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홍이 돌아왔다. 무술감독으론 늘 그렇듯 꾸준히 활동 중이지만, 스크린에 배우로 선 건 2006년 <짝패> 이후 13년 만이다. “연기를 너무 못해서” 연기를 안 하겠다는 그였지만, 마셜 아츠에 정통한 배우가 아직 등장하지 않아 <난폭한 기록>의 강기만 역을 맡게 됐다. 영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봤을, 혹은 들어봤을 정두홍이란 이름 석 자. 충무로는 왜 이렇게 정두홍, 정두홍 하는 걸까. 그 이유를 간단하게 정리해봤다.
1. 서울액션스쿨의 설립자
액션을 넘어 모든 장르의 한국 영화가 빚지고 있는 서울액션스쿨. 서울액션스쿨은 이름처럼 액션과 스턴트를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교육 기관이다. <악녀>의 권귀덕, <신과함께> 시리즈의 허명행, <악인전>의 최봉록 등 무술감독들과 그 액션을 책임지고 현장에서 재현하는 스턴트 배우들을 양성하고 있고, 액션 영화에 출연할 배우들이 트레이닝을 받는 곳이다. 이런 서울액션스쿨을 설립한 사람이 김영빈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이다. 과거 스턴트팀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은 한국 영화계에서 이런 액션 전문 기관을 설립하는 건 도전임과 동시에 미래를 개선하기 위한 과제였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지금, 서울액션스쿨은 한국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단원들은 액션과 스턴트를 익히는 고된 훈련 과정을 견디며 지금도 한국 영화 속 액션들을 더욱 알차게 만들고 있다.
2.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기 힘든 남자
정두홍이 처음 스턴트 배우로 참여한 작품은 1990년 <장군의 아들>. 무술감독으로 입봉한 작품은 1992년 <시라소니>. 그러니까 20여 년을 한국 영화계 무술팀으로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정두홍의 액션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도 꽤 많이 쌓였다. 스턴트 배우부터 시작한 그는 액션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크게 다쳐 쇄골에 볼트 12개, 신체 곳곳에 철심을 박아야 했다. 덕분에 공항 검색대를 편하게 통과해본 적이 없다고. 이 쇄골을 다친 사고도 드라마틱하다. <런 어웨이> 촬영 당시, 쇄골을 다쳤는데도 현장으로 와서 “약속은 약속이다”라고 차에 달려드는 스턴트를 소화했다고 한다. 그것도 감독이 괜찮다는데 다섯 테이크나 더 가면서. 본인은 이런 사고들을 툭툭 털어놓는데, 듣는 입장에선 등골이 오싹해진다. 한강에 뛰어들었다가 폐가 터지고, 낙하 장면을 찍다가 등과 머리가 먼저 닿아 정말 죽을 뻔했던 순간. 그는 작업하러 나갈 때마다 유서를 써두고 간다고.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그였기에 한국 액션의 상징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3. ‘김류강’이 신뢰하는 무술감독
영화는 예술이다. 동시에 산업이다. 작품의 성패가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주가로 반영된다. 그런 점에서 정두홍의 필모그래피에 천만 돌파 영화가 세 편이나 있는 건 주시할 만하다. 2003년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2015년 <베테랑>. 이외에도 <한반도>, <1번가의 기적>,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공공의 적 1-1>, <마더>, <전우치>, <베를린>, <밀정> 등이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그와 두 번 이상 작업한 감독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류승완 감독, 강우석 감독, 김지운 감독이 그렇다. 류승완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 같은 경우 거의 영혼의 단짝 수준으로 작품을 함께 하고 있다. 이 감독들은 정두홍 감독이 “자신의 판단에서 꼭 찍어야 한다면 언쟁하고” “실제와 같은 액션을 만들어내며” “상황과 맞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충실”하단다. 총합해보면 영화에 필요한 액션과 필요 없는 것을 재빨리 분별하고, 영화 전체를 읽을 줄 알며, 스스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정확히 표현한다는 것. (강우석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무술‘감독’이란 것이다.
4. 드라마 속 ‘스턴트맨 전문 배우’
영화계의 이런저런 얘기로 설명했지만, 정두홍이 바꿔놓은 건 대중들의 인식도 포함된다. 그는 여러 드라마에서 액션배우, 혹은 스턴트 배우로 출연하면서 이런 직업이 단순히 멋있거나 고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직업들처럼 다양한 고충이 있음을 시사했다. 첫 드라마이자 작품 내내 비중이 상당한 <네 멋대로 해라>에서 양찬석 역으로 출연했는데, 실제 그의 직업인 무술감독과 그의 직장 서울액션스쿨이 주인공 고복수(양동근)에게 중요한 전환점으로 그려졌다. 고복수라는 인물의 삶을 전환하는 곳이자, 쉴 수 있는 쉼터로서 그려진 그와 서울액션스쿨은 대중들이 무술감독, 스턴트 배우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끔 도왔다. 또 여성 스턴트 배우를 주인공으로 그린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도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 <시크릿 가든>의 김은숙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정두홍과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들은 경험담이 극중 임종수(이필립)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언젠가부터 밤에 전화가 오면 혹여 누가 다쳤을까 무섭다, 전화를 받자마자 “어디 병원이야? 죽었어?”라고 묻게 된다는 종수의 대사는 정두홍 감독이 김은숙 작가에게 들려준 경험담이다. 이처럼 정두홍 감독은 ‘몸쓰는 직업’이란 사회적 인식에 맞서 자신의 직업을 당당하게 여기고, 직접적으로 자부심과 고충을 밝히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액션계로 이끌었다.
5. 전무한 액션배우
마지막 이유는 한편으론 한국 영화계의 인프라가 빈약한 것을 보여준다. 정두홍은 “대한민국에 액션배우라는 호칭을 받을 배우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난폭한 기록>으로 돌아왔다. 그는 <레이디 액션> 같은 예능과 액션배우를 발굴하는 오디션을 진행했지만, 신인 액션 스타를 적극적으로 기용할 작품이 없어서 노력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액션도 하(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 말고 액션 자체가 특기이고 장점인 배우의 부재는 정두홍 무술감독을 ‘배우 정두홍’으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이는 충무로가 정두홍, 정두홍 하는 이유이자 충무로가 정두홍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발굴해야 한다는 과제이기도 하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