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의 <하우스 오브 구찌>가 개봉했다. 주연 배우 레이디 가가의 연기에 대한 극찬이 이어진다. 여기에 자레드 레토의 이름도 추가하고 싶다. 포스터에서 이름을 확인했으나 그의 얼굴을 바로 찾지 못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레드 레토는 대머리의 중년 남성, 파올로 구찌를 연기했다.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를 정도의 분장이다.
자레드 레토는 크리스찬 베일, 틸다 스윈튼 등과 비교할 만한 배우다. 그의 몸무게는 베일처럼 늘고 줄었으며, 그가 선보인 다채로운 분장 캐릭터는 스윈튼을 연상시킨다. 자레드 레토의 지난 작품을 돌아보자.
자레드 레토는 1971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보셔시티에서 태어났다. 1992년 자레드 레토는 가수의 꿈을 안고 LA로 이주했다. 이때 부업으로 배우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94년 출연한 ABC 드라마 <마이 소 콜드 라이프>(My So-Cold Life)를 통해 청춘스타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상대 배우는 클레어 데인즈였다.
TV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할리우드에 조금씩 얼굴을 알리던 자레드 레토는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장거리 육상선수 스티븐 프리폰테인의 실제 이야기를 극화한 영화 <프리폰테인>(1997)이 첫 주연작이었다. 프리폰테인은 나이키가 후원한 첫 운동선수로 알려진 인물이다. 흥행에 실패했지만 <프리폰테인>은 평론가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다.

- 프리폰테인
-
감독 스티브 제임스
출연 자레드 레토, R. 리 이메이
개봉 미개봉
자레드 레토에게 1998년은 의미 있는 해다. 그해 형 새넌 레토, 맷 워처(이후 탈퇴)와 함께 서티 세컨즈 투 마스(30 seconds to Mars)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슬래셔 무비 <캠퍼스 레전드>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원제가 ‘어번 레전드’(Urban Legend, 도시전설)인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 캠퍼스 레전드
-
감독 제이미 블랭크스
출연 자레드 레토, 알리시아 위트, 레베카 게이하트, 조슈아 잭슨, 나타샤 그렉슨 와그너, 로레타 드바인, 타라 레이드, 마이클 로젠바움
개봉 1999.03.13.
자레드 레토가 청춘스타에서 배우로 명성을 쌓아가던 시기 출연한 작품으로 테렌스 맬릭 감독의 <신 레드 라인>(1998), 데이빗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1999), 위노라 라이더와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처음 만나는 자유>(1999), 메리 해론 연출,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아메리칸 싸이코>(2000) 등이 있다. 모두 조연이었지만 훌륭한 영화들이다. 작품 고르는 안목이 눈에 띈다. 최근에 자레드 레토의 팬이 된 관객이라면 이 당시 출연작을 찾아서 보는 것도 좋겠다.

- 파이트 클럽
-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헬레나 본햄 카터
개봉 1999.11.13. 2016.10.26. 재개봉
<파이트 클럽>에 이어 데이빗 핀처 감독은 자레드 레토를 자신의 영화 <패닉 룸>에 다시 출연시켰다. 레토는 콘로우(cornrow) 헤어 스타일이 인상적인 주니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맨해튼에 위치한 멕 알트만(조디 포스터)의 고급 아파트에 침입한 괴한 셋 중에 한 명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인물이다. 빈집인 줄 알고 들어온 세 침입자는 새 입주자의 존재를 알고 도둑에서 강도로 변한다. 멕과 그의 딸 사라(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패닉 룸(외부에서 열 수 없는 비밀 대피 공간)으로 도망친 뒤, 탈출하려고 노력한다. 주니어는 패닉룸을 설계한 기술자 번햄(포레스트 휘태커)과 계속 의견 충돌을 일으킨다. 연기 경력이 많은 휘태커에 비해 무게감은 적지만 레토는 <패닉 룸>에서 본인 몫을 충실히 수행했다.

- 패닉 룸
-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조디 포스터, 포레스트 휘태커, 드와이트 요아캄, 자레드 레토
개봉 2002.06.21.
<레퀴엠>은 자레드 레토와 연기력이라는 단어를 연결 지을 수 있는 영화다. 그가 주연을 맡은 <레퀴엠>은 평단과 대중에게 모두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이 영화에서 레토는 헤로인에 중독된 해리를 연기했다. 그는 <레퀴엠>에서 해리의 연인 마리온으로 출연한 제니퍼 코렐리와 함께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보였다. 그가 보여준 연기를 두고 단순하게 마약중독자 연기가 뛰어났다고 하기엔 모자란다. 영화를 보면 그 이유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빠른 편집과 컷 전환, 극단적인 클로즈업 등을 활용해 관객이 마치 마약으로 인한 환각을 보는 듯한 영상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레토는 이 몽환적인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연기를 보여줬다.

- 레퀴엠
-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엘렌 버스틴, 자레드 레토, 제니퍼 코넬리, 말론 웨이언스
개봉 2002.07.12.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알렉산더>에서 자레드 레토는 헤파이스티온을 연기했다. 헤파이스티온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콜린 파렐)의 측근이라고 알려진 역사 속 실존 인물이다. 스톤 감독은 알렉산더가 동성애자라는 가설을 영화에 끌어 들었다. 헤파이스티온이 바로 알렉산더의 절친이자 심복이자 연인으로 묘사된다. 참고로 이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으며 배우들의 연기도 악평을 받았다. 최악의 영화를 꼽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 6개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레토는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

- 알렉산더
-
감독 올리버 스톤
출연 콜린 파렐, 안소니 홉킨스, 안젤리나 졸리, 발 킬머, 자레드 레토
개봉 2004.12.31. 2015.09.17. 재개봉
서두에 크리스찬 베일과 자레드 레토를 비교했던 이유를 <챕터 2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챕터 27>에서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인물은 마크 채프먼이라는 실존 인물이다. 그는 존 레논을 살해했다. 시대의 아이콘을 죽은 살인마. 30kg 살을 찌우는 것만큼이나 연기하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챕터 27>은 국내에 개봉하지 못했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갈 것으로 믿는다. <알렉산더>와 함께 <챕터 27>은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체중을 늘이는 레토의 연기 투혼은 빛을 잃고 말았다. 이후 레토는 연기보다 밴드 활동에 치중했다. 일부 팬들은 장남 삼아 <챕터 27> 시절 사진을 레토에게 건네며 사인을 요청한다고 알려졌다. 레토는 웃으면서 사인을 해준다고 한다.

- 챕터 27
-
감독 J.P. 쉐퍼
출연 자레드 레토, 린제이 로한, 주다 프리드랜더
개봉 미개봉
<챕터 27>의 실패 이후 자레드 레토는 <미스터 노바디>를 통해 스크린으로 복귀하며 반전을 노렸다. 이 영화 역시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토토의 천국> <제8요일>의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무려 7년간 시나리오를 썼다고 알려진 <미스터 노바디>는 매우 난해한 스토리 라인의 영화다. 인생의 선택에 따라 9개의 다른 삶을 살게 되는 니모 노바디(자레드 레토)라는 남자의 일생을 돌아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레토는 죽음을 앞둔 118세의 니모도 연기했다. 분장 캐릭터 연기의 달인 틸다 스윈튼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 미스터 노바디
-
감독 자코 반 도마엘
출연 자레드 레토, 다이앤 크루거, 사라 폴리
개봉 2013.10.24. 2020.09.30. 재개봉
자레드 레토는 <미스터 노바디> 이후 다시 밴드 활동에 집중했다. 이후 5년 만에 선택한 영화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다. 이 영화는 크리스찬 베일과 틸다 스윈튼도 인정해야 할 작품이다. 어마어마한 체중 감량과 여장을 하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했기 때문이다. 에이즈 환자인 트랜스젠더 레이언은 여전히 레토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레토는 그해 거의 모든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으며 오스카 트로피도 차지했다. 매튜 맥커너히 역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매튜 맥커너히, 제니퍼 가너, 자레드 레토
개봉 2014.03.06.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자레드 레토에게 아픈 손가락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본 것처럼 레토는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메이어 감독의 연출, 각색 과정의 조커 캐릭터 해석, 그리고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보여줬던 조커와의 비교 등을 이유로 꼽을 수 있겠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레토 본인에게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엄격한 메소드 연기로 캐릭터를 완성했다고 알려졌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레토의 조커는 많은 부분 영화에서 편집된 것으로 보인다.

- 수어사이드 스쿼드
-
감독 데이비드 에이어
출연 마고 로비, 윌 스미스, 자레드 레토, 카라 델레바인, 제이 코트니
개봉 2016.08.03.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니안더 월레스는 마치 종교 지도자 같다. 선한 지도자는 아니다. 눈이 먼 천재 과학자 웰레스는 거대 기업의 CEO이면서 인류는 물론 전 우주를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애초에 월레스 역에 데이빗 보위를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6년 그의 죽음 이후 빌뇌브 감독은 그와 비슷한 이미지의 배우로 자레드 레토를 캐스팅했다.

- 블레이드 러너 2049
-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라이언 고슬링, 해리슨 포드
개봉 2017.10.12.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자레드 레토는 많은 변신을 선보였다. 체중은 늘었고 머리카락은 사라졌다. 파올로 구찌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레토는 매일 6시간씩 분장을 해야 했다. 이 모든 외적 변화와 함께 더 놀라운 건 그의 연기다. 특히 이탈리아식 영어 악센트를 완벽하게 구사했으며 목소리 톤마저 바꾸었다. 레토의 팬이 아니라면 절대 그가 누군지 알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 하우스 오브 구찌
-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자레드 레토,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셀마 헤이엑
개봉 2022.01.12.
2022년 자레드 레토는 <모비우스>를 통해 관객과 만난다. 조커 이후 새로운 코믹스 캐릭터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소니의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에서 레토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해보자.

- 모비우스
-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사
출연 자레드 레토, 아드리아 아르조나
개봉 2022.01.00.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