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등 4월 마지막 주 개봉작 전문가 별점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
짜릿한 승리가 아니라 그저 보통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작은 성장을 이뤄내는 이야기로 보면 무난한 영화다. <드림>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깎이고 깎여 흔적조차 남지 않는 절망의 순간, 누군가에게 내밀 수 있는 손과 반대편에서 그 손을 다시 한번 힘차게 쥐어볼 수 있는 용기를 말한다. 감동과 밉지 않은 호소 사이, 진중함과 깃털 같은 가벼움 사이, 코미디와 말장난 같은 수다, 영화와 기타 영상 매체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듯한 만듦새는 곱씹을수록 희한한 매력이 있다. 빠른 포기가 절대적인 미덕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드림>은 자기 자신과 서로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결과를 보여준다. ‘가능한 기적’이라고 믿고 싶은 무언가를.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기세 좋은 출발, 아쉬운 나머지
★★☆
리듬감 있는 편집으로 기세 넘치게 문을 연 영화는 뒤로 갈수록 전략이 평평해지는 체력 저하를 보여준다. ‘홈리스 월드컵’을 소재로 팀원 개개인의 사연을 전면에 배치한 영화로, 이런 류의 영화에선 그 사연들이 원심력으로 붙으며 시너지를 내주는 게 필요한데 짧은 시간에 여러 사연을 보여주려다 보니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펼쳐지기만 하는 느낌이 든다. 후반부에 심은 감동 코드가 진부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유머와 말맛에서 오는 유머가 없진 않지만, 콩트식 개그도 상당해서 오글거림을 자주 노출하기도. 기대 요소인 박서준-아이유의 케미는 따로 언급할 만한 게 없을 만큼 너무나 무난해서 오히려 아쉬운 편이다. 영화 속 팀은 “기록이 아닌 기억을 남기”는 데 성공하지만, 한국 영화 위기 시대에 필드에 오른 <드림>은 기억보다는 기록으로 이야기될 듯하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결정적 한 방이 없다
★★☆
안전한 플레이인가, 안일한 플레이인가. 어느 쪽이든 실망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웰메이드 천만 코미디 <극한직업>(2019) 감독의 차기작이라면 한 발짝이라도 나간 연출 실력을 보여줘야 하고, 결말을 알고 보는 실화 바탕 소재에 감동으로 달려가는 스포츠 영화라면 새로운 전술로 좌중을 사로잡아야 한다. 대중 영화에서 이런 기대치를 골고루 맞춰야 하니 어렵고 부담스러운 과제인 건 맞다. 한데 <드림>은 장르 규칙에 맞춰 기본 플레이로만 일관한다. 박서준, 아이유라는 스타플레이어와 이병헌 감독 사단 배우들이 팀워크를 발휘해 웃음 골을 터뜨리지만 결정 골을 보여주진 못한다. 코미디와 실화 드라마 사이에서 눈치 보지 않고 과감한 공격전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게임계의 슈퍼스타가 납시었다 
★★★☆
애니메이션 제작사 일루미네이션과 게임사 닌텐도의 합작이 시너지를 냈다. 슈퍼마리오 게임을 즐긴 이들이라면 세대를 뛰어넘어 한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유쾌한 가족 애니메이션이다. 스토리는 예상 가능한 수순을 따르지만, 마리오 시리즈의 대표 캐릭터들이 총출동해 게임 스테이지의 배경을 종횡무진하며 팬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속사포 전개, 중년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는 팝송, 엉덩이가 들썩이는 엔딩까지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부활을 선언한다. 시리즈 제작은 당연지사. 엔딩 크레딧 전후에 나오는 두 개의 쿠키 영상을 절대 놓치지 말기를.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피의 복수극
★★★
뚱뚱한 몸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넘어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괴롭힘을 당하는 소녀의 복수극. 흥미로운 건, 주인공을 대신해 나쁜 친구들을 응징하는 남자 캐릭터의 존재로 일종의 ‘이중 복수극’이라 할 수 있다. 후반부 클라이맥스는 거의 지옥 같은 강렬함의 살풍경. 주인공 사라 역을 맡은 라우라 갈란은 자신의 첫 장편에서 거의 인생 영화를 찍듯 놀라운 에너지를 보여준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그래서 무엇이 남는가
★★☆
학교 폭력 이슈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영화인 것은 맞지만, 최근 할리우드에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과체중에 대한 혐오적인 시선’을 드러냈다는 혐의에서도 자유로울 순 없는 영화로 보인다. 로그 라인이 확실하고 장르적인 패기도 있지만, 인물 빌드업에서의 아슬아슬한 지점이 여럿 보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결말은 텁텁하다. 그래서 가해자들은 인과응보의 뜻을 깨달았는가, 그녀의 복수는 성공한 것인가, 그래서 무엇이 단죄되었는가. 이 모든 물음에 대해 적당한 답을 주지 못한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십대의 공포가 살인마의 공포와 만났을 때 
★★★
틴에이지 호러 무비의 고전 <캐리>(1976) 계보에 놓인 스페인 스릴러 영화. 과체중으로 인해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던 사춘기 소녀 앞에 연쇄 살인마가 나타나면서 핏빛으로 물든다. 통쾌한 복수극보다 복잡미묘한 십대의 심리에 치중한 영화는 복수의 주체와 대상, 주인공과 연쇄 살인마의 관계, 사춘기의 욕망과 환상을 뒤섞어 불안정하고 불온한 기운을 내뿜는다. 주제와 스타일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장르 영화 안에서 폭력이라는 소재를 남용하나 잔혹한 성장통을 도발적으로 보여준 시도가 돋보인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퍼즐처럼 맞춰 보는 스파이의 운명
★★★
중일전쟁 이후 일본에 점령당한 상하이에 여러 세력이 몰려든다. 열강의 패권 각축장이자 일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으려는 공산당까지 가세한 복마전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는 이들이 <무명>의 중심이 된다. 영화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조각내어 흩뿌려 놓는데 초반에는 영문을 몰랐던 장면들의 조각이 후반에 맞춰지면서 비로소 이해가 되는 식이다. 본의를 숨긴 스파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 매력적인 방법이지만 관객이 서사 자체를 따라가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화려하지만 패배감과 우울이 감돌던 상하이를 구현한 감각적인 미장센이 돋보인다.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무해함
★★★☆
절망투성이의 세상에서도 무언가를 긍정해야 한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이 사람이라고, 더욱 정확하게는 나와 다른 존재 사이를 이어주는 체온과 사랑을 믿는 수밖에 없다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으며 별 탈 없이 사는 보통의 일상이 주는 힘을 믿는 니쿠코짱의 무해함이 말하는 것들.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스토리는 원작 소설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 크겠지만, 마음까지 데워줄 것 같은 푸근한 작화도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인생이 힘겹고 외로워지는 순간마다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온기를 가득 품은 애니메이션.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따뜻함의 결이 다른 가족 애니메이션 
★★★☆
<우주형제#0>(2014), <해수의 아이>(2019)에 이어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애니메이션 영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전작들과 다르게 이번엔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니시 카나코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감독의 개성과 색깔이 드러나는 가족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의 마츠코에 버금가는 굴곡진 삶을 살아온 엄마 니쿠코와 이야기의 화자인 초등학생 딸 기쿠코 캐릭터를 상반되게 그리면서, 친숙하고 생생한 인물로 표현해 두 주인공을 애정하게 만든다. 익살스러운 연출, 먹음직스러운 음식 장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배경과 출몰하는 판타지, 평범한 듯 힘 있는 대사가 넘실대며 삶을 응원한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네오리얼리즘의 전설
★★★★★
2차대전 이후 폐허 속에서 시작된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은, <무방비 도시>(1945)가 포문을 열었다면 <자전거 도둑>(1948)에서 어떤 정점을 맞이한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자전거 한 대가 빚어내는 가난의 이야기는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7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울림을 주는 위대함을 지녔다. 빈곤의 현실이 만들어낸 완벽한 영화. 꼭 보시길 바란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현실을 직시하는 걸작 
★★★★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걸작을 화질과 사운드를 보강한 4K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만난다. 유일한 생계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이야기는 당대 현실을 반영하면서 영화사에 남는 부자관계를 보여 준다. 흑백 화면에 담긴 75년 전의 이탈리아 사회와 오늘날 풍경이 별반 다르지 않아 씁쓸하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하는 영화의 태도에 감화된다. 1949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최고의 영화 목록에 반드시 꼽히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최고의 로드무비
★★★★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99년 작. 그의 독특하고 강렬한 작품 세계에서 이례적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로드무비, 가족영화, 슬로무비 카테고리 어디에서도 상위에 오르는 명작이다. 린치 감독은 잔디깎이 트랙터를 타고 아픈 형을 만나러 가는 노인 앨빈 스트레이트의 실화에 삶에 대한 회한과 참회, 선의를 부여해 깨달음의 시간을 선물한다. 이 작품을 유작으로 남긴 배우 리차드 판스워스(1920-2000)의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명연기를 볼 수 있다는 건 큰 위로이자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