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스페이스나이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단가를 줄이기 위해 움직이는 관절을 최소화한 대신 다른 완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자 기능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홍보를 했다. 눈은 한 쌍의 붉은 LED로 점등되었고 등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녹음된 몇 가지의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전자 기능들이 추가된 완구들은 1970년대 말에도 이미 숱하게 존재했으나 흔하지는 않았고, 파커 브라더스는 이 점을 노려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상당한 길이의 TV 광고영상을 제작하였고 마블 코믹스와 합작하여 <롬: 스페이스나이트> 만화책을 발간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파커 브라더스는 일찍부터 계획한 롬의 적수들과 인간 캐릭터들의 완구화를 취소했다.
역설적이게도 <롬: 스페이스나이트>는 발매 당시보다 현재에 더 많이 사랑받고 있다. 당시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볼 수 있던 '하이 테크놀로지'를 상징하는 요소들, 가령 깜빡거리며 빛나는 LED 눈이나 매끈한 은빛의 전형적인 1960년대풍 로봇의 외형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복고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얼핏 보면 <지구가 멈추는 날>(1951)에 나오는 은색 인간형 로봇과도 매우 닮아 있는데 전형적인 1960년대 미국 로봇의 모습이다.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의 등장으로 일본 아니메/망가가 미국에 유통되었고, 그 이후로 나온 미국의 로봇들은 그들 고유의 특성을 잃어버렸다. 예를 들어 <퍼시픽 림>(2013)에 나왔던 로봇은 전통적인 미국식 로봇이 아니라 일본식 메카물의 후손에 가깝다. 롬은 지금보다 한 세대 전, '투박한 미국식 로봇'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역설적으로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