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흔히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불리며 영화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골든 글로브 어워드(이하 골든 글로브)가 영화인들의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할리우드의 이름난 배우들이 직접 성명을 발표하거나 트로피를 반납하며 골든 글로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 골든 글로브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동안 골든 글로브에서 발견된 문제점들과 함께 정리해보자.
골든 글로브란?
골든 글로브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이하 HFPA)에서 주최하는 영화, TV를 아우르는 미국 시상식이다. 1944년 1월 20일, 1회 시상식을 개최한 이후 지금까지 60여 년 가까이 꾸준히 맥락을 이어온 시상식으로 보통 아카데미, 에미상과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대중매체 문화예술 분야 시상식 중 하나로 소개한다. 기본적으로 영어 대사가 50% 이상이 돼야 국내(미국) 작품으로 판단하고, 영화 부분은 독특하게도 드라마 부문과 뮤지컬/코미디 부문으로 구분해 상을 수여한다. 아카데미와 달리 단편이나 다큐멘터리, 기술 스태프 부문은 없고 드라마 또한 작품상과 남녀 주·조연 배우상만 존재한다.
골든 글로브의 '자격'을 비판하다
최근 골든 글로브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진 이유는 이 시상식을 주최하고 후보를 선정하는 HFPA 구성원들의 비율 때문이다. HFPA는 협회 이름처럼 기자들이 속한 단체인데, 총 55개국 약 90명 내외의 회원을 유지한다(올해는 87명). 미국 영화협회(MPA)의 인증을 받고 최소 4건의 기사나 사진 게시, 매월 열리는 월간 회원 회의에 4회 이상 참석, 캘리포니아 남부 거주 조건을 충족해야 회원이 될 수 있다. 문제는 2021년 LA 타임스의 기사에 따르면 현재 HFPA 회원 중 흑인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그 외 유색인종도 아주 적은 비율이라고 한다).
할리우드는 백인 중심이란 비판을 거세게 받은 2010년대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유색인종을 포용했다. 아카데미가 2년 연속 남녀 주·조연상 후보를 백인 배우로만 채우자 흑인 영화인들이 시상식 불참으로 보이콧한 사례를 시작으로 아카데미는 유색인종 소재 작품과 배우의 비중을 점차 높여왔다. 아카데미 후보를 선정하고 그런 상황에서 HFPA가 흑인이 전혀 없이 대다수 백인으로만 구성됐다는 보도는 자연스럽게 시대에 역행하는 움직임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가장 강경하게 나선 배우들은 톰 크루즈, 스칼렛 조핸슨, 마크 러팔로. 톰 크루즈는 <7월 4일생>(남우주연상-드라마), <제리 맥과이어>(남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 <매그놀리아>(남우조연상)로 받은 골든 글로브 트로피 3개를 반납했다. 스칼렛 조핸슨과 마크 러팔로는 각자 성명서를 발표해 골든 글로브를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스칼렛 조핸슨은 "HFPA의 기자회견과 시상식에 참여하는 일은 특정 회원들의 성차별 질문과 발언에 직면하는 것을 의미했다"고 HFPA의 성 관념 또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종 차별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정치적 올바름이 중요시되는 미국 사회에서 HFPA의 구성원 문제는 해당 협회가 주최하는 골든 글로브의 공정성과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6년 이후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중계한 방송국 NBC까지 2022년 골든 글로브 중계를 포기한다고 밝힐 정도였으니까. 워너브러더스, 넷플릭스, 아마존 스튜디오 등이 골든 글로브 보이콧을 선언하자 HFPA는 내부 개혁안을 발표했다. 전체 회원 수와 유색인종 회원 비율을 높이겠다는 개혁안의 취지는 나쁘지 않았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늦장 대응이란 시선은 피할 수 없다.
골든 글로브의 사건사고
할리우드가 HFPA의 구성원 문제 하나로 골든 글로브를 이렇게 빨리 '손절'한 걸까. 그건 아니다. 골든 글로브는 그 명성만큼 다양한 비판을 받아왔다. 형평성 같은 추상적인 문제점부터 HFPA 회원들이 저지를 구체적인 사건도 꾸준히 있었다.
_1982년 <버터플라이>의 피아 자도라가 '올해의 신인상 영화 부문'(New Star of the Year in a Motion Picture)을 수상했다. 피아 자도라는 1964년 <산타클로스 더 컨커스 마티언스>라는 영화로 스크린 데뷔를 했기에 논란을 빚었다. 그래서 당시 자도라의 남편이자 백만장자인 므술람 리클리스(Meshulam Riklis)가 회원들을 매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HFPA는 이듬해 골든 글로브에서 해당 부문을 폐기했다.
_영화 부문을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로 분류하는 기준이 불분명해 자주 화두에 올랐다. 뮤지컬이나 코미디 같은 상업적 장르도 포용하겠다는 의도는 좋아 보이나 영화마다 기준이 판이했기 때문. 2011년 <투어리스트>가 '액션', '스릴러'로 분류됐음에도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녀 주연상, 작품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됐다. 2016년에도 <마션>이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과 작품상 후보로 등록돼 비판을 받았다. 공포 영화 <겟아웃>도 뮤지컬/코미디로 분류된 바 있다. 이런 불분명한 구분법은 HFPA의 전문성과 일종의 '보답성 노미네이트' 의혹에 불을 지폈다.
_작품의 '국적' 구분이 불분명하다. 작품의 국적은 일반적으로 제작사, 제작 자본에 따라 구분한다. 할리우드 배우가 대거 나오지만 한국 제작사에서 제작해 '한국 영화'로 구분되는 <설국열차>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골든 글로브는 앞서 말한 대로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여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미국 제작 영화조차 외국어 영화상에 배치하곤 했다. 2020년 <페어웰>도 미국 영화임에도 외국어 영화상 부문 후보로 올랐다. 그나마 <페어웰>은 중국 배경이라 넘어간다 해도, 2021년엔 미국 제작사의 미국 배경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발표해 HFPA는 '인종차별적이다'라는 강도 높은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_HFPA 회원 중 일부가 파라마운트 픽처스로부터 협찬을 받고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후보로 올렸다는 의혹이 불어졌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2021년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최우수 TV 시리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LA 타임스는 HFPA 회원 중 30여 명이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협찬으로 파리에 머물렀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1일에 약 1400달러가량의 5성급 호텔에 2박 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30여 명이면 HFPA 회원 90여 명 중 1/3을 초청한 것. HFPA 측은 "개인의 투표권을 협회에서 통제할 수 없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공개했다.
_2020년 노르웨이의 기자 키얼스티 플라가 HFPA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서 해당 협회의 폐쇄성과 카르텔을 폭로했다. 그는 HFPA 멤버들이 영화사와 방송국들에게 수천 달러를 받는다고 언급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사태를 보면 HFPA 측의 부정 이익을 분명해 보인다. 다만 키얼스티 플라는 한국 배우 수현에게 인종차별적 질문으로 논란을 빚었던 전적이 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