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많은 배우에게 '블루칩'이란 단어가 붙곤 한다. 그 단어의 가치를 입증하는 배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연기는 기본이고 작품을 고르는 안목 또한 좋아야 하기 때문. 그런 점에서 최성은에겐 이제 '신예'라는 수식어 대신 블루칩을 사용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2018년 데뷔 이래 꾸준히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2022년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로 돌아온 최성은을 만나보자.
데뷔 5년차의 성과
최성은은 2018년 연극 <피와 씨앗>이란 작품으로 데뷔했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사내와 그에게 신장을 이식받아야 건강해질 수 있는 소녀, 이들의 가족들이 등장하는 <피와 씨앗>에서 최성은이 연기한 캐릭터는 신장 이식이 필요한 소녀 어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논하는 작품에서 그의 어텀은 극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현재까지는 최성은의 유일한 무대 작품이기도 하다.
이 <피와 씨앗>의 다음 작품, 그러니까 딱 두 번째 작품에서부터 최성은은 대중들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화 <시동>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마동석, 박정민, 정해인, 염정아 등이 출연했다. 주연 배우들이 쟁쟁했는데도, 새빨간머리의 소경주를 연기한 최성은 또한 그들 못지않게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복싱을 한 소경주를 연기하기 위해 복싱 테스트도 받고 촬영 전, 촬영 중 꾸준히 복싱을 연습하며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게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전해졌다. 주연으로 이름을 올렸기에 첫 주연 상업영화에서 3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춘사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도 수상했다.
이어 단편 영화와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SF 드라마 앤솔로지 <SF8>의 '우주인 조안' 에피소드, 그리고 2021년 최고의 드라마로 꼽히는 <괴물>에 출연했다. <괴물>에서 최성은이 맡은 역은 유재이. 만양정육점의 사장이자 이동식을 비롯해 만양파출소 사람들과 돈독한 유재이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실종에 받은 충격을 묵묵히 받아내며 살고 있다. 같은 해 10월 14일엔 독립영화 <십개월의 미래>로 (촬영한지 3년 만에) 첫 원톱 주연작을 선보였다.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된 미래 역을 맡은 그는 예상 못 한 임신으로 모든 게 걱정되는 20대의 얼굴을 현현하게 빛냈다. 배우들의 연기가 특히 빛났다는 <괴물>에선 슬그머니 녹아든 앙상블을, 이야기의 대상으로 그려진 <십개월의 미래>에선 꼿꼿하게 이야기를 이끄는 중심으로서의 힘을 보여주며 각각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신인연기상, 영화부문 여자신인연기상에 오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수상엔 실패했지만 2020년, 2021년, 2022년 모두 신인상 후보로 지목된 것부터 최성은의 배우 인생은 기대할 수밖에 없다.

-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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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최정열
출연 마동석, 박정민, 정해인, 염정아, 최성은
개봉 2019.12.18.

-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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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심나연
출연 신하균, 여진구, 최대훈, 최성은, 천호진, 최진호, 길해연, 허성태, 김신록, 남윤수, 손상규, 백석광, 이규회, 박지훈, 강민아, 이도현
방송 2021, JTBC

- 십개월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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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남궁선
출연 최성은, 서영주, 유이든, 백현진, 권아름
개봉 2021.10.14.
윤아이 그 자체라고 평가받은 <안나라수마나라>
이 출연작 목록을 지나 도착한 곳이 이번에 공개한 넷플릭스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다. 하일권 작가의 동명 웹툰은 삶에 지친 고등학생들과 버려진 유원지에 살고 있는 마술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목욕의 신」, 「방과 후 전쟁활동」 등 히트작이 많은 하일권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좋다는 평가를 받았던 원작처럼, 넷플릭스 드라마 또한 판타지와 뮤지컬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성은은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어린 동생까지 책임지는 소녀 가장 윤아이를 맡았다. 극중 성적도, 외모도, 성격도 어느 하나 못나지 않은 엄친딸이지만, 가정 환경이 받쳐주지 못해 스스로와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다. 언뜻 지나치게 우울한 묘사로만 빠질 수 있는 캐릭터지만, 최성은은 담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윤아이의 현실과 리을(지창욱)을 만나면서 변화하는 모습 등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안나라수마나라>가 쥐고 있는 키워드 중 '성장'을 온전히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를 균형감 있게 보여주면서 최성은이란 배우를 다시금 주목하게 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뮤지컬 드라마답게) 노래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화제가 됐다. 연극은 해봤어도 뮤지컬은 해본 적 없었기에 캐스팅이 확정되고 성악 레슨을 받았다고. 단순히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윤아이의 감정'을 담아야 해서 노래 연습이 필수라고 여겼단다. 그 덕분에 드라마가 공개된 후 최성은이 넘버를 부르는 부분은 금세 화제가 됐다. 최성은이 이번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노래를 자주 들었다고 하는데, 그중 우효와 아이유의 음악을 특히 자주 들었다고. 윤아이의 시점에서 <안나라수마나라>의 감성을 미리, 혹은 다시 느껴보고 싶다면 두 뮤지션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스타와는 거리가 먼 배우
최성은 데뷔 이후 꾸준히 주목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스타'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작품을 꾸준히 할 뿐, 그 외에 다른 활동이 없다. 젊은 신인들이 으레 하는 SNS조차 최근에야 개설했는데, 그조차도 소속사가 운영하는 듯하다. 그의 인터뷰를 돌이켜보면 "뭘 해야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마리끌레르)거나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편"(연합뉴스)이라고 말하곤 한다. <안나라수마나라> 관련 인터뷰에서도 과거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에 “너 자신을 조금 더 믿었으면 좋겠다”(뉴스원)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민하는 게 최성은이란 배우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팬들 입장에서야 배우가 여러 매체에 노출돼 자주 보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지금까지의 최성은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긴 조금 어려워보인다. 다만 그만큼 '좋은 배우'에 대한 고민이 더 많을 테니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연기를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면 좋을 듯싶다.
다음 캐릭터는 열혈검사
최성은의 2022년 행보는 아직 남아있다. 다음 작품은 영화 <젠틀맨>. 누명을 벗기 위해 검사 행세를 하는 흥신소 사장 지현수(주지훈)가 열혈 검사 김화진(최성은)과 함께 대형 로펌 변호사 권도훈(박성웅)을 잡는 범죄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김경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최성은이 연기할 김화진 검사는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고 서술돼있다. 그동안의 캐릭터가 열혈, 열정과는 거리가 다소 있었던 최성은에게서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겠다. 김경원 감독은 최성은을 "똑똑하고 차가우면서도 내면은 뜨거운"(씨네21) 배우라고 표현했으니, 최성은이 보여줄 김화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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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경원
출연 주지훈, 박성웅, 최성은
개봉 2022.00.00.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