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극장 가는 길의 숨통을 트여준 은인처럼 느껴진다. 어느새 2021년도 10일 남짓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뒤를 이어 극장가에 다양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역시 연말은 연말이던가. 남은 10일간 관객을 바쁘게 만들어줄 여러 크고 작은 작품을 소개한다.


[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 22일 개봉

2015년,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가 첩보 스릴러 계보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재기 발랄한 전개와 등장인물의 개성 강한 캐릭터,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만나 이룩한 결과였다. 매튜 본 감독은 이 기세를 이어 2017년 속편 <킹스맨: 골든 서클>을 내놓았는데, <킹스맨> 시리즈는 단 두 편 만에 위기론이 거론될 정도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그래서일까, <킹스맨> 시리즈의 신작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에그시(테런 에저튼)가 나오는 속편이 아닌 ‘킹스맨’ 기관의 첫 임무를 그린 프리퀄로 돌아왔다. 근미래적 기술력의 가젯으로 쏠쏠한 재미를 준 영화로는 특이한 선택이다.

과거가 배경이니 모두 새로운 등장인물이지만, 기존 <킹스맨> 시리즈의 인물 구도와는 비슷하다. 킹스맨 요원으로 합류한 새내기 콘래드는 해리스 딕킨슨이, 그의 멘토이자 파트너 옥스포드 공작은 랄프 파인즈가 맡는다. 이번 영화의 빌런 라스푸틴은 리스 이판이 연기하는데, 해외 평에 따르면 엄청난 신스틸러라고 하니 사무엘 잭슨-줄리안 무어에 이어 명품 빌런 연기를 보여줄 듯하다. 그 외에도 젬마 아터튼, 디몬 하운수, 매튜 구드, 다니엘 브륄, 애런 존슨, 스탠리 투치 등 출연진이 화려하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매튜 본 특유의 정신 나간 스토리와 연출이 이번 영화에서 다시 적정선을 찾을지 여부다. 2편에서의 실수를 이번에 만회한다면 다음 작품에서 에그시 3부작을 완성할 것으로 보인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감독 매튜 본

출연 랄프 파인즈, 해리스 딕킨슨

개봉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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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 리저렉션 ] 22일 개봉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와 같은 날 맞붙는 영화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신작 <매트릭스: 리저렉션>(이하 <리저렉션>)이다. 1999년, 기계가 인류를 지배하기 위해 가상 세계를 운영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려 SF 열풍을 선도한 <매트릭스>는 2003년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와 <매트릭스 3 - 레볼루션>을 공개해 3부작을 완성한 바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 OSMU)를 적극적으로 수용, 영화에 담지 않은 일화들을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지금 유행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유사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당대 최고의 시리즈이지만 완결된 지 20년이 다 된 지금, 새로운 속편은 기대와 우려를 모두 받고 있다.

전작의 주인공 가운데 네오, 키아누 리브스와 트리니티, 캐리 앤 모스는 복귀했다. 2~3편 촬영 당시 불화설이 있었으나 시간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갈등이었는지 이번 영화에서 다시 조우했다. 모피어스는 로렌스 피시번이 아닌 야히아 압둘 마틴 2세가 발탁됐고 스미스 요원도 휴고 위빙이 아닌 조나단 그로프가 맡았다. 둘의 캐스팅은 이번 영화가 전편에서 이어지되 큰 변화가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라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제시카 헨윅, 프리앙카 초프라, 두 배우의 활약도 기대가 커지는 중. 한편 <리저렉션>은 항상 같이 작업했던 워쇼스키 자매 가운데 라나 워쇼스키만이 연출로 돌아왔다. 과연 이 속편이 <매트릭스> 시리즈의 부활이 될까, 죽음이 될까.

매트릭스: 리저렉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 앤 모스

개봉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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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브 마이 카 ] 23일 개봉

12월 극장가, 상업 영화계의 주인공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라면 예술 영화계의 주인공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아닐까 싶다. 올해 공개한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 모두 호평을 받은 가운데 12월, 2015년작 <해피 아워>와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 두 편이 개봉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일본 영화계를 책임질 감독이라는 수식어에도 한국 개봉까지 이어진 작품은 <심도>와 <아사코> 두 편뿐이었으니 뒤늦게 그에게 빠진 영화광들에겐 이 두 편이 선물인 셈이다.

그중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는 연출가 겸 배우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미우라 토코)와 함께 하는 과정을 그린다. 죽은 아내의 내연남을 마주치게 되고, 그를 통해 지난 시간을 다시 곱씹게 되는 등 하마구치 감독의 전작들처럼 조금씩 흔들리는 일상과 그것을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 간의 조응이 영화를 채운다. 그동안의 작품에서 신체 워크숍, 사진전, 영화 등 다른 영역의 것을 작품에 활용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연극 <바냐 아저씨>를 중요한 요소로 녹여냈다. 하마구치 감독 영화 특유의 일상적이나 지루하지 않은 작품으로, 말로 옮기기는 어려운 감각의 것이 그득하기에 백문이 불여일견.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단편이 원작이며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드라이브 마이 카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미우라 토코

개봉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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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램 ] 29일 개봉  

해외 독립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공포나 스릴러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배급한 A24의 신작 <램>. <램>은 A24의 다른 공포·스릴러 영화들처럼 고요한 가운데 스멀스멀 불안한 기운이 엄습하는 스타일로 관객들을 몰아세운다. 제목 램(Lamb)이 뜻하는 양(羊)이란 단어가 이번 영화의 핵심. 마리아(누미 라파스)와 잉그바르(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부부가 운영하는 양 목장에서 독특한 생명체가 태어나고, 그로 인해 갈등이 빚어지는 이야기를 전한다. 스웨덴 배우로 전 세계 영화계에서 활약 중인 누미 라파스가 마리아 역을 맡고, 남편 잉그바르 역에 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피에튀르 역으로 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이 출연한다.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VFX(Visual Effects)와 촬영팀으로 활동한 발디마르 요한손이 고국 스웨덴에서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 A24 영화들이 늘 그렇듯 영화에 대한 정보를 모르면 모를수록 더욱 충격적인 영화로 다가올 것이다.

감독 발디마르 요한손

출연 누미 라파스, 비욘 흘리뉘르 하랄드손, 힐미르 스나에르 구오나손

개봉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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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웨어 스페셜 ] 29일 개봉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빠 존(제임스 노턴)은 아들 마이클(다니엘 라몬트)이 같이 살 가족을 골라야 한다. 이 한 줄의 스토리만 보면 꽤 심각한 영화처럼 보이는 <노웨어 스페셜>는 예상외로 전체 관람가를 받은 무해한 영화 중 하나이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에서 ‘내가 떠나고 남은 아이는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 것에 비하면 <노웨어 스페셜>의 상황은 그래도 나은 것처럼 보인다. 이쪽은 아들을 챙겨주는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긴 하니까. 하지만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야 가벼울 수 있겠는가. 아들이 같이 살 가족을 고른다는 것조차 존에겐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웨어 스페셜>은 떠나는 존의 마음뿐만 아니라 마이클을 입양하고자 하는 가정들의 모습도 다양하게 비춰 아이를 뺏는 상대로 묘사되던 위탁가정을 색다르게 접근한다. 담담하게 인간의 죽음을 주시하며 관객들에게 진한 잔상을 남긴 <스틸 라이프>(2013)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신작.

노웨어 스페셜

감독 우베르토 파솔리니

출연 제임스 노턴, 다니엘 라몬트

개봉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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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 23일 개봉

코로나 시국이 다시 악화되면서 국내 영화 대다수가 한 발짝 물러났는데, 연말 개봉을 꿋꿋이 고수하고 있는 독립영화가 한 편 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는 독특한 코미디 감각으로 열성 팬덤이 있는 고봉수 감독 사단의 김충길 배우가 연출 겸 각본 겸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영화에 출연할 기회를 잡은 무명 배우가 용기를 얻어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한다는 스토리를 토대로 무명 배우가 겪는 웃지 못할 상황들을 그린다. 소위 말하는 ‘수공예 영화’기 때문에 다른 영화들처럼 화려한 부분은 없지만 연말의 분위기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싶다면 김충길 감독 겸 배우의 소소한 이야기를 함께 해봄직하다. 한국영상자료원 ‘독립영화 연말정산’ 기획전에서 고봉수 사단을 만날 수 있는 <튼튼이의 모험>을 온라인 상영한다는 것도 참고하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

감독 김충길

출연 김충길, 윤해신, 임성균

개봉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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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음에 관하여 ] 16일 개봉

이미 개봉한 작품이지만,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로이 앤더슨 감독의 <끝없음에 관하여>는 일반적인 영화가 아니다. 여러 공간 속 인물들을 스크린을 통해 그리는 회화 같은 작품이다. 장편이라 하기엔 단편적이지만 연작이라고 하기엔 그 순간들을 관통하는 정서가 일관적이고 상당히 강렬하다. 이전작들에서 꾸준히 고수하던, 고정된 카메라로 공간과 인물을 아우르는 스타일로 로이 앤더슨의 세계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영화도 아니기에 내년을 맞이하기 전, 2021년을 기억할 영화로 적당하다. 예술영화라는 말이 극장으로 발길을 옮기기에 조금 버겁다면, 76분이란 짧은 상영시간이 힘이 될지도.

끝없음에 관하여

감독 로이 앤더슨

출연

개봉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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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