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능력>

어떤 배우가 매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때, 일반적으로 '변신'이란 단어를 쓰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자신'인데 '나 자신'은 아닌 캐릭터라면, 그거야말로 진짜 변신이지 않을까 싶기도.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6월 29일 개봉한 <미친 능력>의 니콜라스 케이지 같은 경우를 말한다. <미친 능력>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는 슈퍼스타에서 퇴물 배우가 된 니콜라스 케이지로 출연한다. 물론 그가 CIA가 비밀 임무를 준다는 등 허구의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캐릭터 '니콜라스 케이지'의 설정은 현실의 니콜라스 케이지와 동일하다. 이처럼 배우가 자기 자신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미친 능력> 개봉을 기념해(?) 이런 영화들을 소개한다. 

미친 능력

감독 톰 고미칸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페드로 파스칼, 닐 패트릭 해리스, 티파니 해디쉬

개봉 20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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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와 쿠마>
닐 패트릭 해리스

닐 패트릭 해리스를 연기하는 닐 패트릭 해리스(오른쪽)
영화에선 틈만 나면 스트리퍼를 찾는 난봉꾼이다.

코미디 영화에서 배우가 자기 자신으로 출연하는 경우는 보통 카메오로 그치곤 한다. 배우가 자신으로 출연하면 그 자체가 웃음포인트가 되지만, 자칫하면 영화와 현실의 경계선을 무너뜨려 찝찝하게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해롤드와 쿠마>의 카메오 닐 패트릭 해리스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완벽하게 무너뜨려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하고 열렬히 활동 중인 자신이 사실은 게이인 척하는 난봉꾼이란 설정을 너무나도 찰떡같이 소화한 것. "랩댄스"를 연호하며 한껏 밝히는 모습은 영화가 느즈막히 개봉한 국내에서도 꽤 인기였다. 덕분에 1편에서 카메오였던 그는 관객들의 인기에 호응하듯 <해롤드와 쿠마> 2편과 3편에도 얼굴을 비출 수 있게 됐다. 

카메오로 시작했지만 3편에선 이렇게 단독 포스터까지 나왔다.
해롤드와 쿠마

감독 대니 레이너

출연 존 조, 칼 펜

개봉 200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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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인표>
차인표

스타의 이미지를 좀 더 관대하게 보는 할리우드와 정서가 달라서일까, 이런 자기 패러디적 영화는 국내에 많지 않다. <차인표>는 이런 방식을 정면으로 다룬 몇 안되는 한국영화로, 제목처럼 차인표가 차인표로 출연한다. 드라마에선 슈퍼스타, 사생활에선 평생까임권을 가진 모범인 차인표인데, 알다시피 영화계에선 좋은 성과를 거둔 적이 거의 없다. 이 <차인표>는 그런 차인표의 처지를 자조적으로, 그러면서 진심으로 다뤘다. 도전적인 소재의 영화라서 기대를 많이 받은 것에 비해 결과물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차인표의 모습은 정말 잘 담고 있다. 

차인표

감독 김동규

출연 차인표, 조달환, 송재룡

개봉 202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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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이즈 디 엔드>
채닝 테이텀, 엠마 왓슨

채닝 테이텀이 왜 이런 꼴인지
엠마 왓슨이 왜 이런 모습인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영화에서 만나라.

이런 코드의 영화 끝판왕은 <디스 이즈 디 엔드>일 것이다. 이 영화는 아예 모든 출연진이 자기 자신으로 출연한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파티를 벌이는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6명의 배우들이 고립된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핵심이 되는 여섯 배우는 조나 힐, 제임스 프랭코, 세스 로건, 제이 바루첼, 대니 맥브라이드, 크레이그 로빈슨. 하지만 수많은 스타들이 자신을 연기하기 위해 출연을 수락해 영화를 '끝판왕'으로 만들었다.

가장 충격적인 건 채닝 테이텀. 비주얼부터 설정까지 '이게 서양식 코미디 매운맛이구나' 감탄 아닌 감탄을 하게 만든다. 엠마 왓슨의 출연 또한 인상적인데, 사실 엠마 왓슨 본인보다 그를 대하는 주연 배우들의 대사들이 혼돈 그 자체다. 아마 유교드래곤을 품은 엠마 왓슨 팬이라면 성질이 날지도…. 두 배우 외에도 리한나, 마이클 세라, 폴 러드, 케빈 하트 등 유명한 스타들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본인 출연' 장르의 끝판왕이면서 '서양식 코미디'의 끝판왕이기도 할 수 있겠다. 

디스 이즈 디 엔드

감독 에반 골드버그, 세스 로건

출연 엠마 왓슨, 조나 힐, 제임스 프랭코, 제이슨 세걸, 세스 로건, 리아나, 제이 바루첼, 대니 맥브라이드, 크레이그 로빈슨, 아지즈 안사리

개봉 201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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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황정민

<인질>의 황정민을 연기한 황정민

2021년 여름 시장을 겨냥한 영화 중 <인질>을 기억하는지. <인질>은 황정민이 '괴한에게 납치된 배우 황정민'으로 출연했다. 시놉만 봐도 꽤 신선한데, 이 영화는 중국 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세이빙 미스터 우>도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유덕화가 배우 오약보를 연기한다는 것. 

오약보가 누구냐고? <세이빙 미스터 우>, <인질>의 이야기처럼 괴한들에게 실제로 납치됐던 중국 배우다. 그러니까 <인질>은 배우가 배우 자신을 연기한 거고, 원작 <세이빙 미스터 우>는 배우가 다른 배우를 연기한 셈. 비유하자면 최민식을 송강호가 연기했다면 적당할까…? 이 글 주제에 부합하는 건 <인질>이지만 <세이빙 미스터 우> 같은 방식도 나름대로 재밌는 발상이다.

본인이 아닌 동시대 배우의 일화를 연기한 <세이빙 미스터 우>의 유덕화는 본
인질

감독 필감성

출연 황정민, 김재범, 이유미, 류경수, 정재원, 이규원, 이호정

개봉 2021.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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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앤 질>
알 파치노

<잭 앤 질>의 알 파치노

명배우라고 무조건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건 아니다. 때론 흥행에 실패해, 때론 작품이 크게 혹평을 받아  쓴맛을 보기도 한다. 흔하진 않아도 적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만일 배우 본인으로 출연해 위와 같은 실패를 마주한다면 또 기분이 다를 것이다. <잭 앤 질>에 출연한 알 파치노가 그렇지 않았을까. 

<잭 앤 질>은 아담 샌들러가 쌍둥이 남매 잭과 질, 1인 2역을 맡은 코미디 영화다. 알 파치노는 질에게 호감을 느끼고 빠져드는 '배우 알 파치노'로 출연했다. 극중 아카데미상이 부서지고 질인 척 하는 잭과 데이트 하는 등 여러 수모를 당하지만, 그래도 알 파치노는 알 파치노라고 캐릭터에 차고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가 정말 안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망작계의 아카데미' 골든라즈베리 전부문을 수상했고, 알 파치노 또한 평생 연이 없을 줄 알았던 골든라즈베리 남우조연상을 얻었다. 흥행은 본전치기 정도했다지만 알 파치노가 가지고 있던 '명배우' 타이틀은 이때 살짝 흠이 생겼던 것 같다.

그래도 알 파치노의 춤과 랩을 봐서 좋다는 반응도 있다.
잭 앤 질

감독 데니스 듀간

출연 아담 샌들러, 알 파치노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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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와 사일런트 밥>
벤 애플렉

<제이와 사일런트 밥>의 '굿 윌 헌팅' 듀오 벤 애플렉(왼쪽), 맷 데이먼
<굿 윌 헌팅>

배우 본인 출연을 넘어 감독님까지 대동하고 '속편'을 만드는 대담한 패러디. <제이와 사일런트 밥>이 선보였던 패러디다. 내노라하는 영화광이 모인 할리우드에서도 케빈 스미스는 글자 그대로 '광'적인 영화 마니아다. 그런 그가 만든 작품에 할리우드에 대한 패러디는 빼놓을 수 없다. 

그중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남은 건 <제이와 사일런트 밥>에 등장하는 <굿 윌 헌팅 2> 촬영현장이다. 이 장면에는 <제이와 사일런트 밥>의 조연으로 출연하는 벤 애플렉뿐만 아니라 맷 데이먼, (<굿 윌 헌팅>을 연출한) 구스 반 산트 감독까지 나온다. 그들이 만드는 <굿 윌 헌팅 2> 또한 살짝 나오는데 당연히 제정신이 아닌 속편으로 묘사된다(애초에 구스 반 산트 감독이 돈 때문에 만드는 거라고 선언했고). 장면 자체가 웃기기도 하지만, 속편으로 갈수록 자극적으로만 변하는 할리우드의 세태를 비꼬는 듯한 케빈 스미스의 시선이 담겨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굿 윌 헌팅 2>
제이 앤 사일런트 밥

감독 케빈 스미스

출연 제이슨 미웨스, 케빈 스미스

개봉 200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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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