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수많은 영화인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시드니 포이티어, 가스파르 울리엘, 모니카 비티, 아이반 라이트먼, 윌리엄 허트 등 지난 상반기 세상을 떠난 영화인들의 생전 활약상을 정리했다.


시드니 포이티어
Sidney Poitier
1927.02.20 ~ 2022.01.06

<들백합>

흑인 최초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자. 시드니 포이티어를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영국령 바하마에서 농사를 짓던 부모가 여행차에 방문한 미국 마이애미에서 태어난 포이티어는, 바하마에서 자라 15살에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에서 흑인 전문 극단 '아메리칸 니그로 씨어터'에 지원했지만 떨어졌고 군복무 후 다시 지원해 결국 합격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폭력교실>(1955)을 통해 얼굴을 알린 그는 토니 커티스와 호흡을 맞춘 <흑과 백>(1958)으로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그로부터 5년 뒤 퇴역 군인과 동독을 탈출한 다섯 수녀의 연대를 그린 <들백합>(1963)으로 베를린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두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1970년대 들어 배우로서 입지가 줄어들었지만 1972년 <벅 앤 프리처>로 감독 데뷔해 여러 작품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를 도맡았다. 마지막 출연작은 브루스 윌리스, 리차드 기어 주연의 <자칼>(1997). 수년간 치매와 전립선암을 앓다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스파르 울리엘
Gaspard Ulliel
1984.11.25 ~ 2022.01.19

<생 로랑>

프랑스 배우 가스파르 울리엘은 1997년 TV드라마에 처음 얼굴을 비추고, 2001년 시대극 <늑대의 후예들>로 영화계에 입성했다. <아멜리에> 오드리 토투와 장피에르 주네 감독의 <인게이지먼트>(2004), 앤소니 홉킨스에 이어 한니발 렉터를 연기한 첫 영어 영화 <한니발 라이징>(2007)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한 그는 연극 무대에서 3년간 경험을 쌓은 뒤 <생 로랑>(2014)에서 불세출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을 연기해 극찬 받았다. 마리옹 꼬띠아르, 뱅상 카셀, 레아 세두 등 프랑스 명배우들과 함께 한 <단지 세상의 끝>(2016)으로 프랑스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세자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TV시리즈 <문나이트>의 빌런 미드나잇 맨 역을 맡아 저변을 넓힐 전망이었으나, 작품이 공개되기 두 달 전 아들과 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숨을 거두었다.


모니카 비티
Monica Vitti
1931.11.03 ~ 2022.02.02

"Queen of Italian Cinema"라 불리는 모니카 비티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들과는 사뭇 달랐다. 도발적인 육체와 강인한 태도가 아닌 가녀리고 나른한 이미지로 데뷔 초기엔 주목 받지 못했지만, 26세에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외침>(1957)에 목소리 더빙으로 참여해, 바로 다음 작품 <정사>(1960)에 히로인에 캐스팅 되면서 안토니오니와 함께 <밤>(1961), <일식>(1962), <붉은 사막>(1964) 등 걸작을 만들었다. 안토니오니가 <욕망>(1966)의 촬영을 위해 영국으로 떠났을 때부터 그들의 협업도 멈췄다. (둘은 1980년 작 <오베르왈드의 비밀>에서 다시 한번 작업한다) 안토니오니 외에도 다른 감독들과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면서, 1968년부터 1979년까지 이탈리아의 오스카 다비드 디 도나텔로 여우주연상을 다섯 번이나 수상했다. 80년대 들어 오랜 연인이었던 로베르토 루소가 연출한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감독/각본/주연까지 도맡은 <시크릿 스캔들>(1989)을 내놓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고, 이후 비티의 필모그래피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멈춰 있었다.


아이반 라이트먼
Ivan Reitman
1946.10.27 ~ 2022.02.12

체코슬로바키아계 캐나다 감독 아이반 라이트먼은 캐나다 TV/연극 무대를 거쳐 영화 작업을 시작해, 빌 머레이 주연/해롤드 레이미스 각본의 <미트볼>(1979)을 캐내다는 물론 미국까지 성공시켜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괴짜들의 병영 일지>(1981)에 이어 머레이와 레이미스와 의기투합한 <고스트버스터즈>(1984)가 그해 최고 흥행작에 등극하게 되면서 라이트먼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코미디 감독으로 발돋움 했다. 속편 <고스트버스터즈 2>(1989)는 물론 머레이/레이미스가 아닌 다른 배우들과 작업한 <리갈 이글>(1986), <트윈스>(1988), <유치원에 간 사나이>(1990), <데이브>(1993) 등도 연달아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 9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이어갔다. 제작자로서 성과도 뚜렷했다. 자신이 연출한 작품은 물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초기작, 캐나다 성인 애니메이션 <헤비 메탈>, 마이클 조던과 루니툰의 프로젝트 <스페이스 잼>, ㅇ아들 제이슨 라이트먼의 <인 디 에어> 등에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윌리엄 허트
William Hurt
1950.03.20 ~ 2022.03.13

<거미 여인의 키스>

줄리어트 스쿨을 졸업해 연극 무대에서 활동한 윌리엄 허트는 1980년 바디호러 무비 <상태 개조>로 영화배우로 데뷔 했다. 한국 관객들에겐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 <레이더스>의 각본을 쓴 로렌스 캐스던의 감독 데뷔작 <보디 히트>(1981)의 주인공 네드로 친숙할 것이다. 마누엘 푸익의 베스트셀러를 각색한 영화 <거미여인의 키스>(1985)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이어 오스카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하고, 다음 작품 <작은 신의 아이들>(1986)과 <브로드캐스트 뉴스>(1987)로 3년 연속 연달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중년기에 접어든 90년대 이후엔 <다크 시티>(1998), <A.I>(2001), <폭력의 역사>(2005)에 조연으로 참여해 여전히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고, <인크레더블 헐크>(2008)에서 썬더볼트 로스 역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합류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등에 출연했다.


반젤리스
Vangelis 
1943.03.29 ~ 2022.05.17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음악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리스 아티스트 반젤리스는 20살 되던 해 처음 영화음악을 내놓아 스코어 작업뿐만 아니라 포밍스, 아프로디테스 차일드 등 록 밴드를 거치면서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쳤다. 1970년대 들어 파리에 정착한 후엔 프로그레시브 록에서 신디사이저가 도드라지는 사운드의 솔로 앨범과 사운드트랙을 발표했고, 영국 스포츠 영화 <불의 전차>(1981)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오스카 음악상(비행 공포증이 있어 시상식엔 참석하지 못했다)까지 차지했다. <불의 전차>의 성공으로 영화음악 의뢰가 쏟아지는 가운데 반젤리스가 선택한 영화는 <의문의 실종>(1982), <블레이드 러너>(1982), <남극 이야기>(1983), <1492 콜럼버스>(1992), <알렉산더>(2004) 등이었다. 영화음악가들은 물론 신디사이저를 활용하는 수많은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들이 반젤리스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다.


레이 리오타
Ray Liotta 
1954.12.18 ~ 2022.05.26

<좋은 친구들>

레이 리오타는 대개 할리우드 스타들에 비해 늦게 빛을 본 배우다. 32세가 되던 해에 발표된 <썸썽 와일드>의 악역 레이를 연기해 주목 받고,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꿈의 구장>(1989)를 거쳐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와 함께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 <좋은 친구들>(1990)을 이끌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캅 랜드>(1997), <한니발>(2001), <아이덴티티>(2003) 등 주로 액션/스릴러 장르에서 주조연을 맡아 최근까지 부지런히 필모그래피를 늘렸다. 요즘 관객들에게 친숙한 캐릭터는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에서 찰리(애덤 드라이버) 편의 변호사 제이 마로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새 영화 <댄저러스 워터스>를 촬영하던 중, 잠을 자다가 숨을 거두었다.


제임스 칸
James Caan 
1940.03.26 ~ 2022.07.12

<대부>

제임스 칸의 영화 경력은 하워드 혹스, 샘 페킨파, 로버트 알트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 미국을 대표하는 명감독들의 궤적을 따라갔다. 초기작 <레인 피플>(1969)에서 다부진 육체에 순수와 폭력이 공존하는 매력을 이끌어낸 코폴라는, 3년 후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 <대부>(1972) 속 비토 콜레오네(말론 브란도)의 장남이자 마이클(알 파치노)의 형 소니 역에 캐스팅해 칸에게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안겼다. TV영화 <브라이언의 노래>(1971)로는 에미 어워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대부>의 성공 이후 유혈이 낭자하는 갱스터 영화 캐스팅이 줄을 이었지만 범죄물(<갬블러>, <도둑>), 뮤지컬(<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갈채>), 전쟁물(<머나먼 다리>, <병사의 낙원>), 스릴러(<미저리>, <도그빌>) 등 수많은 명감독들이 연출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