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감독 이준익
출연 설경구, 변요한

심규한 <씨네플레이> 기자
사건보다는 사람에, 화려함보다는 선명함에 주목하라
★★★
역사를 쉽고 흥미롭게 담아내는 이준익 감독의 장기는 이번에도 빛났다. 이상과 현실, 실용과 관념, 저항과 순응이 충돌하는 역사의 변곡점을 정약전(설경구)과 창대(변요한)의 관계를 통해 조망한다. 배움과 쓰임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이들의 고민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같은 무게의 질문으로 다가온다. 사극이 처음이란 말이 무색하게 설경구의 연기는 기품이 있고, 변요한은 이에 힘있게 호응한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바다가 아닌 길에 대한 이야기
★★★
학자 정약전은 왜 물고기 책을 썼는가. 민생에 득이 되는 실리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한 태도는 무엇을 말하는가. <자산어보>는 그 마음을 읽어내리는 영화다. 자연을 가까이에서 겸손하게 대하며 삶의 이치를 터득하는 것은, 학문적 성취와는 또 다른 어떤 경지다. 감독은 바로 이것이 정약전이 붓을 든 힘이었을 거라 말한다. 그렇게 <자산어보>는 바다가 아닌 길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거기에서 무엇을 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된다. 서로 우정과 배움을 나누는 정약전과 창대의 모습이 담긴 전반부의 흐름이 워낙 유려하기에, 이후 두 사람이 각자의 길을 걷는 과정의 밀도가 조금은 아쉽다. 다만 하나의 아름다운 수묵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기는 이 영화에서, 끝까지 시선을 단단하게 잡아두는 배우들의 얼굴은 아쉬움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얼굴에 패인 주름, 몸의 움직임, 시선 등 모든 것이 그대로 농담을 조절해 스크린에 입힌 먹으로 기능한다. 스크린에서 본 그 어떤 풍경보다 이것이 더욱 스펙터클하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바람과 파도로 그린 수묵담채화
★★★
좋은 사극은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결국 현재를 소환한다. <자산어보> 역시 그러하다. 성리학이 진리라고 믿는 창대 그딴   소용없고 백성을 위해서는 물고기 책이  낫다는 정약전. 서로 다른 신념을 지닌 이들이 의견을 주고 받고 충돌하면서 조선의 근대성이 현재에 가지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여백과 명암으로  닿는 곳마다 유려하게 풀어낸 수묵담채화 같은 풍광 또한 이야기에 걸맞게 깊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영상으로 쓴 수묵화
★★
<동주>로 송몽규를 소개하고 <박열>로 가네코 후미코를 알렸던 이준익 감독이 이번엔 정약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정약전(과 정약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어부 창대)을 주목했다. 정약전이 남긴 자산어보 한 권에서 시대정신과 먹고사니즘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 차이와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촘촘하게 엮어낸 이준익 감독의 상상력/공력에 존경을 표한다. 제작비 조달이라는 현실적 이유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흑백은 이번에도 옳다. 흑과 백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바다 풍광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 미처 몰랐다. 영상으로 쓴 수묵화 같다.

자산어보

감독 이준익

출연 설경구, 변요한

개봉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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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
감독 김종관
출연 연우진, 김상호, 아이유, 이주영, 윤혜리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빛을 생각하게 하는 어둠처럼
★★★
창작에 대한 고민, 두 사람 사이의 대화,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시간, 현실과 꿈을 느슨하게 연결한 판타지 등 그간 김종관 감독이 주목하고 다져온 주제와 스타일의 조각 모음 같은 영화다. 연이어 만나게 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듯 경청하는 주인공 창석(연우진)의 태도처럼, 영화는 “어차피 다 지어낸 얘기”이지만 귀 기울이게 만드는 조용한 힘을 지녔다. 모든 대화에 섬세하고도 기민하게 반응하는 연우진의 얼굴 역시 그렇다. 인물들이 떠나가고 빈자리에는 아무도 없지만 이야기가 남는다. 감독은 그렇게 이야기가 남은 공간과, 한때 그곳을 빼곡하게 채우던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스크린으로 목격할 때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 되는 영화적 순간에 대한 실험 역시 잊지 않는다. 빛보다는 어둠의 영화이나, 어둠은 늘 빛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어둠이 잦아드는 시간
★★
<조제>를 기점으로 김종관 감독의 작업이 새로운 챕터로 완전히 넘어가는 게 아닐까 했는데, 이전 스타일을 변주해서 깊게 파는 쪽으로 돌아왔다. (<조제>와 같은 해에 찍은 작품이라는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김종관 감독의 인장이 명확하게 찍혀 있는 작품이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을 섞고, 주제적인 면에서는 <페르소나-밤을 걷다>와 이어 달린다. 정서적으로는 가장 어둡다. 인간 심연에 존재하는 여러 감정 중 그림자에 속하는 부분을 주로 퍼서 모은 까닭이다. 어둠을 찾아오는 시간을 끈기 있게 포착해 고스란히 담아낸 미장센이 인상적이다. 등장인물에 따라 하나의 호흡을 형성하는 에피소드 형식이기에 관객마다 흥미를 느끼는 구간이 다를 것이다.

아무도 없는 곳

감독 김종관

출연 연우진, 김상호, 아이유, 이주영, 윤혜리

개봉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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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감독 
타무라 코타로
출연 나카가와 타이시, 키요하라 카야

정유미 <더 스크린> 에디터
청춘 애니로 거듭난 조제와 츠네오의 성장담
★★★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이누도 잇신 감독이 2004년 연출한 멜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비교한다면, 애니메이션은 어두운 색을 덜어내고 밝은 톤을 더한 순정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원작과 실사 영화를 익히 안다면 주인공 조제와 츠네오의 성격 변화, 설정의 차이들이 새롭게 다가올 듯하다. 두 주인공이 각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강조해 원작보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에피소드 전개는 애니메이션만의 묘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감독 타무라 코타로

출연 나카가와 타이시, 키요하라 카야

개봉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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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로닉
감독 아론 무어헤드, 저스틴 벤슨
출연 안소니 마키, 제이미 도넌

정유미 <더 스크린> 에디터
신박한 설정의 타임루프 영화
★★★
2013년부터 꾸준히 호러 스릴러 미스터리 SF 장르를 선보여온 저스틴 벤슨과 아론 무어헤드 감독의 SF 판타지 미스터리 영화. 절친한 친구이자 파트너로 일하는 두 구급대원이 강력한 약물 싱크로닉 때문에 벌어진 참혹한 사건 현장에 잇따라 출동한다. 주연을 맡은 안소니 마키와 제이미 도넌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콤비 플레이 대신 예상을 비껴가는 전략을 취한다. 사건 현장의 기묘한 비주얼과 두 인물의 개인사를 오가던 영화는 안소니 마키가 키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타임루프 장르를 꾀한다. 여기서 영화의 배경인 루이지애나의 역사가 주요하게 다뤄지면서 아이러니하고 의미심장한 대목들이 튀어나온다. 전반적으로 개성과 허점이 뒤섞여 있으나 기발한 발상과 주제의식은 인정할 만하다.

싱크로닉

감독 아론 무어헤드, 저스틴 벤슨

출연 안소니 마키, 제이미 도넌

개봉 202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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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리
감독 박민국
출연 박민국, 서진원, 김은재, 최현신, 임지호

정유미 <더 스크린> 에디터
이 시대 청춘들의 영화 만들기
★★☆
전도유망한 영화감독과 그와 함께 작업해온 젊은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박민국 감독과 그의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들이 직접 출연진으로 등장해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픽션과 연기를 선보인다. 이들이 거액의 영화 투자 제안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코미디가 극적 재미라면, 시작부터 끝까지 영화의 형식을 뒤흔드는 연출적 시도는 재기발랄한 재미로 다가온다. 웃픈 현실을 긍정으로 이겨내는 이들의 자세가 영화의 태도와 맞닿아 있어 그 진심이 와 닿는다.

노가리

감독 박민국

출연 박민국, 서진원, 김은재, 최현신, 임지호, 김우건, 조건호, 정의욱

개봉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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