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가 얼마 전 79번째 행사를 마쳤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줄리앤 무어를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선택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로라 포이트라스

황금사자상
로라 포이트라스
<올 더 뷰티 앤 더 블러드셰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의 영예는 다큐멘터리 <올 더 뷰티 앤 더 블러드셰드>에게 돌아갔다.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건 2013년 잔프랑코 로시 감독의 <성스러운 도로> 이후 9년 만이다. <올 더 뷰티 앤 더 블러드셰드>는 미국 안보국의 기밀자료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기록한 <시티즌포>를 연출한 로라 포이트라스의 신작으로, 이번엔 저명한 사진가 낸 골딘을 따라간다. 다만 LGBT 문화와 HIV/AIDS 위기를 조명했던 골딘의 작품 세계보다는, 미술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새클러 가문이 운영하는 제약회사에서 중독성 강한 진통제를 판매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퍼트리고 있는 액티비스트로서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골딘은 그 진통제를 복용하고 옥시콘틴 중독을 앓고 이와 같은 행보를 벌이고 있다고. <기생충>의 미국 배급사 '네온'이 <올 더 뷰티 앤 더 블러드셰드>의 미국 배급권을 가져간 데 이어, 최근 'HBO'가 스트리밍 서비스 판권을 구입했다.


심사위원대상
앨리스 디옵
<생토메르>
Saint Omer

데뷔 이래 15년 넘게 프랑스 이주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해온 앨리스 디옵 감독은 첫 번째 극영화 <생토메르>로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다. 파리에서 여성을 주제로 강의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 라마는 딸이 휩쓸려가도록 해변에 방치한 여자 로항스의 재판을 보고자 프랑스 북부 도시 생토메르에 온다. 임신 4개월인 라마는 자신처럼 혼혈이자 세네갈 이민자인 로항스에게 강한 유대를 느낀다. 이 사건을 두고 그리스 메데이아 신화를 경유해 현대적으로 각색한 글을 쓰려고 계획했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고립된 로항스의 삶을 깨닫게 된다. <생토메르>의 서사는 상당 부분 앨리스 디옵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첫 아이를 가졌던 2016년 디옵은 로항스처럼 딸을 살해한 여자의 재판에 참석하게 됐고, 참석자 대부분이 여성인 걸 깨닫고 이 사건에 몰두하게 됐다.


감독상
루카 구아다니노
<본즈 앤 올>
Bones & All

베니스 영화제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연은 꽤 깊다. 데뷔작 <프로타고니스츠>(1999)부터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서스페리아> 등 수많은 작품이 베니스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다만 지금까지 굵직한 상을 받지 못했는데 <서스페리아>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새 영화 <본즈 앤 올>이 올해 감독상을 받았다. <본즈 앤 올>은 구아다니노와 티모시 샬라메가 다시 작업한 것과 더불어 식인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자기를 욕망하는 이들을 먹는 16살 소녀 매런(테일러 러셀)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에게도 버림 받고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나고, 그 여정 중에 자기처럼 식인을 하는 소년 리(티모시 샬라메)를 만난다. 도널드 레이건 시대, 사회 변두리에 방황했던 청춘들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작품이라고 한다. 


여우주연상
케이트 블란쳇
<타르>
Tár

케이트 블란쳇이 퀴어 여성 지휘자를 연기한 영화 <타르>

2007년 밥 딜런의 전기영화 <아임 낫 데어>로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케이트 블란쳇은 또 한번 음악가를 연기한 영화 <타르>로 15년 만에 두 번째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타르>는 올해 베니스 경쟁부문 후보 가운데 가장 높은 평점을 자랑한 작품이었다. 토드 필드 감독이 <리틀 칠드런>(2006) 이후 16년 만에 내놓는 신작 <타르>는 독일 오케스트라의 첫 여성 지휘자에서 당대 최고의 지휘자/작곡가로 발돋움한 가상의 인물 리디아 타르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은 처음부터 케이트 블란쳇을 떠올리며 리디아 타르의 캐릭터를 구축했고, 만일 블란쳇이 캐스팅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영화는 빛을 보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그만큼 영화에서 블란쳇의 비중은 절대적이고, 작게나마 공개된 이미지나 영상만 봐도 블란쳇이 대단한 연기를 선보였음을 직감할 수 있다. <조커>(2019)로 오스카를 비롯한 수많은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휩쓴 힐더 구아나도티르가 <조커> 이후 처음 작업한 영화다.


남우주연상
콜린 패럴
<이니셰린의 밴시>
The Banshees of Inisherin

외모만큼이나 빼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제외하면 유독 저명한 시상식에선 상복이 드물었던 콜린 패럴은 신작 <이니셰린의 밴시>로 베니스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킬러들의 도시>(2008), <세븐 싸이코패스>(2012) 등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꾸준히 패럴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마틴 맥도나 감독의 신작 <이니셰린의 밴시>는 아일랜드 내전이 한창이던 1923년 배경으로, 평생을 친구로 살아온 콤과 파릭 두 남자의 우정이 끝나버린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콤은 하루아침에 파릭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파릭은 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콤은 더 극렬히 혐오를 드러낸다. 이 두 캐릭터를 <킬러들의 도시>의 주역이었던 콜린 패럴과 브렌든 글리슨이 연기했는데, 그 중 친구의 닫힌 마음에 당황하며 그 마음을 다시 열기 위해 애쓰는 파릭 역을 패럴이 맡았다.


각본상
마틴 맥도나
<이니셰린의 밴시>
The Banshees of Inisherin

각본상 역시 <이니셰린의 밴시>가 수상했다. 극작가로 명성을 쌓고 첫 영화부터 줄곧 직접 시나리오를 써온 마틴 맥도나 감독은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샘 록웰의 명연이 돋보였던 <쓰리 빌보드>(2017)에 이어 <이니셰린의 밴시>로 다시 한번 베니스 각본상을 받았다. 아일랜드 내전이 진행되고 있던 시대 배경과 아일랜드 서쪽 끝에 자리한 섬에서 촬영한 공간 배경 모두 아일랜드의 실제 역사를 떠올리는 노골적인 지표인데, 맥도나의 탄탄한 시나리오가 단번에 갈라져 버린 두 남자의 우정이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은유 했을지 기대되는 바. 10월 21일 북미 개봉 이후, 내년 중(아무래도 아카데미 시상식 즈음?) 한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상
테일러 러셀
<본즈 앤 올>
Bones & All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배우 이름을 가져온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상은 그해 베니스 초청작 가운데 월등한 존재감을 보여준 신인 배우들에게 수여된다. 2002년 <오아시스>의 문소리를 비롯해 제니퍼 로렌스, 밀라 쿠니스, 쇼메타니 쇼타, 타이 셰리던, 파울라 비어 등이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에 이어 HBO 드라마 <위 아 후 위 아>(2020)를 통해 사랑의 미열에 반응하는 청춘의 표상을 담아온 루카 구아다니노는 '이스케이프 룸' 시리즈의 테일러 러셀을 캐스팅 해 소수자 혐오가 만연했던 레이건 시대를 통과했던 소녀를 구현했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