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단단하게 받치고 있는 건 아시아인들이다. 할리우드란 거대한 스크린 안에서 주변인으로 머물던 그들이 드디어 한가운데에 섰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양조위나 양자경부터 다소 낯선 이름인 장멍과 진법랍까지. 오늘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 등장하는 아시아계 배우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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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스틴 크리튼
출연 시무 리우, 양조위, 아콰피나
개봉 2021.09.01.
샹치 - 시무 리우
1989년생
중국계 캐나다(이민 1.5세대)
마블 영화 최초의 아시아 슈퍼히어로 솔로 무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속 주역 샹치를 맡은 시무 리우. 그가 연기한 샹치는 션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가족을 떠나고, 과거를 외면하고, 공포로부터 도망치던 그는 션으로 이름을 바꾸고 평범한 주차요원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괴한들의 습격으로 인해 자신의 힘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그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여타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달리 맨손 격투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마블식 무협영화라 불러도 손색 없을 정도로, 그는 타격감 좋은 맨손 액션을 선보였다. 장비의 날카로움과는 다른, 맨몸이 주는 묵직한 타격감은 여타 슈퍼히어로 영화에선 볼 수 없는 액션이었고 샹치는 이점에서 가장 특색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시무 리우는 중국계 캐나다인으로 중국 하얼빈 출신이지만 다섯 살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이민 1.5세대다. 캐나다의 명문대학 웨스턴 온타리오에서 경영대를 졸업한 그는 딜로이트 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근무하다가 9개월 만에 정리해고 당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기보단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따르기로 하고 연기판에 입성하게 된다.
단역과 엑스트라를 하며 연기를 시작한 그는 스턴트 일도 했는데, 이는 샹치 역을 표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해냈다. <김씨네 편의점>을 즐겁게 본 이라면 그의 액션에 집중할 수 있을까 우려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버스 신에서 괴한들을 ‘살인 무술’을 통해 무찌르는 모습을 보면 샹치라는 캐릭터에 순식간에 빠져들 테니 걱정 마시길.

- 김씨네 편의점 시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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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폴 선형 리, 진 윤, 시무 리우, 안드레아 방, 앤드류 풍, 니콜 파워
방송 2016, 캐나다 CBC
웬우 - 양조위
1962년생
홍콩
마블 영화 중 가장 낭만적이고, 잔혹하며, 처연한 빌런 웬우를 완벽하게 연기한 양조위. 그가 맡은 웬우는 1000년이란 시간 동안 끊임없이 학살을 반복해 온 무자비한 정복자였지만 진정한 사랑을 만나 가족을 꾸리고 그 나름대로 사랑을 표현한 아버지였다. 긴 세월 동안 채워도 채워지지 않던 탐욕은 가정을 꾸리자 순식간에 충만해졌고, 웬우는 가족과 아내를 위해 영생과 힘, 권력을 모두 내려놓고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과오로 인해 아내를 잃은 후 복수를 다짐하며 과거를 억지로 불러오려고 한다. 어쩌면 처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사랑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큰 주축이 되었고, 웬우는 히어로보다 더 매력적인, 영화의 진(眞) 주인공 평가를 받고 있다.
양조위는 홍콩 태생 배우로 도박꾼 아버지로 인해 불안정한 가정을 경험했다. 아버지가 떠난 후, 홀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자란 그는 이때의 경험이 자신의 연기 경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했다.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졌다. 그날부터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따금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라며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한 그는 “고립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연기가 좋다. 오랫동안 가둬놓은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극 전반을 지배하는 웬우의 절제되면서도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슬픔은 어쩌면 양조위가 아버지에게 갖고 있던 감정 그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황제라고도 불리는 양조위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 스타 중에서 지금까지 활발히 활동하는 배우 가운데 한 명이다. 타고난 자신의 선한 마스크를 그대로 활용하기보다 때로는 기대에 부응하고, 때로는 배신하며 연기 변신을 꾀한 그는 시간이 흘러도 쇠락한 청춘스타가 아닌, 연기파 배우로 우리의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양조위 팬들은 <중경삼림>(1995)과 <해피 투게더>(1998), <화양연화>(2000) 속 양조위의 모습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특히 <중경삼림> 속 양조위 첫 등장신은 가히 ‘레전드’. 이번 웬우 연기를 통해 그는 또 한 번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며 Z세대에까지 이름을 알리게 됐다.

- 중경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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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왕가위
출연 임청하, 양조위, 금성무, 왕페이
개봉 1995.09.02. 2021.03.04. 재개봉
케이티 - 아콰피나
1988년생
미국 뉴욕
마블의 베스트 드라이버, 케이티를 연기한 아콰피나는 중국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도 2세대 이민자로 등장하며 캐스팅 싱크로율을 높였다. 케이티는 마블 히로인 중 가장 유머러스한 캐릭터로, 사랑보단 가족과 같은 우정이 더 돋보인다. 위험에 빠질 걸 알면서도 샹치를 위해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 굉장한 의리파다. 신체적 능력이 타 캐릭터에 비해 다소 부족하지만, 출중한 드라이빙 실력과 중요할 때 한 방이 있는 편.
아콰피나가 맡은 케이티 역할은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다. 자칫하다간 소위 ‘민폐’ 캐릭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완급조절이 필수였지만 아콰피나는 2020년 아시안 최초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한마디로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였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무거운 가족 서사 사이사이 숨 쉴 틈을 주는 환기의 공간이 되어 줬다.
그는 래퍼로 먼저 데뷔했다. 언론사와 출판사에서 일할 당시 아마추어 래퍼 활동을 이어나가다가 2012년 ‘마이 배지’(My Vag)을 유튜브에 발표하며 본격적인 래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마이 배지’로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얻은 그는 2018년에 두 번째 정규 앨범 <인 피나 위 트러스트>(In Fina We Trust)를 발표하며 꾸준히 디스코그래피를 이어 왔다. 배우 활동은 출판사에서 해고당한 후 2013년 단편영화 <쉐도우 맨>으로 처음 연기판에 입성했다. 이후 2018년 <오션스 8>에서 재빠른 소매치기 콘스탄스 역을 맡으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고, 중국계 미국인 가정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은 영화 <페어웰>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쌓았다.

- 페어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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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룰루 왕
출연 아콰피나
개봉 2021.02.04.
장 난 - 양자경
1962년생
말레이시아 화교
신비한 마법의 마을, 탈로의 지도자 장 난을 연기한 양자경은 말레이시아 출신의 홍콩 여배우다. 장 난은 자신의 조카인 샹치와 쑤 샤링에게 저마다 필요한 조언을 하는 현명한 조력자 캐릭터로 샹치에게 그가 잊고 있던 어머니의 무술을 마저 전수해 주는 인물이다.
이를 연기한 양자경은 홍콩의 원조 액션 여제로 1986년에 개봉한 <예스 마담>으로 본격적으로 액션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무술감독계의 전설로 불리는 원표에게 무술을 배웠는데, 과거 발레리나 활동을 한 적이 있던 터라 그의 하드한 액션을 빠르게 흡수했다. 양자경은 유연성이라는 자신의 특성을 활용할 줄 아는 배우였다. 특유의 유연성을 활용해 부드럽고 유연한 액션을 선보였는데, 이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도 등장한다. 발 끝으로 원을 그리며 강한 힘을 부드럽게 흘려 넘기는 액션은 <와호장룡>(2000)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우아한 움직임, 카리스마는 20년 넘게 시간이 흘러도 여전했다.
그는 신념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도 뚝심이 있었는데, 양조위가 홍콩 민주화 시위대를 지지하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면 양자경은 미얀마 시위대에 지지를 표시했다. 그는 실제로 영화 <더 레이디>(2012)에서 미얀마의 지도자인 아웅 산 수치를 연기한 바 있다.

- 예스 마담 - 황가사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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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원규
출연 양자경, 잠건훈, 맹해, 신시아 로즈록
개봉 1986.07.19. 2014.04.24. 재개봉

- 와호장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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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안
출연 주윤발, 양자경, 장쯔이, 장첸
개봉 2000.08.19. 2001.03.03. 재개봉

- 더 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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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뤽 베송
출연 데이빗 듈리스, 양자경
개봉 2012.09.06.
쑤 샤링 - 장멍
1987년생
중국 난징
샹치가 어머니의 따뜻한 성품을 조금 더 많이 이어 받았다면, 동생 샤링은 아버지의 야심을 이어 받은 캐릭터다. 그는 여성은 훈련시키지 않는 텐 링즈 사이에서 홀로 어깨너머로 무술을 수련하며 힘을 키운 생존력과 야심이 강한 인물로, 오빠인 샹치가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스스로 키운 힘을 토대로 마카오의 뒷세계를 지배한다. 샹치는 부담과 공포에 짓눌렸고, 샤링은 결핍과 소외로 유년시절을 보내야만 했기에 샹치와는 다른 트라우마 포인트도 비교해 보면 좋다.
장멍은 샤링이라는 캐릭터의 아픔과 냉철함을 동시에 표현하며 능숙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놀랍게도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스크린 데뷔작이다. 중국 장수성 난징에서 태어나 난징예술대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의 이스트 15 배우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했다. 그는 처음엔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는데, 국내에서도 2019년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시간 속의 그녀>로 출연한 적 있다. 장멍은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만난 무술감독 이영과 결혼했다.
장 리 - 진법랍
1982년생
중국계 미국인
진법랍은 사랑으로 웬우를 바꿨던 장 리 역을 맡았다. 그는 편안하고 부드럽지만 강인한 내면을 갖고 있는 여성으로 웬우에게 처음 패배를 안겨준 인물이다. 처음 웬우와 만나 서로의 힘을 겨뤘던 장면은 <일대종사>의 최고 명장면인 양조위와 장쯔이의 대결을 숲속으로 옮겨 놓은 듯 아름답다. 특히 춤을 추는 듯한 액션신 속, 시선을 교감하는 두사람의 모습은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아도 손색 없을 정도. 왜 웬우가 사랑에 빠졌는지 납득할 수밖에 없다.
진법랍은 1982년생으로 14살까지는 중국 청두에서 자랐으나, 이후 부모님과 함께 미국 애틀랜타로 이민을 갔다. 명문 고등학교에 다닌 그는 2005년 명문 사립대학 에모리 대학교에서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그는 여러 미인 대회에 참가했는데 미스 뉴욕 차이니즈 2004에 참가, 우승하여 2005 홍콩 TVB에서 개최하는 미스 차이니즈 인터내셔널 선발대회에 뉴욕 참가자로 참가했다.
이 일을 계기로 진법랍은 2005년 홍콩 방송사인 TVB와 계약해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버라이어티 쇼 진행자로 엔터테인먼트 일을 시작했고, TVB 시리즈인 <법증선봉>(法證先鋒, Fa cheng sin fung)으로 연기 데뷔를 했다. 그는 가수로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2012년에 발매한 <뷰티풀 라이프>(Beautiful Life)는 발매한 지 일주일 만에 HMV 선정 ‘아시아 앨범 중 최고 수량 판매’를 기록하며 차트 1위에 등극했다. 홍콩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을 통해 할리우드로 성공적인 도약을 했다.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