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2022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올 한해 극장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관객이 급증했다가 다시 하락하면서 예상외의 고전을 하고 있다. 그래도 엔데믹 시대에 많은 영화사들이 신작을 하나둘씩 공개했고, 그중에서 좋은 작품과 흥미로운 작품들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연말이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법. 올해 개봉작 중 기자의 마음에 들었던 영화들, 꼭 한 번쯤 봐주십사 권유하고 싶은 리스트를 뽑았다. 아래 영화들은 모두 가나다순으로 정렬했다.
놉
감독 조던 필|출연 다니엘 칼루야, 케케 파머, 스티븐 연|8월 17일 개봉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인 걸까. 올해 극장가에선 '영화 사랑'을 각자의 형태로 승화한 영화가 많았다. 조던 필 감독의 <놉>이 대표적이다. <놉>은 한 말 목장 상공에 나타난 미지의 비행체와 관련된 사건을 그린다. 스토리만 봐서는 감이 안 잡히는데, 예고편 도입부부터 '말을 탄 기수' 활동사진을 언급하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을 암시했고, 실제로 영화 내내 피사체/목격/카메라 등등 바라보는 것에 대한 여러 메타포를 제시한다. 공포 영화라기엔 호흡이 길고 정적인 분위기가 강해 호불호가 갈리지만, 공포가 아닌 미스터리 카테고리로 보면 연신 흥미로운 요소들이 나온다. 제2의 <겟아웃>을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수 있지만, 조던 필 감독이 그리고자 하는 영화관만큼은 이번 영화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할리우드에서 이처럼 상업적 장르와 작가적 태도를 동시에 지키는 조던 필을 어떻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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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던 필
출연 다니엘 칼루야, 케케 파머, 스티븐 연, 마이클 윈콧, 브랜든 페레아, 바비 페레이라
개봉 2022.08.17.
성적표의 김민영
감독 이재은, 임지선|출연 김주아, 윤아정|9월 8일 개봉
고백하자면, 사실 관심이 별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동진 평론가의 "딸꾹질 같은 감각과 센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평단의 호평이 이어지자 궁금증이 생겼다. 그 표현이 뭘 뜻하는 걸까 이해하고 싶어서 극장을 향했고, 지금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집까지 사고 주변 사람들에게 꼭 보라고 추천하는 팬이 됐다. '삼행시 동아리' 정희(김주아), 민영(윤아영), 수산나(손다현)는 수능이 끝나고 각자 생활을 이어간다. 정희는 재수를, 수산나는 유학을, 민영은 다른 지역 대학을. 삼행시 동아리를 이어가고 싶은 정희와 달리 둘은 너무 바쁘다. 그러다 정희는 민영의 초대를 받고 민영의 자취방으로 향한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스토리가 영화의 전부가 아님을 증명한다. 평범한 순간도 독특한 리듬과 컷 구성으로 특별하게 만들고, 뻔한 구석조차 순간순간 번뜩이는 센스로 재치 있게 승화시킨다. 거기다 지나온, 지나갈 청춘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토닥이는 결말까지. 이재은, 임지선 두 감독이 보여줄 영화가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앞으로도 F이길 바라본다.

- 성적표의 김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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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재은, 임지선
출연 김주아, 윤아정
개봉 2022.09.08.
스펜서
감독 파블로 라라인|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3월 16일 개봉
2022년, 전 세계적인 사건사고가 정말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였다. 자그마치 70년을 재위한 탓에 꼭 영생할 것만 같았던 여왕의 서거는 찰스 3세의 직위로 이어졌다. 찰스 3세는 왕족임에도 자국민들조차 비호감으로 보는 인물인데, 아내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를 두고 불륜을 저지르는 등 그를 왕실의 외톨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다이애나 스펜서의 외로움과 고독을 세밀하게 묘사한 영화가 <스펜서>다. 다이애나를 다룬 여러 작품이 있긴 하지만 특정 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환영과 당시 그의 심리를 이토록 처연하게 그린 것이 <스펜서>의 특징. '황실'이란 꽉 막힌 시스템 아래 다이애나 스펜서가 꿈꿨을 자유의 갈망을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과 조니 그린우드의 아름답되 위태로운 선율, 그리고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가 돋보인다.

- 스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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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블로 라라인
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개봉 2022.03.16.
썸머 필름을 타고!
감독 마츠모토 소우시|출연 이토 마리카, 카네코 다이치|7월 20일 개봉
'영화 사랑' 영화 2. <썸머 필름을 타고!>는 시대극을 사랑하는 고등학생 맨발(이토 라미카)이 친구들과 함께 사무라이 영화를 찍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이 뻔한 스토리에 딱 한 인물을 통해 참신함을 더한다. 맨발이 주인공 역으로 찜한 린타로(카네코 다이치)가 미래에서 온 소년이라는 것. 영화가 사라진 미래에 린타로는 영화를 보고자 이 시대에 왔고, 하필 그 상황에서 맨발의 눈에 들어 얼떨결에 단편 영화 배우가 된 것. <썸머 필름을 타고!>가 아름다운 건 청춘 영화의 열정을 영화라는 소재에 빗대 '지금'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완성이 아니라 그동안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려는 클라이막스까지, 어설프게라도 무언가에 깊게 빠져본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비단 이런 진지한 시각이 아니더라도 이토 마리카, 카네코 다이치, 이노리 키라라, 카와이 유미, 코다 마히루 등 천진난만 풋풋함이 빛나는 배우들의 케미스트리만 봐도 재밌다.

- 썸머 필름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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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츠모토 소우시
출연 이토 마리카, 카네코 다이치, 이노리 키라라, 카와이 유미
개봉 2022.07.20.
올빼미
감독 안태진|출연 류준열, 유해진|11월 23일 개봉
상영 중인 영화를 뽑는 건 반칙이려나. 하지만 <올빼미>만큼 야심만만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한 한국 상업영화는 적어도 올해 찾아보기 힘들다. 인조(유해진) 시대, 주맹증을 앓아 밤에만 볼 수 있는 맹인 침술사 경수(류준열)가 궁중 침술가가 된다. 그런데 그가 하필 소현세자(김성철) 암살을 목격한다. <올빼미>가 야심만만한 건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 지점이 (상업영화 기준) 굉장히 늦지만, 그럼에도 그 전사를 차곡차곡 쌓은 덕분에 영화의 사건 이후 분위기 반전이 결코 이질적이지 않다. 또 '주맹증'이란 낯선 소재를 경수의 시점에서의 시각으로 담아내 직접 설명하지 않고도 관객에게 체감케 한다. 여기에 목격한 사람이 맹인이란 점을 활용해 '암살자를 아는 맹인'과 '목격자를 찾아야 하는 암살자' 간의 탐색전과 추격전이 스릴러 영화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단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지만(특히 클라이맥스와 결말이 무척 아쉽다) 인물의 특징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연출과 각본은 이번에 처음 메가폰을 잡은 안태진이란 이름을 앞으로도 기대하게 만든다. 아, 물론 각자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들의 열연과 시너지도 놓칠 수 없다.

-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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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안태진
출연 류준열, 유해진
개봉 2022.11.23.
우연과 상상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출연 후루카와 코토네, 현리, 나카지마 아유무|5월 4일 개봉
올해의 베스트 영화, 라는 기준이라면 아마도 <드라이브 마이 카>를 뽑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우연과 상상>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두 작품은 각각 2021년 12월, 2022년 5월에 개봉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아내의 죽음을 극복하는 연출가의 이야기에 희곡 '바냐 아저씨'를 텍스트로 활용해 다소 무거운 분위기라면, <우연과 상상>은 정말 우연히 일어난 일 세 가지를 옴니버스로 구성해 좀 더 쉽게 볼 수 있다. 우연 때문에 비극이 되기도, 희극이 되기도 하는 각각의 이야기는 류스케 감독의 날카로운 각본 센스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영화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약속, 즉 '필연'으로 만드는 영화에서 '우연'을 만나면서, 영화적 재미를 넘어 우리 삶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순간들이 이어져 기묘한 경험을 안겨준다. 때로는 우연히 일어난 것들이 삶과 예술을 빛내는데, 류스케 감독은 그 우연의 특별함을 찬양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 우연과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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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출연 시부카와 키요히코, 모리 카츠키, 우라베 후사코, 카와이 아오바, 후루카와 코토네, 현리, 나카지마 아유무, 카이 쇼우마
개봉 2022.05.04.
탑건: 매버릭
감독 조셉 코신스키|출연 톰 크루즈, 마일즈 텔러, 제니퍼 코넬리|6월 22일 개봉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탑건: 매버릭>은 올해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은 작품이다. 2022년 개봉 외화 중 최다 관객 동원(<아바타: 물의 길>이 뒤집을 수 있을까), 36년 만의 정식 후속작,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극장과 아날로그의 수요를 입증한 영화. 1986년 영화 <탑건>의 속편 <탑건: 매버릭>은 원년 멤버이자 제작 겸 주연 톰 크루즈의 평소 영화 철학을 고스란히 담았다. 가급적 실제 액션을 담을 것. 일명 '블루 스크린'으로 통용되는 크로마키 촬영이나 <만달로리안>을 시작으로 보급화되고 있는 LED 월 같은 CG 그래픽이 아니라 배우를 탑승시킨 실제 전투기에 운용해 촬영한 항공 장면들은 코로나19 팬데믹에 지친 관객들에게 청량감을 안겨줬다. 뿐만 아니라 많은 리메이크/속편들이 놓치곤 하는 '원작에 대한 예우'까지 완벽하게 챙겼으니 실로 오랜만에 완벽한 액션, 완벽한 속편이란 명칭을 기꺼이 달아줄 만한 영화. 실제로 <탑건: 매버릭>의 흥행 추이를 보면 개봉 초반 다소 부진한 듯했다가 입소문을 타면서 상승세로 올라섰다. 제작진과 배우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진심'이 이처럼 중요하다.

- 탑건: 매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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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셉 코신스키
출연 톰 크루즈, 제니퍼 코넬리, 마일즈 텔러
개봉 2022.06.22.
헤어질 결심
감독 박찬욱|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6월 29일 개봉
아, 마지막 영화가 너무 뻔하다. 뻔해. 하지만 <헤어질 결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은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조사하는 과정을 그린다. <헤어질 결심>이 빛나는 이유는 '말로 하면 쉬운데 영화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사람은 <헤어질 결심>의 줄거리를 단번에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각은 도무지 정리할 수 없을 것이다. 오프닝부터 끝날 때까지, 박찬욱 감독은 영화의 정서를 오감의 영역에 꽉꽉 채워넣었다. 불안정한 화면 구도, 대사와 영상의 바통 터치로 이어지는 컷과 컷의 연결, 박찬욱-정서경 콤비 특유의 말맛 넘치는 대사. 분명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임에도, 그리고 결코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님에도 <헤어질 결심>은 '마침내' '붕괴'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라는 유행어까지 남겼다. 독특한 감성에 대중도 공감했단 증거이다. 개인적 감상을 덧대자면, 마지막 30분만으로도 이 영화를 영원히 품을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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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개봉 2022.06.29.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