차림으로 반상회에 등장한 프란체스카(심혜진)가 화투장 떼는 재미에 눈이 뒤집혀서 새벽이 되도록 집에도 안 가고 눌러 앉아 있어도, 출처가 불분명한 통닭을 팔아도, 음침한 기운을 뿜어대며 도끼를 들고 골목을 뛰어다녀도, 그 집 애들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세뱃돈을 뜯어가도, 이상하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 이유만으로 남을 배척할 수는 없어서 그냥 같이 살았을 것이다. 프란체스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수나(이수나)조차도, 적어도 자기 좋자고 이웃을 내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고스톱만 치면 뒤끝이 더럽단 이유로 고스톱 판에는 안 끼워주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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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쫓겨나지도 내쳐지지도 않는 세상 속에서, 프란체스카네 식구들은 조금 엉뚱하지만 그런대로 사람들과 공존했다. 비록 인간이 아닌데 인간인 척 하느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야 하고, 가끔은 썩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생존을 도모하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심각하게 해치거나 세상을 크게 어지럽히진 않았다. 엘리자베스(정려원)는 부티크에 취직해 일을 하며 자기도 자기만의 가게를 열고 싶단 꿈을 키웠고, 켠(이켠)은 남자고 여자고 가릴 거 없이 자신에게 상냥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환하게 웃어주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이 별나고 기괴한 식구들도, 이사를 가면 떡을 돌리고 고마운 일이 있으면 인사를 하며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웃는 평범한 시민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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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다른 존재가 이 세상 어딘가에 슬그머니 숨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장 두려운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딱히 누굴 해치지 않고 이미 우리 가운데 섞여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는 크게 두렵지 않다. 물론 여전히 마음 속으로는 마음에 썩 안 드는 구석이 있고 처음엔 좀 어색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속 안에만 담아둔 채, 다르면 다른 대로 적당히 어울려서 살아가다 보면 미지의 상대는 금세 평범한 이웃이 된다. <안녕, 프란체스카>가 15년 전 우리에게 능청스레 들려줬던 이야기는, 그렇게 다른 존재들과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안녕, 프란체스카>가 방영되었던 그 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더랬다. “성별, 성정체성, 장애(신체조건), 병력, 외모, 나이, 출신 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혼인 여부, 성지향성,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전력, 보호 처분,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과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법률”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이렇게 선량하고 당연한 내용이 또 없는데, 그걸 기를 쓰고 반대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어서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입법 추진은 전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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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게 싫고,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게 싫으며, 다른 종교가 세를 불리는 게 싫다는 사람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하고 입법에 나선 의원들의 사무실에 욕설이 담긴 전화를 걸고 정당 사무실을 찾아가 린치를 한단다. 이게 대체 뭐람. 아니, 남자가 남자 좋아하는 게 싫어? 우리 켠이가 그렇게 싫어? 그럴 때마다 난 도끼를 들고 한남동 언덕길을 뛰어내려가던 프란체스카의 마음이 되지만, 프란체스카가 시리즈 내내 정말로 도끼로 내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마음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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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신정구 작가와 노도철 PD가 함께 꾸었던, 사람과 뱀파이어가 함께 공존하는 세상의 꿈은 어디쯤 오고 있는 걸까. 이 모퉁이만 돌면, 프란체스카와 두일(이두일)이 손 잡고 함께 사랑했던 세상이 올까.


이승한 TV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