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돌아왔습니다. 2년의 공백을 가졌던 김수현이 <리얼>로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습니다. 오는 6월 28일 개봉하는 <리얼>은 26일 서울시 성동구 CGV 왕십리에서 국내 첫 언론시사회를 열었습니다. 긴 제작 기간, 화려한 영상, 그리고 김수현을 비롯해 대세 배우들로 채워진 출연진. 대중들의 관심도, 우려 섞인 걱정도 많았던 <리얼>은 과연 어떤 결과물로 다가왔을까요?
 

출연 배우가 인증한 김수현의, 김수현에 의한, 김수현을 위한 영화

김수현은 탄탄대로를 걸어온 스타입니다. 동시에 연기력도 보장받은 젊은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특별 출연한 <수상한 그녀>를 제외하면)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것부터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리얼>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김수현이 연기한) 장태영을 위한 원톱 영화이기 때문이죠.
 

김수현은 이번 작품에서 카지노를 소유한 조직의 보스 장태영과 그에게 찾아온 의문의 투자자로 1인 2역에 도전합니다. 왕(<해를 품은 달>), 도둑(<도둑들>), 남파 간첩(<은밀하게 위대하게>), 외계인(<별에게 온 그대>) 등 독특한 배역을 쌓아왔던 김수현, 1인 2역의 위태로움 속에서도 카지노 보스인 장태영과 투자자 장태영의 차이를 명확하게 짚어냅니다.  
 

투자자 장태영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만 두 장태영은 말투와 행동거지, 상대를 견제하는 눈빛에서부터 명확하게 차이가 납니다. 외줄 타기 하듯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김수현은 자신의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해 "김수현의, 김수현에 의한, 김수현을 위한 영화"라는 조우진의 발언을 사실로 만듭니다. 또, 거의 언급되진 않지만 김수현 역시 '파격 노출'을 강행하기도 했습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비주얼텔링'

<리얼>은 두 남자의 대결을 독특하게 풀어냅니다. 때로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유명 작품의 소재를 차용해 영화에 입체성을 더하려고 합니다. 영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려는 '비주얼텔링'은 전형적이지 않은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대중들에겐 익숙하진 않을 테지만, 대신 영상미가 여타 한국영화보다 우수해 '보는 맛'을 전합니다.
 

"청소년 관람불가"답게 <리얼>은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카지노 '시에스타'에서 벌어지는 유흥 장면들을 여과 없이 포착하고, 인물들의 성도착증적 증상들도 과감하게 담아냅니다. 그런 내용을 담은 영상들이 펼쳐지면서 <리얼>은 '사이버펑크'와 '사이키델릭'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리얼>이 상영되는 동안 그 제작비에 어디에 쓰였는지가 바로 드러날 정도입니다.


'형식'이란 미로에 갇힌 영화

문제는 스토리텔링이 난해한데다 상영시간까지 길어서 관객들을 지치게 한다는 점입니다. 세 장으로 나눠진 영화는 '탄생', '대결', '리얼'로 분류되는데 막상 장 구분이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무색해집니다. 불필요하게 형식미에 취해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초반부에 형성한 몽환적인 분위기는 중반부 두 장태영이 만나면서 궤도를 벗어나기도 합니다. 언급했듯 '비주얼텔링'을 택한 영화임에도 조원근(성동일 분)의 등장, 두 장태영의 만남, 그리고 시에스타를 둘러싼 아귀다툼 속에서 영화는 갑자기 설명이 많아집니다. 그 결과 <리얼>의 매력인 모호한 전개가 무너지는데요, 137분이란 긴 러닝타임에서 <리얼>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건 (좋게 봐도) 약 90분 정도이고 남은 47분은 어떻게든 이야기를 봉합하려는 몸부림처럼 보입니다.


위태로운 영화 속 배우들의 고군분투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리얼>을 그나마 유지하는 건 배우들의 연기입니다.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모았던 최진리 역시 송유화 역으로 <리얼>에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그의 파격 노출에 많은 관심이 집중돼있지만, 최진리는 송유화라는 여성이 가진 심리적 결합을 탁월하게 소화합니다. 등장인물 중 가장 이질감이 느껴질 법한 인물임에도 최진리는 영화의 톤에 맞는 연기로 인물들 사이에 녹아듭니다.
 

조원근을 연기한 성동일은 '코믹 연기의 일인자'라는 그의 별칭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최고의 악역 연기를 펼칩니다. 성동일은 능글맞지만 결코 가볍진 않은 연기로 김수현과 대립하는 매 순간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베테랑 연기자답게 서울말과 함경도 사투리를 오가는 말투도 서늘한 기운을 더합니다.


신경정신과 의사 최진기를 연기한 이성민은 영화 초반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장태영과의 상담에서 차분한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솔직한 반응으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론 도박에 중독된 듯한 모습에서 최진기란 인물의 깊이를 더합니다.

이경영과 조우진의 배역에 대해선 아쉬운 지점이 있습니다. 이경영은 투자자 장태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에도 극에서 거의 배제됐고, 사도진 역의 조우진은 캐릭터가 단순하고 기능적입니다. 두 배우의 연기가 출중하다는 걸 알기에 더욱 아쉬운 결과입니다.


비싼 돈을 주고 만든 컬트 영화

결론은 '영상미가 좋은 컬트 영화'입니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 영화가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은 대개 이미지에 의지합니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1인 2역이 주는 '혼란'과 미술관에 온 것 같은 불분명한 이미지의 '혼란'이 한데 얽히면서 관객을 계속 이야기 밖으로 밀어냅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내용이지만 해결되지 않은 대목들이 계속 잔상으로 남아 관객을 괴롭힙니다.
 

무엇보다 '액션 누아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액션 장면이 빈약합니다. 그럴싸한 '찰나'는 있어도 시퀀스 전체가 엉성해 오히려 실소를 자아냅니다. 타격감을 극대화하다 보니 영화 <리얼>인지 애니메이션 <원펀맨>(주인공이 너무 막강해 펀치 한방이면 모두가 쓰러지는 식의 만화 겸 애니메이션)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이런 액션 장면들을 들어내면 상영시간을 120분으로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김수현, 성동일, 이성민, 최진리라는 스타 배우들과 불친절한 비주얼텔링의 만남은 <리얼>을 흥미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괴상하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리얼>은 비주류적인 이야기를 일상 외의 범주에서 이야기합니다. 불편한 소재를 불친절하게 전하려 합니다. 블록버스터라기보다 컬트 영화라는 말이 적합합니다. 이사랑 감독은 <리얼>을 '마술쇼'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마술'에 속은 관객들이 과연 박수를 칠지, 아니면 속임수라며 분노할지 정답 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은 듯합니다.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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