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월도 절반이 지났네요. 그 말은 2016년도 절반이 훌쩍 지났다는 거죠. 누군가에게는 빠르게, 누군가에게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은 사실 칼같이 그저 흘러가게 마련이지요. 1년의 절반이 지났다는 게 무슨 의미냐 싶겠지만 의미는 붙이기 나름입니다. 그래서 씨네플레이도 지난 상반기 6개월 동안 관객과 만난 영화 가운데 기억해야 할 영화들을 골라 의미를 부여해봤습니다. 다음 15개의 각 부문별 최고의 작품을 보시면 올해 상반기 어떤 영화들이 있었는지 기억나실 겁니다.(*주의! 너무 진지하게 보시면 안됩니다.)
1. 최고의 흥행작
올해 아직 천만 관객 영화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름 영화 가운데 천만을 노리는 영화들이 개봉 대기 중입니다. <인천상륙작전> <부산행> 등이 떠오르네요. 상반기 흥행 1위는 970만 관객을 동원한 <검사외전>입니다. 황정민과 강동원이 출연한 <검사외전>은 2월3일에 개봉했습니다.
2. 최고의 눈빛
2월에 개봉한 토드 헤인즈 감독의 <캐롤>에는 시점숏이 많이 나옵니다. 극중 인물이 다른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관객이 보게 되는 겁니다. 그 시선 속에 캐롤과 테레즈가 있습니다. 테레즈는 캐롤을 바라봅니다. 몰래 사진도 찍습니다. 캐롤도 테레즈를 바라봅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의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최고의 레즈비언 커플’ 부문에 선정되어도 좋을 겁니다.
3. 최고의 명대사
최고의 명대사가 뭐냐고요? 명대사 그따위가 “뭣이 중헌디?” 이건 이견이 없습니다. 상반기 명대사는 <곡성>의 효진(김환희)이 아빠 종구(곽도원)에게 내뱉은 대사입니다. <아가씨>의 히데코의 내레이션.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도 후보였습니다.
4. 최고의 아역배우
‘아역배우 전성시대’라고 할 만큼 상반기에 아역배우의 활약이 눈에 띄었습니다. 후보는 <곡성>의 김환희,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의 말순이를 연기한 김하나, <4등>의 준호를 연기한 유재상, <우리들>의 배우들(최수인, 설혜인, 이서연 등)이 있습니다. 이 중 최고는 누구일까요? 사심 가득 담은 1등은 <우리들>의 배우들입니다.
5. 최고의 신인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첫 영화로 칸에 간 신인. 누군지 다 아실 겁니다. 상반기 최고의 신인은 <아가씨>의 김태리입니다. 김태리는 ‘최고의 노출 수위’ 부문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겠네요. 첫 영화가 박찬욱 감독 작품이고 칸에도 가고 노출도 엄청나고. 김태리의 다음 선택은 무엇이 될지 궁금해집니다.
6. 최고의 재개봉 영화
올 상반기 재개봉 영화가 많았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볼까요. <인생은 아름다워>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500일의 썸머> <피아니스트> <비포 선라이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등입니다. 이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로베트로 베니니가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12만 관객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봤습니다. 재개봉 열풍은 계속 이어질까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언어의 정원>과 <초속5센티미터>이 7월7일, <바그다드카페: 디렉터스 컷>은 7월14일 재개봉했습니다.
7. 최고의 동물 배우
<주토피아>에도 동물이 나오고 <정글북>에도 동물이 나오고 <레전드 오브 타잔>에도 동물이 나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동물은 1월에 개봉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 출연한 곰입니다. 카메라 렌즈에 맺힌 콧김 혹은 입김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이 당연한 결과라면 그 곰에게는 동물주연상이 주어져야 합니다.
9. 최고의 시
‘상반기 영화 결산에 웬 시냐’고 하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우리는 이준익 감독의 <동주>를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흑백 화면 속 시인 윤동주를 연기한 강하늘이 읊어주는 시 <자화상>을 쉽게 잊을 수가 없습니다.
10. 최고의 의상
의상 부문은 시대극에서 빛을 발합니다. 조상경 의상감독의 <아가씨>가 후보에 오를 수 있겠습니다. 히데코(김민희)의 서랍장 속 그 많은 장갑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요? 장갑뿐이겠습니까. 모자, 드레스, 기모노, 구두… <아가씨>의 의상은 화려했습니다. 또다른 시대극이 있습니다. <캐롤>과 <브루클린>입니다. <캐롤>에선 부잣집 귀부인 캐롤을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이 온갖 화려한 (아마도 명품) 의상을 선보입니다. <브루클린>에서는 아일랜드 이민자 에일리스(시얼샤 로넌)의 의상이 인상적입니다.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녹색 계통의 카디건을 계속 입고 나옵니다. <캐롤>과 <브루클린>은 모두 1950년대 미국 뉴욕이 배경입니다. 당시 의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도 역시 의상 부문은 <아가씨>에게 돌아가는 게 맞겠습니다.
11. 최고의 신 스틸러
이 부문은 혼전 양상입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출연한 스파이더맨(톰 홀랜드), <엑스맨: 아포칼립스>에 출연한 퀵실버(에반 피터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 출연한 원더우먼(갤 가돗), <빅쇼트>에 거품 목욕을 하면서 경제용어를 설명해준 마고 로비 등 화려한 후보를 제친 1등인 바로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되겠습니다. 동의하시죠?
12. 최고의 떡밥
<곡성> 떠올리셨죠? 엄밀히 말하면 <곡성>은 극중 인물들에게도 그렇고 관객들에게도 낚시를 한 거죠. 우리는 그걸 문 것 뿐이고요. 떡밥은 다릅니다. 떡밥의 제왕이 누군지 아시죠? 바로 J.J. 에이브럼스입니다. 그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가 상반기에 있었습니다. 바로 <클로버필드 10번지>(4월 개봉)입니다. 2008년작 <클로버필드>의 속편은 아니지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히어로무비도 아닌데 무슨 세계관이냐고요? 아래 블로그 포스트를 읽어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13. 최고의 입덕
한때 한국의 소녀들은 유덕화, 장국영, 곽부성, 여명 등 중화권 배우들에 열광했습니다. 누군지 모른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5월에 개봉한 <나의 소녀시대>의 주인공 린전신(송운화)이 유덕화의 팬인데요. 영화 속 시간이 1994년이죠. 22년 전입니다. 어쨌든 1990년대 한국의 소녀들이 유덕화에 열광하듯이 <나의 소녀시대>의 왕대륙이 빵 떴습니다. 상반기 최고의 입덕이라고 할만 합니다. 벌서 한국에 두번이나 방문했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젓기인가요?
14. 최고의 자막
약 빨고 만든 영화에는 약 빤 자막이 필요했습니다. <데드풀>의 오프닝 크레딧을 기억하시나요? <데드풀>의 자막은 많은 이들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 자막을 만든 사람은 황석희 번역가입니다. 한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는 “누구 오렌지 있어?”라는 번역이 논란이 됐었습니다. 오역은 아니라고 판명이 됐습니다.
15. 최고의 배반작
최고의 배반작 후보는 5월 개봉한 <엽기적인 그녀2>와 3월 개봉한 <무수단>입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군요. 빅토리아와 차태현이 출연한 <엽기적인 그녀2>는 전편의 영광을 보기 좋게 배반했습니다. 이지아의 복귀작인 <무수단>은 무슨 영화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엽기적인 그녀2>는 7만7천여명, <무수단>은 1만5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두 영화를 모두 보지 않은 건 행운일까요? <사냥>도 후보에 넣어야 할까요? 아, 어렵습니다. 그래도 ‘최고의 배반작’을 뽑자면 <엽기적인 그녀2>입니다. 우리 견우를 그렇게 망가뜨리다니.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