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프로젝트 <배니싱: 미제사건>이 3월 30일 개봉했다. 글로벌 프로젝트답게 한국의 유연석과 할리우드 배우 올가 쿠릴렌코가 주연을 맡고, 프랑스의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연출했다. 드니 에르쿠르 감독은 “문화적 측면에서 한국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두 가지 문화를 섞어 나가면서 범죄 영화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는데, 확실히 익숙한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프랑스인의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인지 어쩐지 서울이 낯선 도시처럼 느껴진다. 기존 한국에서 만들어지던 장르적 맥락이나 문법, 하다못해 앵글과 포커스까지 다르기에 영화는 다소 생경한 느낌을 주는데, 그 부분이 꽤나 기분 좋게 다가온다. 영화의 확실한 매력 포인트.
<배니싱: 미제사건>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신원 미상 변사체가 발견된 후,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진호(유연석)와 국제법의학자 알리스(올가 쿠릴렌코)가 공조 수사를 진행하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마주하게 된다. 제목의 ‘배니싱’은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초자연적인 현상도 포함하지만, 대개는 원인 불명의 실종사건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후자의 의미에서 유명한 배니싱 사례들을 정리해보았다.

- 배니싱: 미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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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드니 데르쿠르
출연 유연석, 올가 쿠릴렌코, 예지원
개봉 2022.03.30.
메리 셀레스트호 사건
최초의 선상 미제사건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유령선 사건이 아닐까. 1872년 12월 5일, 북대서양에서 표류 중이던 미국 국적의 메리 셀레스트호가 갑작스레 텅 빈 상태로 발견되었다. 브리그즈 선장과 7명의 선원, 브리그즈 아내 사라와 2살 된 딸도 없었다. 필수품을 챙긴 흔적이 없기에 조난으로 보기도 어려웠고, 금품이나 화물들은 약탈당한 흔적이 없어 해적의 소행으로 보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즉, 사람만 완벽하게 증발해 버린 것. 당시 영국 해사 법정은 메리 셀레스트호 사건을 ‘원인 불명’으로 처리했다. 이는 최초의 선상 미제 사건이었다.
처음엔 배에 걸린 보험금을 노리고 선장과 선주가 벌인 자작극이 아닐까, 의심도 했으나 그 이후로 메리 셀레스트 호에 탔던 이들은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수많은 가설들이 존재했으나, 그 무엇도 사실로 밝혀진 것은 없다. 이러한 미스테리함 때문인지 메리 셀레스트 호 사건은 미디어에서 자주 다뤄졌는데, 코난 도일도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한 단편 소설 「J.하바쿡 제퍼슨의 증언」을 집필했다. 영화로는 1978년에 만들어진 괴수 영화 <워로드 오브 아틀란티스>가 있다.

- 워로드 오브 아틀란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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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케빈 코너
출연 더그 맥클러, 피터 길모어
개봉 미개봉
아이린모어 등대지기 실종사건
빛이 꺼지고, 사람들이 사라졌다.
1900년 스코틀랜드 아이린모어 섬의 등대 불빛이 꺼졌다. 3명의 등대지기가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졌고, 영국 정부는 수색대를 꾸려 조사에 나섰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메리 셀레스트 호 사건과 함께 바다에서 일어난 가장 유명한 미스터리 실종 사건이다. 폭풍으로 인해 파괴된 서쪽 상륙 지역을 보고, 처음엔 폭풍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했으나, ‘불빛이 꺼져 있던’ 바로 그날에는 폭풍이 없었다. 그 이후 몰아닥친 폭풍으로 인해 수색대는 사건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야 수색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건 당일의 일은 알 수 없었다. 또한 ‘등대지기 3명 중 1명은 반드시 등대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인지, 방수복 2벌은 사라졌고, 한 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2명이 조사를 나갔던 중 해양 사고를 겪었다고 해도, 한 명은 방수복도 입지 않은 채 어디로 갔으며, 어떻게 사라졌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키퍼스>(2021)는 이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사건에 대한 나름의 가설을 세워 사라진 이유를 밝히고 있다. <키퍼스>는 세 명의 등대지기가 난파된 보트에서 남자의 시신과 금괴가 든 나무 상자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세 사람은 시신을 없애고 금괴를 나눠 가지기로 했는데, 그들 앞에 상자를 찾는 낯선 사람들이 나타난다. 영화 <300>(2007)과 <그린랜드>(2020) 등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던 제라드 버틀러의 연기 변신이 특히 눈에 띄는 작품.

- 키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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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크리스토퍼 니홀름
출연 제라드 버틀러, 피터 뮬란, 코너 스윈들스, 조 알윈
개봉 2021.05.12.
아멜리아 에어하트 실종 사건
여성들의 우상, 아멜리아 에어하트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미국의 비행기 조종사로 1932년, 전 세계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을 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북미 대륙 캐나다의 뉴펀들랜드에서 출발해 14시간 56분 만에 대서양을 건너 북아일랜드의 한 농촌에 착륙했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조종 중 고도계가 고장나고 엔진이 파손되는 등 여러 고난이 있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935년에는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를 단독 비행으로 건너간 최초 비행사 타이틀을 얻었다. 이 타이틀은 남녀 통틀어 전 세계 최초였다.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이러한 도전적인 행보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속의 작은 희망이었다. 수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던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1937년 5월, 갑작스럽게 실종되었다.
그는 “고도 1,000피트, 위치는 알 수 없고 태양선을 향해 비행 중. 연료가 부족하다”는 무전을 마지막으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47,000km 거리의 세계 일주 비행 계획을 수행하던 도중이었다. 마지막 교신 후 미국은 해안경비대와 함선을 동원, 대대적인 에어하트 수색작업을 벌였다. 그의 남편 조지 P. 퍼트남은 사비를 털어서까지 수색을 했고, 실종 당시 주변에 있던 일본 상선과 어선들도 수색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잔해조차 찾지 못한 채 수색은 마무리되고, 1993년에 공식 사망처리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2010년, 역사적 항공기 회수를 위한 국제단체 TIGHAR에서 에어하트의 유해 일부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했다. 그리고 2018년, 유해 검사 결과 해당 유골이 에어하트와 99퍼센트 일치한다는 결과가 밝혀졌다. 대개는 조난으로 사망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명확한 원인은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워낙 흔적도 없이 갑작스레 사라졌던 터라 ‘일본 처형설’, ‘일본 스파이설’ 등 다양한 도시전설들이 남아있다.
카모마에 유키 실종사건
일본 3대 미해결 어린이 실종사건
1991년 3월 15일, 일본 미에현에서 카모마에 유키라는 8살 소녀가 실종되었다. 이 사건은 일본 3대 미해결 어린이 실종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카모마에 유키는 1991년 3월 15일, 평소와 같은 일상처럼 보였지만, 오후 3시 30분부터 유키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오후 2시 30분까지만 해도 집에서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던 유키가 3시 30분쯤 작은 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사라져 있었던 것. 테이블에는 온기가 가시지 않은 코코아만 남아있었다. 가족들은 유키가 친구네 집에서 놀다 오는 일이 많았던 터라 그날도 으레 그럴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오후 8시가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자, 그때서야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유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몸값을 노린 납치범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경찰 수사를 진행했으나 협박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않고 끊어버리는 전화만 걸려왔다. 카모마에 유키 실종사건이 일본 3대 미해결 어린이 실종사건으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괴이한 편지였다. 유키가 실종된 지 3년이 지났을 때, 가족들 앞으로 괴상한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계집. 이다. 미유키가 불쌍해” 등 어구도 맞지 않고 저속한 단어를 쓴 장문의 글이었다. 처음엔 범인이 쓴 것으로 의심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사건의 실체와는 무관한 악질적인 장난이라고 판단했다.
카즈 2호 유령요트 사건
사람만이 지워진 요트
2007년 4월 20일 호주 동북쪽 해안에서 163km 떨어진 곳에서 표류하고 있던 요트를 발견했다. 그로부터 이틀 전, 인근을 지나던 한 헬리콥터가 조난당한 것처럼 보이는 요트를 발견해 신고했고, 20일에 오스트레일리아 해안 경비대가 출동했다. 조난당한 요트는 카즈 2호가 맞았으나,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원래 요트에 탑승하고 있던 사람은 3명으로 56세 데렉 배튼과 이웃 주민 69세 피터 턴스테드, 63세 제임스 턴스테드 형제였다. 그러나 발견 당시, 그들은 마치 흔적이 지워진 것처럼 사라져있었다.
발견 당시, 엔진은 가동 중이었으며 GPS 장비 역시 켜져 있는 상태였다. 이외에도 컴퓨터와 노트북, 무선 장비들 모두 켜져 있었으며, 마치 곧 식사를 하려고 했던 것처럼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구명조끼를 쓴 흔적도 없었다. 돛 한 쪽이 심하게 찢어져 있다는 걸 제외하곤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대대적인 수색 작업에 들어갔으나, 실종자들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한 채 수색은 종료되었다. 결국 수사는 정황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그 결과 어떠한 이유에서 한 사람이 물에 빠졌고, 그를 구하려던 두 사람도 결국 물에 빠져 익사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씨네플레이 객원 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