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K-재난영화
★★★☆
홍보를 통해 접할 땐 일면 비행기 테러를 소재로 한 액션 스릴러를 연상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 안엔 참사를 겪은 대한민국의 트라우마가 있고,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적 대상과 싸워야 하는 최근의 상황이 있으며, 이외에도 우리 사회가 지닌 여러 문제점들이 응집되어 있다. <부산행>의 비행기 버전처럼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크게 보면 재난영화라는 장르를 빌어 한국 사회를 반영하며, 이병헌 송강호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맡은 캐릭터들을 통해 신념, 희생, 용기, 헌신 등 공동체를 위한 숭고한 가치관들을 드러낸다. 감동적 모멘트들과 신파적 장면들 사이의 밸런스가 조금 아쉽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장르영화의 문법으로 재난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
★★★
항공 테러 자체의 상황은 장르영화의 컨벤션 안에서 적절하고도 신선하게 제시된다. 충분히 흥미로운 묘사다. 애초에 범인의 정체와 의도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무차별적인 공포에 가까운 오늘날 재난의 속성과, 그 앞에서 ‘인간이기에' 택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을 말하는 것으로 차별점을 지니고자 한다. 잘 쌓아올린 이 같은 장점들은 어느 순간 영화가 한국 사회의 뼈아픈 실제 재난을 강하게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흐르면서 기우뚱한다. 이는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재난을 바라보는 창작자의 개인적 소회와 장르영화 감독의 역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은 방식이지만, 다소 노골적인 감정의 호소로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여러 차례 분절 제시되는 듯한 결말 구조의 피로 역시 적지 않은 편.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끊임없이 현실을 소환하는 재난
★★★
<비상선언>은 테러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재난을 다루고 있지만 끊임없이 현실을 소환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바이러스에 전염되어가는 사람들과 바이러스로 인해 패닉에 빠진 사회는 현재진행형인 코로나 상황과 다르지 않고,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 갇힌 승객들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초유의 재난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테러의 실마리를 찾은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비행기의 기장과 승무원은 목숨을 걸고 승객을 지킨다. 그리고 국토부장관은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책임을 다한다. 영화 초반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리던 긴장감이 중반을 지나 동어반복을 계속하며 빠르게 휘발되지만 영화 속의 바이러스와 대형 재난에서 멀지 않은 현실은 더 공포스럽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흥미로운 이륙과 지난한 착륙
★★★
<비상선언>에는 강력한 장점들이 있다. 재난 공식을 과감하게 비틀어 나가는 추진력, 스펙터클한 360도 회전 시퀀스로 대변되는 기술력 등이 그렇다. 동시에 이 영화에는 결정적인 단점들이 있다. 혐오와 차별과 그 너머의 애도를 조성하는 과정에서의 비약이 심하고, 논쟁적인 질문들이 숙성을 거치지 않고 쉽게 발화되면서 공감이 끼어들 틈을 막아버린다. 장점이 전반과 중반에 배치됐다면, 단점은 후반부에 몰려 있는데 아무래도 영화 인상/잔상에 조금 더 관여하는 건 엔딩이라는 점에서 평가 면에서 불리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스릴 넘치는 이륙, 아쉬운 항로 변경
★★★
전반부는 재난 영화의 모범을 제시하듯 테러의 공포와 인물 관계, 지옥도로 치닫는 상황을 차분하게 진행해 나간다. 지상에서 테러범을 밝히는 과정은 수사물의 스릴까지 더한다.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와 감정을 격화하지 않는 영화의 침착한 태도가 최적의 비행고도를 만든다. 장르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던 영화는 착륙을 준비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메시지도 강조해야 하고, 볼거리도 키워야 하니 무리한 상황 연출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피로도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결정적으로 후반부에 과도한 신파로 항로를 변경하면서 시스템을 비판하는 주제도, 배우들의 개성도, 항공 재난 영화의 야심도 흐려져 범작에 머물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